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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I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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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I 



보조가 머무르는 간이숙박소의 가격은 하룻밤에 9펜스였다. 넓고, 넘치는 사람들, 500명을 수용 할 수 있는 이 곳은, 거지, 부랑자, 잡범들이 자주모이는 유명한 단골 장소였다. 모든 인종들은, 흑인과 백인 조차도, 피부색의 구분없이 평등한 관계로 뒤섞여 있었다. 한 쪽에 인도인들 보였고, 나는 그 중 한 명에게 짧은 우르두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자, 만약 인도에서 들었더라면 몸 서리 칠 수도 있는 단어로, 나를 불렀다. 우리는 피부색이 가진 편견의 범위 밑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삶들을 짧게나마 경험을 얻었다. 늙은'할아버지'라고 불리는 70세의 부랑자는, 담배꽁초를 모아 담뱃속을 1온스에 3파운드에 팔았는데, 이 방법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의사'는-진짜 의사였는데 위법행위로 의사직을 잃었다,  얼마 안되는 펜스에 진단을 해주면서 신문을 팔았다. 조그만 치타고니안 동인도인 선원은, 맨 발에 굶주린, 자신의 배에서 도망친 이 사람은 런던을 헤매이고 있었다, 너무 멍청하고 속수무책이여서 자기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 여기가 리버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구걸편지작가는, 보조의 친구였는데, 자선단체에 자신의 아내장례식를 치룰 비용을 위한 애처로운 호소문을 썼다, 편지가 효력을 발휘하면, 혼자 빵과 마가린을 가지고 잔치를 벌였다. 그는 형편없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말을 걸어보니, 다른 사기꾼들이 그렇듯, 그도 자신의 거짓말의 대부분을 믿었다.




이 숙박소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알레이셔 같은 곳이었다.                              





보조와 있는 동안 그는 내게 런던에서 구걸하는 중요한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구걸하는 기술에는 통상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거지들은 대단히 다양하다, 단순히 구걸하는 거지와 돈을 받고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 거지 사이에는 뚜렷한 사회적 선이 존재한다. 거지들이 벌어 들이는 돈의 양도 가진 '기술'에 따라 차이를 달리했다. 선데이 신문에 실린 2000파운드를 바지 춤에 꿰매둔채 발견 된 거지의 이야기는, 당연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일주일 생활비를 한 번에 벌 때면, 상류거지들은 많은 양의 돈을 가지고 있긴하다. 가장 많이 버는 거지들은 거리의 곡예사와 사진작가들이다. 곡예사들은, 가장 좋을 때는,-극장 관객들이 서있는 곳에서, 예를들면,- 일주일에 5파운드는 종종 벌어 들인다. 거리의 사진작가들도 비슷하다, 그러지만 좋은 날씨에 좌우가 된다. 그들에게는 사업을 활성화 시키는 교묘한 술수가 있다. 제물이 될 법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 카메라 뒤로 달려가 사진을 찍는 척 한다. 그리고 희생자가 다가오면, 이렇게 외친다. 





'여기 있습니다, 손님, 사진이 아주 멋지게 찍혔어요, 1파운드 입니다.'





'사진 찍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요,' 희생자가 저항한다, 





'아니, 찍히기를 원치 않으셨다고요? 손으로 신호를 주신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건판 하나 날아갔구만! 한 판에 6펜스나 하는건데.' 




이 순간에 제물들은 보통 불쌍함을 느끼고 어찌됐든 사진을 사기로 한다. 사진작가들은 건판을 확인하고 빛이 들어가 망쳤다고 말하고, 사진을 새로 무료로 찍어 준다고 한다, 제물이 거절하면, 그들은 손해를 볼게 아무것도 없다. 





거리의 악사는, 곡예사들이 그렇듯, 거지가 아닌 예술가로 여겨진다. 쇼티라는 거리의 악사이자 보조의 친구는, 그의 직업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와 그의 동료는 화이트 채플이나 커머셜 거리에 있는 선술집들 앞에서 '일'을 했다. 거리의 악사들이 거리에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이는 오산이다. 그들이 버는 돈은 열에 아홉은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나온다-오직 싸구려 술집들에서만 가능한데, 괜찮은 술집에는 입장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쇼티의 방법은, 한 선술집 밖에 멈추어 서서, 쇼티가 한 곡을 연주한다, 그러고나면, 나무 의족을 한 그의 동료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며, 모자를 들고 술집 안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동전'을 받고 나면 꼭 다른 곡으로 연주하는 것은 쇼티의 체면이었다-앙코르를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진정한 거리의 악사였기 때문이고 단지 돈만 받고 장소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는 일주일에 3파운드 정도 벌었지만, 오르간의 일주일 대여료로 15실링을 내야 했기에, 각자가 가져가는 돈은 평균 일주일에 1파운드 정도 됐다. 이 둘은 아침 여덟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거리에 있었고, 토요일에는 더 늦게까지 있었다. 






보도화가들은 예술가라 불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보조는 내게 '진짜' 화가를 소개시켜 주었다-그는 파리에서 실제로 예술을 공부한 사람으로 그가 파리에 있는 동안에는 예술가들의 사교 모임에 그림을 제출하고 했었다. 그의 주 그림들은 옛 거장들의 따라 그렸는데, 돌바닥에 그린다는 것을 고려한다해도, 경탄 할만큼 정도로 잘 그렸다. 그가 어쩌다 보도화가가 되었는지 말해 주었다. 





'아내와 아이가 배를 꼻고 있었다네. 판매상들에게 보여주려고 가지고 나간 그림들을 들고,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지, 어떻게 하면 망할 1파운드나 2파운드를 벌지 골몰해 하면서. 그러다, 스트랜드가에서, 무릎을 꿇고 그림을 친구를 보았는데, 사람들이 페니를 던져주더군. 내가 지나가는 순간 그 남자는 일어나서 술집으로 들어갔어. '망할,'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나라고 못 할게 있나.' 그렇게 충동적으로 자리에 앉아서 그가 두고간 분필로 그림을 그렸지,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배고픔으로 정신이 몽롱해져 있었을거야.신기한 건 내가 한 번도 색분필로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거야, 그림을 계속 그리면서 배웠어야만 했지. 그래도, 사람들이 멈춰서서는 내 그림이, 9펜스 정도는 주면서, 그리 나쁘지도 않고 평범하지도 않다고 말 해 주더군. 그 때 이 사내가 술집에 나왔지. -지금 내 자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한테, 배가 고파서 뭔가라도 해야 했다고 설명 했어. '오' 그러자, '나랑 술이나 한 잔 하지.' 그렇게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그 뒤 보도화가가 되어 살아 왔네.'





내가 일주일에 1파운드 정도 버는데, 일주일에 1파운드로는 6명의 자식들을 키우기가 쉽지 않아, 그래도 운이 좋아서 내 아내가 삵바느질로 약간이라도 벌고 있다네.'





'이 생활의 최악은 추위이고, 그 다음이 참아내야 할 참견들이지. 처음에는, 내가 이 분야를 잘 모를 때였는데, 나체그림을 바닥에 베껴 그리고는 했었네. 처음 그렸던 곳이 평야의 성 마틴 성당 앞이였지.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수도복인지 뭔지 입고 있었던 것 같은데-길길이 화를 내면서 나와서는. '성스러운 신의 집 앞에 그런 외설적인 그림을 그려도 생각하는거요?' 라고 소리쳤네. 그래서 지워버렸네. 그림은 보티첼리의 비너스 였지. 똑같은 그림을 템스 강둑에 그렸는데. 한 경찰이 지나가면서 그림을 보고는, 말 한 마디 없이, 즈려 밟고는 발바닥으로 문질러 버리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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