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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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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족까지 훔쳐간 걸 본적이 있다고. 한 번은 거구의 남자가-90킬로그램 정도였는데- 4파운드를 가지고 들어 오더군. 돈을 침대 밑에 쑤셔 넣고는. '이제' 그가 말했지, '누구라도 내 돈을 만지기라도 해 보라고'. 그럼 뭐하나 똑같이 당했지. 아침이 되서 남자는 바닥에서 잠을 깼어. 네 놈이 각 침대 끝을 잡고는 깃털처럼 들어 올렸지. 남자는 그 4파운드를 다시 볼 수 없었어.'





XXX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패디의 친구를 다시 한 번 찾아 보기로 했다. 보조라고 불리는 친구로서, 보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다른 말로는 거리의 화가다. 패디가 사는 세상 속에는 주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보조가 램베스 쪽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그 친구와 마주치게 된 곳은, 그가 자리를 잡은 워털루 다리에서 멀지 않은템스강의 북쪽 강둑이었다. 그는 분필 한 통을 옆에 두고 무릎 꿇고 앉아, 공책에 그려진 윈스턴 처칠의 그림을 베끼고 있었다. 그림의 유사성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보조는 덩치가 작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매부리코, 그리고 머리 밑 까지 기른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오른쪽 다리는 몹시 흉하게 변형이 되어있었고, 발뒤꿈치는 앞으로 뒤틀려있어 보는 것도 편치 않았다. 외향만으로는 그를 유대인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언제나 강력하게 부정했다. 그는 매부리코를 '로마인'이라는 증거라고 하며, 어떤 로마 황제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 했다, 내 생각에 그 황제는 베스피안이 아닐까 한다





보조는 이상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런던토박이 노동자들의 말투임에도 굉장히 명료하고 표현력이 좋았다. 마치 양서는 많이 읽었지만 틀린 문법은 고치려고 애를 쓴적은 없는 것 같았다. 패디와 나는 한 동안 강둑에 남아, 대화를 나누었고, 보조는 보도화가업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거의 그가 사용한 단어들만으로 반복 해 보도록 하겠다.





'내가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보도화가지. 나는 여기 다른 사람들처럼 칠판 분필로 그리지 않아, 화가들이 사용하는 올바른 색깔로 그림을 그리지. 이 녀석들 우라질 비싸다고, 특히나 빨간색들이 더 그렇지. 하루가 긴 날에는 7실링 어치를 쓰기도 하고, 2실링 이상은 언제나 쓰고 있지. 풍자화가 내 분야야-정치나 크리켓 같은 것들 있지 않나- 이거 한 번 보게- 그의 공책을 보여 주었다-여기 이 정치가 녀석들 비슷한 것 좀 보게, 신문지에서 모두 베껴 그린 거라네. 나는 매일 같이 다른 그림을 그리지. 예산에 관한 문제가 터졌을 때는 윈스턴이 '부채'가 새겨진 코끼리를 밀려고 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써 두었지, '그가 예산을 마련할 수 있을까?' 알겠지 않나? 어떤 정당이라도 풍자 할 수는 있지만, 절대 사회주의를 편 들어서는 안 된다네, 경찰들이 봐주 질 않으니 말이야. 일전에 자본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거대한 보아뱀이 노동자라는 단어가 쓰여진 토끼를 삼키고 있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지. 경찰이 지나가다 그림을 보고는, 명령을 하더군, '지워버려, 그리고 앞으로 주의해,' 그렇게 말하더 라니까. 그림을 지워야만 했지. 경찰들은 나에게 한 곳에서 배회 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명령할 힘이 있거든, 경찰들에게 말대꾸는 좋지 않아.'





[*거리의 화가들은 분말가루 형태로 된 색들을 사서, 연유에 넣고 섞은 뒤 딱딱하게 굳힌다.]





나는 보조에게 보도에 그리고 얼마나 버는지 물어 보았다.





'연중 이 맘때는, 비가 안 오면,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3파운드 정도 가져 가지-알겠지만, 사람들이 금요일에 급료를 받지않나비오는 날에는 일을 할 수 없지, 빗 물이 그림을 씻어 가 버리니. 일년으로 보면, 일주일에 1파운드 버는 꼴인데, 겨울에는 일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거든. 배경주가 있는 날이나, 축구 결승전이 있는 날이면 4파운드 가까이 가져가기도 하고. 하지만 경기에는 신경도 못 쓰지, 거기에 앉아서 구경이나 하고 있으면 1파운드도 건져가지 못 하니까. 반페니 정도는 거저 주기도 하는데 그것도 말이라도 조금 걸어줘야 얻을 수 있지. 내 말에 대꾸하고는 동전 한 닢도 안 주면 창피해지니까 말이야. 그림을 계속해서 바꿔 그리는 게 최고로 좋은 방법이야, 그러면 사람들이 멈춰서서 지켜 보게 되니까. 근데 문제는, 이 거지들이 모자를 들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바로 흩어진다는거야. 이 머리싸움에서는 바람잡이[조수]가 필요 할 수 밖에 없어. 나는 계속 그림을 그려서 구경꾼들의 눈을 잡아 두고, 바람잡이가 시치미를 떼고 구경꾼들 등 뒤로 돌아 오는거지. 사람들은 그가 바람잡이라는 걸 몰라. 그러다 갑자기 모자를 벗어 들지, 앞뒤로 협공하는 것 비슷해. 상류층한테는 절대 한 푼도 뜯어 낼 수 없어. 뜯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 추레한 부류의 놈들이거나 외국인들이지. 일본놈 한테는 6펜스를 받아 봤고, 검둥이도 그랬었고, 다른 외국인도 비슷하지. 외국인들은 영국놈들 같이 인색하지는 않아. 그리고 또 기억해야 될 건 모자 속에 1페니 정도만 빼고, 돈은 계속해서 감춰 두어야해. 이미 1파운드나 2파운드 정도 있는 걸 사람들이 보게 되면 아무것도 주지 않아.'





보조는 템스 강둑의 보도화가들에 대한 깊은 멸시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연어 접시들'이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거의 20미터 마다 보도화가들이 앉아 있었다-20미터는 보도화가들 간의 최소 거리로 인정되고 있었다. 보조는 50미터 정도 떨어진 흰 수염이 난 늙은 보도화가를 경멸하며 가리켜 보았다. 





'저 늙은 멍청이 보이나? 매일 같이 똑같은 그림만 10년째 그리고 있어, '충실한 친구' 라고 이름 붙인 모양인데. 개 한 마리가 소년을 물 속에서 꺼내주는 그림이야. 저 늙은 놈은 10살짜리 꼬마 말고는 그릴 수 있는 것도 없어. 어디서 저 그림 하나만 눈대중으로 배워 가지고는, 퍼즐 맞추듯이 그리는 거지. 여기엔 저런 놈들이 깔렸어. 내 그림을 훔쳐 보려고 오기도 하는데, 신경도 안 쓰지, 멍청한 놈들은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 해, 그러니 내가 항상 앞서 가는거지. 풍자화는 언제나 최신의 일을 다루는게 전부야. 첼시 다리 철책에 한 꼬마의 머리가 끼인 적이 있었지. 어찌 됐겠나, 꼬마 머리가 철책에서 빠지기도 전에 내 바닥엔 그 내용이 그려져 있었지. 그 정도로 빠른 사람이야, 내가.'





보조는 흥미로운 사람 같았다, 나는 마음이 동해서는 그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했다. 저녁이 되어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강둑으로 향했다, 그는 패디와 나를 강변 남쪽의 간이숙박소로 안내하기로 되어 있었다. 보조는 바닥의 그림을 지우고 그 날 번 소득을 세었다-소득은 16실링 정도였고, 그는 12실링에서 13실링 정도는 이득을 보았다고 했다. 우리는 람베스 쪽으로 걸어갔다, 보조는 발을 절뚝 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꽃게같이 걷은 이상한 걸음으로, 반은 옆으로 걸었는데, 짓이겨진 발은 뒤에서 질질 끌려 가고 있었다. 그의 양 손에는 막대기가 하나 씩 들려 있었고, 염료가방은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 던 중 보조는 잠시 쉬기 위해 다리 위에 있는 아치형 쉼터에서 멈춰 섰다. 그는 1 분에서 2 분 정도 침묵했다, 그가 별들을 올려 보고 있는 모습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내 팔을 건드리고는 그의 막대기를 들어 하늘을 가르켰다. 





'이 봐, 저 알데바란이 보이나! 저 광채를 봐! 마치-검붉은 오렌지색 같구만!' 그의 말투로 판단해보면 그는 어느 화랑의 미술 평론가 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크게 놀랐다. 나는 어느 별이 알데바란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사실, 별들이 다른 광채를 띠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 했. 보조는,주요 성좌들을 가르키며, 천문학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들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나의 무지를 염려하는 듯 했다. 감화된 채 그에게 말 했다. 





'별에 관해 아는게 많은 것 같군.' 





'많이 아는 건 아니지. 조금은 알고 있지만 말이야. 유성에 관한 편지를 써주어 감사하다는 편지를 왕실 천문학회에서 두 통이나 받았지. 때때로 밖에 나가 유성들을 관찰 하고는 하지. 별들은 공짜 공연이야, 눈을 쓰는데 돈이 들어가지는 않으니까.' 





'그거 정말 그렇군! 한 번도 그렇게 생각 해 본 적이 없어.'





'그렇지, 흥미를 가질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돼. 거리의 사람들이 차 한 잔에 빵 두 조각 밖에는 생각 못 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거든.'





'이런 삶을 살면서 뭔가에 흥미를 두는건 -별 같은 것에 말이야- 어렵지 않나?'





'바닥에 그림 그리는거 말인가? 꼭 그런건 아니지. 자신을 멍청한 토끼가 되게 할 필요는 없어-그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노력하면 돼.'  





'대부분의 사람이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 패디를 봐- 차에 환장한 오래된 떠돌이야, 담배 꽁초나 찾아 다니는게 딱이지. 저게 대부분의 부랑자가 가는 길이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 하지만 네 남은 여생을 거리에서 보낸다고 해도 너까지 저렇게 될 필요는 없어.'





'그렇지만, 난 반대로 보게 되는군,'  내가 말했다,'사람들로부터 돈을 앗아가는 그 순간, 사람들은 어디에도 필요가 없게 되는게 아닐까'





'아니지, 꼭 그렇게 되는건 아니냐. 그렇게 적응을 한다면, 부자나 거지나, 똑같은 삶을 살게 되어있지. 그렇지만 네가 읽은 책들과 네가 가진 생각들은 간직 할 수 있어. 너 자신에게 이렇게만 말해주면 돼, '이 안의 나는 자유인이다' -그는 이마를 톡톡쳤다-그러면 모든게 괜찮아 질꺼야.'





보조는 같은 논조로 더 나아갔고, 나는 주의를 귀울여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비범한 보도화가 같았다, 게다가, 그는, 빈곤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주장을 듣게 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 날 이후 며칠 동안 그를 자주 보았다, 몇 번을 계속해서 비가 내렸고, 그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보조는 나에게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를 말 해주었고, 그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파산한 책장수의 아들은, 18살에 도장공이 되어 일을 시작했고, 그런 다음 전쟁 통에 인도와 프랑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뒤 파리에서 도장공 일자리를 찾았고, 몇 년을 그 곳에서 머물렀다. 영국 보다는 프랑스가 그에게 더 맞았다(그는 영국인을 끔찍히 싫어한다), 파리에서는, 저금을 하며, 그럭저럭 살아갔고, 프랑스 처자와 약혼도 했다. 어느 날 처자가 버스 바퀴에 깔려 죽게 되었다. 보조는 일주일 동안 술을 들이부었고, 온전하지 못 한 정신으로, 일자리로 돌아갔다. 같은 날 아침 일을 하고 있던 그는 올라 서 있던 발판에서 떨어졌고, 발판에서 바닥까지는 12미터였다, 오른발이 으깨 뭉그러지도록 박살이 났다. 무슨 까닭인지 단지 60파운드만이 보상금으로 주어졌다. 영국으로 돌아 온 그는, 직업을 찾기 위해 돈을 쓰기도 했고, 미들섹스 거리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책을 팔기위해 노력도 했으며장난감을 상자에 담아 팔아 보려고도 했다, 그러다 결국 보도화가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내가 보조를 알게 되었을 때 그가 소유한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몇 권의 책들 그리고 도장 재료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옷은 여느 거지들과 다름없는 넝마였지만, 옷깃에 넥타이을 메고 있었다, 그가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었다. 1년 또는 더 오래 된 듯한, 옷깃은, 그의 목을 '뱅뱅' 끊임없이 돌았기에, 보조는 셔츠 끝단을 잘라 옷깃을 고정시켜 두어야 했고 그렇게 셔츠의 끝단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상처입은 다리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고 절단을 해야만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릎은,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댓가로, 구두밑창 만큼 두꺼운 굳은 살이 박혀 있었다. 여지없이, 거지신세나 극빈소에서의 죽음 말고는 그를 위한 미래는 없었다. 





이런 모든 악조건을 가지고서도, 그에게는 두려움도, 후회도, 부끄러움도, 그리고 자기연민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직시하고 있었고, 본인을 위한 철학을 만들어냈다. 거지로 지내는 것은, 그가 말하길, 본인의 잘 못이 아니며, 이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가지기를 거부하고 이 상황이 자신을 괴롭히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보조는 사회의 적이었다, 적절한 기회만 찾게 되면 범죄를 저지를  준비도 더없이 되어 있었다. 보조는 그의 원칙에 따라 검소함을 거부했다. 여름 동안에는 한 푼도 저축하지 않고, 모든 돈을 술에 들이 부었다, 여자들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겨울이 다가 왔을 때 그에게 남은 동전이 한 닢도 없다면, 사회가 그를 돌봐 줘야만 했다. 그의 감사한 마음을 기대하지 않고 제공되는, 자선단체의 구호금 동전 하나라도 뜯어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종교적 자선은 피했는데, 빵을 위해서 부르는 찬송가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여러가지로 체면문제를 신경썼다. 예륻들면, 그가 가진 인생의 자랑거리였는데 살면서, 심지어 배가 고플때도, 거리에서 단 하나의 담배 꽁초도 절대 줍지 않는다고 했다. 보조는, 본인 자신을, 그의 말을 빌려보자면, 배은망덕이 뭔지도 모르는 예절이 없는, 비참한 무리들인, 거지떼들 보다는 위에 있는 계층이라고 여겼다. 





보조는 프랑스어도 꽤 능숙하게 말했고, 걸리버 여행기, 다수의 수필, 졸라의 소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극들을 전부 읽었다. 그의 모험담을 기억에 남게 말로 묘사 할 수 있었다. 예로, 그가 말 해준,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시체 태우는  본 적이 있나?' 난 있지, 인도에서 말이야. 사람들이 늙은 시체를 불위에 올렸는데, 그 다음에 나는 혼이 빠져라 깜짝 놀랐지, 시체가 발을 차기 시작하더라니까. 열기에 근육들이 수축한거였지-그래도, 충격은 여전했지. 뜨거운 목탄 위의 훈제 청어처럼 잠시 동안 꿈틀거리더군, 그리고 배가 부풀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떨어지 곳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인 빵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어. 화장을 달가워하지 않게 만든 충분한 경험이었지.'





아니면, 또, 그가 겪은 사고에 관해서도 비슷했다. 





'의사가 이렇게 말하더군, '발로 떨어졌어요, 이 친구야. 두 발로 안 떨어진게 지랄맞게 운이 좋은거에요.' 이렇게 말 했어. '왜냐하면 만약 두 발로 떨어졌다면 짜부러진 콘세르티나 처럼 접혔을 거에요, 그리고 허벅지 뼈는 귀 쪽으로 튀어 나왔겠죠!' 






당연히 의사의 표현들이 아닌 보조가 쓰는 단어들이다. 표현력에 재능이 있었다. 그는 두뇌를 언제나 온전하고 기민한 상태로 유지시켰다, 어떤 것도 그를 빈곤에 굴복 시킬 수 없었다. 보조는 넝마를 걸치고, 춥고, 심지어 배까지 곯고 있었지만, 글을 읽고, 생각하고, 유성을 관찰 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가 말했듯, 그의 마음 속에서 만큼은 자유였다. 





그는 적의를 품은 무신론자였다(개인적으로 신을 미워하면서도 신을 아예 안 믿는 것은 아닌 종류의 사람이다), 그리고 인간만사가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즐거움을 얻었다. 가끔은, 강둑에서 잠을 잘때가 있는데, 목성이나 화성을 올려다 보며 저곳에도 강둑에서 자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위안이 된다고 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상한 이론을 가진 그였다. 지구 위의 삶이, 가혹한 이유는 생존필수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화성은, 추운 날씨와 얼마 되지 않는 물 때문에, 더 없이 가난 할 것이고, 삶은 상대적으로 가혹 할 것이다. 지구에서는 6펜스를 훔치면 감옥에 가기만 하면 되지만, 화성에서는 산채로 삶아 질 수도 있다. 이 생각들은 보조를 힘이 나게 했다, 나는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정말로 특출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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