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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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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 번역을 마치고 아, 이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취미로 시작한 번역의 끝을 보았습니다. 무언가를 끝냈다는 보람찬 기분과 끝은 또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뒤엉켜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군요. 오역, 마음에 들지 않게 번역한 부분,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 그리고 오타들을 고쳐야 하는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홀가분하면서도 뿌듯합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들여 끝낼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별 것 아니지만 평소에는 느끼기 힘든 기분이 듭니다. 단순히 읽을 거리를 찾다 읽게 된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를 번역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흥미로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에 번역을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군요. 살면서 누군가의 책을 ..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VII, XXXVIII - 조지 오웰 당연하지만, 부랑자 보호소는 자립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기억되어야 할 부분은 현제도 내에서는 부랑자들은 국가에 무익할 수 밖에 없다, 단지 일을 안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이 그들의 건강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는, 그렇게, 인명과 돈을 함께 잃고 있다. 적절한 음식을 제공하고, 적어도 그들이 먹을 음식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계획은, 분명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면, 근래에 들어, 최소 잠자리에 관해서는 소수의 보호소의 상황이 개선되었다는 사실을 더해야 겠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보호소의 상황은 변함이 없고, 음식 부분에서는 실질적인 개선이 되지..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VI -조지 오웰 XXXVI 부랑자개론에 대해 적어두고 싶다.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부랑자들은 이상한 결과물이고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수 천 명이 존재하는, 이 한 무리의 부족이, 그 숫자가 적지 않은 방랑하는 유대인들처럼 영국 전역을 방황해야 한다는 것은 이상한 생각이다. 이런 사태는 분명 심사숙고가 필요함에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없애기 전까지는 어떤 누구도 이 부분에 있어 깊이 생각조차 시작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편견은, 그들이 살고있는 삶 때문에, 부랑자들을 불한당이라고 인식하게 한다.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부랑자들을 불한당이라고 배워왔다, 교육에 대한 결과로 우리에게는 일종의 이상적이거나 전형적인 부랑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존재한다-역겹고, 심히 위험..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V - 조지 오웰 그의 모습은 구궐로 제대로 빌어먹지 못 한 행색이었다, 코르덴 정장, 목돌이, 그리고 모자만 쓰고 있었을 뿐-양말은 신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뚱뚱하고 쾌할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맥주 냄새도 났다, 요즘 세상에 부랑자들에게서는 맞기 힘든 냄새다. 두 명의 부랑자는 최근 크롬리 수용소에 다녀왔다고 했고, 수용소와 연관 된 유령이야기를 해주었다. 1년 전, 그들 말로는, 그곳에서 자살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부랑자 한 명이 면도기 하나를 몰래 숨겨 들어가서는, 자신의 목을 그은 것이다. 아침이 되어, 부랑자 대장이 방문을 열어주고 다녔고, 시체가 문에 끼어있는 바람에, 문을 열기 위해 시체의 팔을 분질러야 했다. 부러진 팔에 대한 복수로, 유령은 방을 떠나지 않았고, 누구든 그 방에서 잔 사람이라면 1년 ..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IV - 조지 오웰 XXXIII B가 준 2파운드는 약 열흘 정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지속 될 수 있었던건 패디 덕이었다, 그는 거리에서 지독한 인색함을 배웠고 하루에 제대로 된 한끼도 터무니없는 사치로 여기는 바였다. 그에게 있어, 음식은, 순전히 빵과 마가린만을 의미했다-영겁의 차와 빵 두조각, 이것으로 한 두시간은 배고픔을 속일 수 있다. 패디는 반크라운으로 어떻게 살고, 먹고, 피고, 자는, 이 모든 것들을 하루동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패디는 가끔식 '불을 꺼주는' 일을 했는데, 위태로운 일이었다, 불법이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약간의 돈을 벌 수 있었고 우리의 돈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을 얻어 보려고 했었다. 사무실..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II - 조지 오웰 보조도 경찰들의 방해에 대한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내가 그와 있을 때 하이드 공원에서 '비도덕적 활동' 사건이 있었다, 경찰이 상당히 악독하게 행동한 것이었다. 보조는 경찰들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풍자화를 꺼내 들었다, 써있기를, '문제, 경찰을 찾아라,' 나는 '문제, 비도덕적 행위를 찾아라,' 라고 쓰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조는 듣지 않았다. 보조는 어느 경찰이라도 그렇게 쓰인 풍자화를 보게 되면 자신을 쫓아낼 것이고, 평생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했다. 보도화가 밑으로는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 성냥팔이, 아님 구두끈팔이, 라벤더 꽃잎을 조금 담은 봉투를-이 봉투는, 완곡하게, 향수라고 불린다- 파는 사람들이 온다. 이 사람들은 전부 사실상 거지들이다, ..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I - 조지 오웰 XXXI 보조가 머무르는 간이숙박소의 가격은 하룻밤에 9펜스였다. 넓고, 넘치는 사람들, 500명을 수용 할 수 있는 이 곳은, 거지, 부랑자, 잡범들이 자주모이는 유명한 단골 장소였다. 모든 인종들은, 흑인과 백인 조차도, 피부색의 구분없이 평등한 관계로 뒤섞여 있었다. 한 쪽에 인도인들 보였고, 나는 그 중 한 명에게 짧은 우르두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자, 만약 인도에서 들었더라면 몸 서리 칠 수도 있는 단어로, 나를 불렀다. 우리는 피부색이 가진 편견의 범위 밑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삶들을 짧게나마 경험을 얻었다. 늙은'할아버지'라고 불리는 70세의 부랑자는, 담배꽁초를 모아 담뱃속을 1온스에 3파운드에 팔았는데, 이 방법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의사'는-진짜 ..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 - 조지 오웰 의족까지 훔쳐간 걸 본적이 있다고. 한 번은 거구의 남자가-90킬로그램 정도였는데- 4파운드를 가지고 들어 오더군. 돈을 침대 밑에 쑤셔 넣고는. '이제' 그가 말했지, '누구라도 내 돈을 만지기라도 해 보라고'. 그럼 뭐하나 똑같이 당했지. 아침이 되서 남자는 바닥에서 잠을 깼어. 네 놈이 각 침대 끝을 잡고는 깃털처럼 들어 올렸지. 남자는 그 4파운드를 다시 볼 수 없었어.' XXX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패디의 친구를 다시 한 번 찾아 보기로 했다. 보조라고 불리는 친구로서, 보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다른 말로는 거리의 화가다. 패디가 사는 세상 속에는 주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보조가 램베스 쪽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그 친구와 마주치게 된 곳은, ..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IX -조지 오웰 극도로 흥분해서는, 불안한 모습으로 떠드는 그의 모습을 바라 보았다.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듯 했다, 아니 취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한 시간 뒤에, 본관에서 떨어진,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종이도 책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몇 몇의 숙박객만이 그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보였다.. 문을 닫기 전 그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는데,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실로 불현듯, 그의 표정이 무엇을 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굶주리고 있었다. 숙박료는 8펜스였다, 나와 패디에게는 5펜스가 남았고, 그 5펜스는 '식당'에서 써버렸다, 음식이 싸기는 했지만 간이숙박소 만큼은 아니었다. 차는 홍차가루로 끓여지는 듯 했다, 내가 보기엔 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IX - 조지 오웰 XXIX 에드버리로 가는 길에 패디에게 제안 하기를 나에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수용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보다 런던으로 바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하지만 패디는 근래에 에드버리 수용소에 가지 않았었고, 역시 부랑자였던지라, 수용소의 무료 숙박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에겐 반페니 밖에 없었지만, 패디에게는 2실링이 있었다, 우리에게 침대와 몇 잔의 차를 안겨 줄 수 있는 돈이었다. 에드버리 수용소는 롬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악이었던 점은 입구에서 담배를 몰 수 당하고, 흡연시 적발 당하면 즉각 퇴소 당한다는 경고를 받은 것이다. 부랑자 법률에 따라 수용소에서 흡연을 적발당한 부랑자는 고소 당할 수 있다- 사실상, 부랑자들은 거의 어떤 죄목으로라도 고소 당할 수 있..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VIII - 조지 오웰 아침에는 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는 욕조 하나에 담긴 물만이 허락되어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스무명의 부랑자들이 얼굴을 세수를 한 뒤였고, 물 위에 떠 있는 검은 거품을 힐끔 본 나는, 씻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이 뒤에 어제 주어진 저녁과 정확히 똑같은 식사가 나왔다, 우리들은 옷을 되돌려 받고나서, 마당으로 나가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은 극빈자들의 저녁에 쓰일 감자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었지만, 우리를 진찰할 의사가 올 때까지 붙잡아 두려는, 단순히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부랑자들은 노골적으로 게으름을 피웠다. 열시즘이 되어 의사가 나타났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가 옷을 벗고 복도에서 검사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알몸으로, 몸을 떨며, 복도에 일렬로 서 있었다. 한 없이 ..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VII - 조지 오웰 6시 15분즘 아일랜드인은 나를 수용소로 데리고 갔다. 건물은 구빈소 구내 한 편에 서있었는데, 음침해 보이는, 빛바랜 노란색의 벽돌로 된 정육면체 건물이었다. 창살로 막힌 창문들이 줄지어 있었고, 높은 벽과 철문이 도로로부터 건물을 격기시키고 있었다, 감옥에 매우 비슷해 보였다. 철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앳되보이는 소년은 16살 이었고, 가장 늙은 사람은, 이빨 빠진 미라같이 생긴 75세의 남자였다. 몇 명은 부랑자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었다, 씻지않아 새까매진 얼굴, 지팡이와 작은 주전자가 눈에 띄었다. 다른 몇 몇은 공장 노동자이거나, 농업 노동자들이었고, 한 명은 옷깃이 있는 옷에 넥타이를 맨 사무원이..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VI - 조지 오웰 숨이 턱턱 막히는 비좁은 통로를 따라 깊고 좁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열명의 남자가 있었고, 대부분이 짐꾼들이었다, 이글거리는 불 앞에 앉아있었다. 자정이었음에도, 창백하고 떨어질지 몰라하는, 대리인의 아들은 한 짐꾼의 무릎에 앉아 놀고있었다. 한 아일랜드 노인은 작은 새장 속의 눈먼 파리새에게 휘파람을 불고있는 중이었다. 다른 새들도 있었다, 아주 작고, 시들한 모습의 그것들은 평생을 지하에서 살고 있었다. 숙박객들은 습관적으로 불에다가 소변을 보았는데, 바로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귀찮아 했기 때문이다. 탁자에 앉아마자 발 근처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아, 밑을 살펴보니, 거무스레한 것들이 바닥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의 물결이었다. 바퀴벌레들이었다. 공동침실에는 6개의 침대가 있었고, 침..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V - 조지 오웰 XXV 8실링으로 3박 4일을 버틸수 있었다. 워털루 거리에서의 유쾌하지 못 한 경험을 뒤로 하고 동쪽으로 이동했고, 페니필드의 간이숙박소에서 다음 밤을 보냈다. 런던의 다른 다수의 숙박업소와 다를 바가 없는, 전형적인 간이숙박소였다. 50명에서 100명 사이의 사람이 숙박이 가능했고, '대리인'에 의해서 운영이 되고 있었다-숙박업소 주인의 대리인인데, 이런 간이숙박업소들은 이윤이 괜찮게 남았기에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15명에서 20명의 사람이 공동 침실에서 잠을 잤다, 침대는 여전히 차고 딱딱했다, 하지만 침대보는 세탁한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었는데, 이전에 비해 개선된 점이었다. 숙박료는 9펜스 아니면 1실링이었고(1실링짜리 공동 침실에는 조금 더 긴 침대가 놓여있었다) 저녁 7시 전 아니면 ..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IV - 조지 오웰 그의 첫 마디는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 '미안하네,' 설명하기를, '자네 고용주가 외국으로 떠났어, 환자도 함께. 그래도, 한 달 뒤면 돌아 올거야, 그 때 까지 기다릴 수 있겠지?' 나는 돈을 빌려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거리에 서 있었다.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내 손에는 정확히 19 파운드 6펜스가 들려 있었다. 이 소식은 나의 숨을 멎게 만들었다. 하루를 거리를 배회했고, 밤이 되었을 때는, 런던에서 저렴한 잠자리를 얻을 어떤 방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룻밤에 7파운드 6펜스 하는 '가정' 호텔로 들어갔다. 방세를 지불하고나자 내 손에는 10파운드 2펜스가 남아 있었다. 아침이 되기 전에 나는 계획을 마련했다. 머잖아 B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찾아가야만 했지만, 아직은 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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