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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VI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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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VI 





부랑자개론에 대해 적어두고 싶다.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부랑자들은 이상한 결과물이고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수 천 명이 존재하는, 이 한 무리의 부족이, 그 숫자가 적지 않은 방랑하는 유대인들처럼 영국 전역을 방황해야 한다는 것은 이상한 생각이다. 이런 사태 분명 심사숙고가 필요함에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없애기 전까지는 어떤 누구도 이 부분에 있어 깊이 생각조차 시작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편견은, 그들이 살고있는 삶 때문에, 부랑자들을 불한당이라고 인식하게 한다.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부랑자들을 불한당이라고 배워왔다, 교육에 대한 결과로 우리에게는 일종의 이상적이거나 전형적인 부랑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존재한다-역겹고, 심히 위험한 생명체, 일을 하거나 씻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사람들, 원하는 것이라곤 구궐뿐이고, 하는 일이라고는 취해서 닭장을 터는 사람들로서 말이다. 부랑자 괴물은 잡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악한 중국인보다  사실이 아니다, 다만 이들은 이 편견을 없애지 못 할 뿐이다. 부랑자라는 단어는 그들의 인상을 상기시켜 준다. 이들에 대한 이런 의견들은 노숙자에 대한 진정한 질문을 모호하게 한다. 





노숙에 관한 근본적은 질문을 던져보자. 왜 노숙자가 존재할까? 궁금한 부분이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만이 무엇이 부랑자들이 거리를 점거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부랑자괴물에 대한 믿음들 덕분에, 환상적인 의견들이 제시가 된다. 예를들면, 부랑자들은 일하기 싫어서, 구궐이 더 쉬우므로, 범죄의 기회를 찾기 위해, 부랑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심지어-그나마 개연성있는 이유가-그들은 부랑하기를 좋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범죄학 책에서는, 부랑자들은 인류가 유목생활을 하던 시절로 돌아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노숙자들이 생기는 명확한 이유가 한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 당연히 부랑자들은 원시유목민들이 아니다- 외판원들도 똑같이 원시형태의 사람들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랑자들은 떠돌아 다닌다, 좋아서 떠도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들이 좌측통행을 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법이 그렇게 하라고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핍해진 사람들은, 행정 교구의 도움을 받지 못 할때면, 보호소에서 한 숨 돌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각 보호소가 이 사람들에게 하룻밤만을 허용해 줄 것인데, 그렇게 자동적으로 계속 이동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들은 노숙자들 이유는, 현재의 법으로서는, 그래야만 하거나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랑자괴물을 믿게끔 양육되어 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악랄한 동기로 부랑자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한다





실제로, 소수의 부랑자괴물들만이 이 의문에 부합한다. 부랑자는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통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실제 경험을 완전히 별개로 두더라도, 누군가는 선험적으로 아주 적은 수의 부랑자만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이 정말 위험한 사람들이었다면 그에 맞게끔 처우를 받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호소들은 하룻밤에 백명의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백명의 사람들은 최대 한 명의 직원과 최대 세명의 수위가 통솔을 한다. 백 명의 깡패들은 무장도 하지 않은 세 명의 수위로 통제될 수가 없다.실로, 스스로를 구빈원 직원들에게 괴롭힘을 받게끔 놔두는 부랑자들을 보고 있자면, 분명히 그들은 가장 유순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모든 부랑자들은 술고래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표면적으로 보아도 터무니 없는 통념이다. 말 할 필요없이 많은 부랑자들은 기회만 생기면 술을 마실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런 기회를 얻지 못 한다. 요즘 영국에서는 물을 탄 듯 묽은 액체가 맥주라고 불리며 한 잔에 7펜스에 팔리고 있다. 취하고자 한다면 최소 반크라운이라는 돈이 들어간다, 매일같이 반크라운을 어떻게든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부랑자가 아니다. 부랑자들이 무례한 사회 기생충('근본부터 거지')이라는 관념도 전적으로 근거가 없다, 다만 몇 가지 사례에서만 사실일 뿐이다. 잭 런던의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의도적이고, 부정적인 미국 부랑자들의 기생생활은, 영국 사람들 속에는 내재하지 않는다. 영국인들은 양심에 지배받는 종족으로, 빈곤은 죄악이라는 강한 생각이있다. 영국인 중에 의도적으로 기생충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직장에서 쫒겨 났다고 할 지라도 이 국민성을 바꿀 필요는 없다. 진정으로, 부랑자들은 일자리에서 쫒겨난 영국인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법에 의해 강제로 떠돌이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부랑자괴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당연히, 최고의 부랑자들이 이상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도 평범한 인간들이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못 할지라도 이는 그들의 생활방식 결과인 것이지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랑자들에게 향하고 있는 '그들에게 엿같은 대우를 해주자' 라는 보편적인 태도는 병약자나 장애인들에게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 만큼 공정하지 못 하다. 그들의  위치에 섞여들기 시작하고, 그들의 삶이 어떤지 이해하게 된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깨닫게 되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헛되고 극도로 유쾌하지 못 한 삶이다. 보호소에 관한 묘사를 했다-부랑자의 하루생활도 함께- 하지만 그 위로 더 강조되어야 할 유해한 세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굶주림이다, 거의 모든 부랑자들의 전반적인 운명이다. 보호소에서는 배급을 주지만, 아마도 배를 충분히 채우게 하기 위한 의도는 아닌 듯 하다, 이것 외에는 구궐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이는 법을 어기는 행동이다. 결과로 태반의 부랑자들이 영양실조로 몸의 상태가 악화되어간다. 이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면 보호소 밖에 줄지어 있는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보기만 하면 된다. 부랑자 생활의 두 번째 유해한 점은-첫 눈에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가 되기에 문제가 없다-이 들이 여자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자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부랑자들은 여자로부터 단절되어 있는데, 우선으로, 같은 사회계층에 극소수의 여자들만이 있기 때문이다. 극빈자층도 다른 계층과 마찬가지로 남녀의 비율이 동등한 비율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거의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실상에서는, 사회의 특정한 계층 밑은 전적으로 남자들이라는 점이다. 다음 수치는, 1931년 2월 13일에 실행 된 밤거리 인구조사로서, 런던 시의회에서 발표하였고, 남성 극빈자와 여성 극빈자의 비례를 보여주고 있다. 




거리에서 밤을 보내는 인구, 남성 60명, 여성 18명


간이숙박소로 등록되지 않은 보호소나 집에서 밤을 보내는 인구, 남성 1057명, 여성 137명


평야의 성 마틴 교회 지하실 이용자, 남자 88명, 여자 12명


 런던 시의회 보호소 및 숙소 이용자, 남자 674명, 여자 15명


[*분명 과소평과 일테지만, 여전히 비율은 믿을 만하다]




이 비율은 자선행사에서 남자가 여자를 열명 중에 한 명 꼴로 윗도는 것을 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원인은 실업률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겉모습이 흉하지 않은 여성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자들에게 몸을 의탁 할 수 있다. 결과는, 부랑자의 경우, 남자들은 독신이 될 수 밖에없다. 당연히 말 할 필요도 없이 부랑자가 자신의 계층에서 여자를 찾을 수 없다면, 그 위의 여자들은-바로 위에 있는 여자라고 할 지라도- 달 처럼 손이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이유는 따져 물을 가치도 없다, 의심할 필도 없이 여자들은 절대, 아니면 거의 절대, 그들보다 한 참은 더 가난한 남자들에게 자신을 맞추지 않는다. 부랑자는, 그러므로, 거리에 나앉는 순간부터, 독신이 된다. 몇 실링을 모아 사창가를 찾지 않는 이상-정말 드문 일이겠지만-철저하게 아내나, 애인 또는 어떤 여자라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없다. 





결과가 무엇일지는 다음과 같이 명백하다-동성애와, 예를 들어, 종종 발생하는 강간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 보다 더 깊숙히 들어가면 자신이 결혼상대자로서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남자의 마음 속에 자기비하가 꿈틀거린다는 것이다. 성욕은, 높게 보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욕구로서, 이에 대한 굶주림은 육체적 굶주림만큼이나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한다. 빈곤의 유해성은 사람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황폐하게 하면서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욕구불만이 이 황폐화 과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굴욕만큼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부랑자들의 삶에 있어 다른 거대한 유해성은 강요된 나태이다. 부랑자법에 따르면, 부랑자는 거리를 걷고 있지 않다면 수용소에 들어가 앉아 있어야하고, 그 사이 시간에는, 부랑자 보호소가 문을 열때까지 풀밭에 누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명백하게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삶의 의지를 꺽어 버린다, 특히 교육받지 못 한 사람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여기에 더해서 사소한 사실들도 열거를 할 수 있다-하나만 말 해보자면, 불편함으로서, 거리의 생활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기억할만한 것은 평균의 부랑자들은 제대로 된 옷이 없고, 그들이 신고 서 있는 신발은, 발에 맞지도 않는다, 그리고 몇 달을 이어 의자에 앉지도 못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부랑자들이 겪는 고통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환상적으로 유쾌하지 못 한 삶을 살며, 그 어떤 목적도 없이 그 삶을 영위한다. 수용소 방과 거리에서 18시간을 보내며, 감옥과 감옥사이의 헛된 경로를 개발 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 영국에만도 최소 수 천명의 부랑자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매일같이 풋파운드의 힘을 쏟아 내는데-몇 천 에이커를 일구고, 몇 마일의 도로를 닦고, 몇 개의 집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힘이다- 아무 의미없는 걸음에 사용될 뿐이다. 매일같이 수용소 벽을 바라보며 낭비하는 그들 전부의 시간을 더하면 아마도 십년은 족히 될 것이다. 그들은 국가가 각 한 명의 부랑자에게 일주일씩 최소 1파운드는 쓰게 만든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 이들은 끝나지 않는 지루한 손수건 돌리기 놀이 속에서, 주변만을 끊이없이 맴 돌고 있다, 무용지물이다, 누군가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의미조차 가지지 못 한다. 법은 이 과정이 반복되게 하고 있고, 우리 모두는 이것에 적응해 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다. 







부랑자들의 삶을 무익하다고 인정했을 때, 질문은 그들의 삶을 그 어떤 것이 개선을 시킬 수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부랑자 보호소를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장소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작년 한 해 동안에도 몇 몇의 부랑자 보호소들이 개선이 되었고,-그 곳에 머물러 본 사람들의 말이 맞다면, 원형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모든 수용소가 똑같이 해야 된다는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는 못 한다. 문제는 부랑자들을 반즘 죽어 가며, 지루해 하는 노숙자에서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되돌려 놓느냐 하는 것이다. 단순한 편의시설의 증강은 이를 해결 할 수 없다. 부랑자 보호소가 아주 사치스러워 진다고 할지라도(절대 그럴 일은 없다) 부랑자들의 삶은 여전히 허투로 쓰인다. 여전히 극빈자로서, 가정생활과 여자로부터 단절이 되어 있고, 사회에 불필요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극빈을 벗어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는 오직 그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주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일을 위한 일이어서는 안된다,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현재도, 대다수의 부랑자 보호소에서는, 부랑자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그들의 식사를 위해 돌을 부수는 일을 대신 해야 했는데, 앞으로 몇 년을 쓸 수 있는 돌을 부수고 나자 일은 정지가 되었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도 그들은 빈둥거리도록 내버려지고 있다, 보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그들을 유용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각 구빈원은 작은 농장이나 텃밭을 운영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체 건강한 부랑자들에게 하루치 일을 하게 만들면 된다. 텃밭이나 농장의 생산물은 부랑자를 먹이는데 사용이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라도 음식같지도 않은, 차와 빵 그리고 마가린 보다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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