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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VII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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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15분즘 아일랜드인은 나를 수용소로 데리고 갔다. 건물은 구빈소 구내 한 편에 서있었는데, 음침해 보이는, 빛바랜 노란색의 벽돌로 된 정육면체 건물이었다. 창살로 막힌 창문들이 줄지어 있었고, 높은 벽과 철문이 도로로부터 건물을 격기시키고 있었다, 감옥에 매우 비슷해 보였다. 철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앳되보이는 소년은 16살 이었고, 가장 늙은 사람은, 이빨 빠진 미라같이 생긴 75세의 남자였다. 몇 명은 부랑자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었다, 씻지않아 새까매진 얼굴, 지팡이와 작은 주전자가 눈에 띄었다. 다른 몇 몇은 공장 노동자이거나, 농업 노동자들이었고, 한 명은 옷깃이 있는 옷에 넥타이를 맨 사무원이었으며, 두 명은 분명 정박아들이었다. 전체로 보면, 그곳에 서서 노닥거리고 쉬고 있는 그들은, 하나의 넌더리나는 광경이었다. 위험하거나 악랄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볼품도 없고 초라한, 거의 다 해진 옷을 입은 사람들은 못 먹은 티가 확연했다. 그들은 친근했다, 그렇지만, 어떤 질문도 받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권해 주었다-그게, 꽁초들이긴 했지만. 





우리들은 담장에 기대었고, 담배를 태우며, 부랑자들은 자신들이 최근에 가보았던 수용소들에 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 보아하니 모든 수용소들은 다른 듯 했고, 각 수용소는 특유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이는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영국에 있는 모든 수용소의 특색을 읊어 줄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이다, A에서는 흡연이 허락되지만 방 안에 벌레가 있다, B는 침대가 편하지만 문지기가 고약하다, C는 아침 일찍 들여 보내주지만 사람이 마실 수 없는 차를 준다. D에서는 한 푼의 돈이라도 있다면 관리인들이 훔쳐간다- 등 등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부랑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한 쪽 수용소에서 다른 수용소로 하루만에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말 해주길 바넷 성 알반 경로가 최고라고 했고, 빌러리키과 쳄스포드 그리고 켄트의 아이드 힐은 피하라고 일러주었다. 첼시는 가장 호화스러운 수용소로 정평이 나있었다. 누군가는, 수용소에 대한 찬사를 늘어 놓으며, 그 곳의 담요는 수용소의 담요와는 달리 교도소의 담요에 더 가깝다고 했다. 부랑자들은 여름이 도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갔고, 겨울이 되면 가능한한, 더 따뜻하고 자선행사가 많은, 큰 마을 주변을 맴돌려 했다. 하지만 한 수용소에서, 런던에서는 두 수용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머물 수 없었기에, 일주일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그들은 계속 이동해야만 했다.





여섯시가 넘자 철문이 열렸고 우리는 줄을 지어 차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사무실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의 이름과 직업, 나이 게다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까지 직원이 장부에 기입하고 있었다-부랑자들의 이동을 확인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나는 내 직업을 '화가'로 대었다. 일전에 수채화를 그려 본 적이 있다-안 그려 본 사람이 있을까? 직원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도 물었고, 모두 없다고 대답했다. 8펜스 이상을 들고 수용소에 들어가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일이었다, 만약 그 이상이 있다면 정문에서 넘겨 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부랑자들은, 동전 소리가 나지 않게 헝겊 오라기에 꽉 매어서는, 몰래 가지고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모든 부랑자라면 가지고 다니는 차 가방이나 설탕 가방 속에 돈을 넣어 두거나, 그들이 가진 '개인 서류' 속에 감춘다. '개인 서류'는 신성시 되기에 절대 검색을 받지 않는다. 





신고가 끝이나고 우리는 부랑자 대장(그의 일은 일용직을 감시하는 것이고, 대개 구빈소의 극빈자였다)으로 알려진 사람과 푸른색 정복을 입고, 우리를 소떼 처럼 취급했다, 고함을 지르는 악당같은 문지기의 지도에 따라 수용소로 이동했다. 수용소는 화장실과 욕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를 제외한 전부는, 양 쪽으로 줄지어 이어진 돌로 된 방들 뿐이었는데, 총 백개 정도 되었다. 돌로 된 우울한, 텅 빈 공간은, , 대충 닦은 듯한 백색도료로 칠해 져있었다, 그리고 냄새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겉모습을 보고 판단을 했는데, 녹색비누, 표백제 그리고 변소 냄새가 섞여 있는 듯 했다- 사람을 비의욕적으로 만드는 이 냉랭한 냄새는, 감옥에서나 날 법했다.





문지기는 우리 모두를 통로로 몰아 넣고는, 한 번에 여섯명씩 욕실로 오라고 명령했다, 씻기 전에 몸수색을 당해야 했다. 몸수색은 담배와 돈을 찾기 위함이었다, 롬튼 수용소는 담배를 숨켜 들어 가기만 하면 담배를 필 수 있는 곳 중 하나였는데, 발각이 되면 모두 압수를 당했다. 이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일러주기를 문지기는 절대 무릎 밑으로는 수색을 하지 않는다고 했고, 우리는 욕실로 들어가기 전에 담배를 신고 있는 부츠 발목에 감추었다. 그 뒤에, 옷을 벗으면서, 재빠르게 외투에 담배를 집어 넣었다, 외투는 지닐 수 있게 허락되었는데, 베개로 사용해야 됐기 때문이다. 






욕실의 광경은 놀랄만큼 역겨웠다. 50명의 더러운 남자들이, 두 개의 욕조와 끈적끈적한 두 개의 공용목욕수건을 가지고, 그 비좁은 공간에서, 완전한 나체로 서로를 밀치고 있었다. 그 지독한 발냄새를 나는 절대로 잊지 못 할 것이다. 실상 절반도 안되는 부랑자만이 목욕을 했다(뜨거운 물이 그들의 '면역성'을 약화 시킨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발가락을 감싸는데 사용하는 지독하리 만치 기름진 발가락 감싸개라 불리는 헝겊과 얼굴 그리고 발은 전부 씼었다. 깨끗한 물은 욕조 하나를 완전히 차지한 사람만이 사용 할 수 있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발을 씻은 물로 목욕을 해야 했다. 문지기는 우리를 이곳 저곳으로 밀쳤고, 누군가 굼뜨기라도 하면 야단을 쳤다. 내가 씻을 차례가 왔을 때, 사용하기 전에, 때로 뒤덮힌 욕조를 한 번 닦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딱 잘라 대답해 주었다, '닥치고- 씻기나 하셔!' 그의 태도는 수용소의 분위기를 알게 해주었고, 나는 다시 말 하지 않았다. 





우리가 목욕을 끝내자, 문지기는 우리들의 옷을 한 꾸러미로 묶고는 구빈소 옷을 나누어 주었다-회색면으로 된, 막한 잠 옷 같은 것으로, 세탁을 했는지도 불확실했다. 우리는 한 번에 방으로 보내졌고, 곧 이어 문지기와 부랑자 대장이 건너편의 구빈소에서  간소한 저녁을 가지고 왔다. 각 사람의 배급량은 마가린이 발린 반 킬로그램 빵 한 조각과 양철 주전자에 담긴 맥주 한 잔 양의 설탕빠진 코코아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오분만에 게걸스레 먹어치워 버렸고, 일곱시가 되자 방들의 문은 밖에서 잠겨졌다, 다음 날 아침 여덟시까지는 잠겨지게 되어 있었다. 





각 방 하나에 두 명이 자게끔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와 함께 머물 수 있었다. 나는 친구가 없었기에, 혼자 온 다른 남자와 함께 방에 배정되었다, 깡마르고 볼품 없는 얼굴에 약간은 사시끼가 있었다. 돌로 된, 이 방의 크기는 딱 두 명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고, 창살이 쳐진 조그마한 창문은 벽 높은 곳에 붙어 있었고 문에는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다, 감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방안에는 여섯장의 담요, 요강 하나, 온수관,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무언가 부족한 것 같은 애매한 기분으로 방안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는, 놀람과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무엇이 없는지 인식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근데, 제기랄, 침대는 어딨지?'





'침대?' 놀랐다는 듯이, 함께 있던 남자가 되 물었다. '침대 따위는 없어! 뭘 기대한거야? 여긴 침대없이 바닥에서 자는 수용소 중 하나라고. 아직도 적응이 안됐나?'





수용소에 침대가 없는 일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외투를 말아 온수관 쪽에 두고, 할 수 있는만큼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더럽게 답답했지만, 모든 담요를 바닥에 깔 정도로 따뜻하지는 않았기에, 바닥을 푹신하게 만들기 위한 담요는 한 장 밖에 쓰지 못 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숨을 내 뱉을 수 있을 정도로, 붙어 누웠다, 맨 살의 팔과 다리는 끊임없이 부딪히고, 잠이 들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 쪽으로 몸을 굴렸다. 좌우로 몸을 뒤척여 보아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쪽으로 몸을 돌리면 처음 느껴지는 것은 둔해진 감각이었고, 그 다음으로 바닥의 딱딱함이 주는 날카로운 고통이 담요를 뚫고 올라왔다. 잠을 잘 수는 있었다, 하지만 10분 이상 지속되지는 않았다. 





자정즘에는 같이 잠을 자는 남자가 내게 동성애적 행동을 취했다-칠흑같이 어두운, 잠긴 방에서 겪은 고약한 경험이었다. 그는 매우 허약한 사람이었고, 나는 아주 쉽게 그를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다시 잠을 다시 청하기는 불가능 했다. 남은 밤 동안 우리는 깨있는 상태로, 담배를 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는 그가 살아 온 삶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기술자였지만, 3년간 실직상태라고 했다. 아내는 그가 직장을 잃자마자 즉각 그를 버렸고, 그 뒤로 여자가 어떤지도 잊어 버릴만큼 여자로부터 떨어져 지내 왔다고 한다. 부랑자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성애가 보편적이라고, 그가 말했다. 





여덟시가 되자 문지기는 복도를 따라 문을 열어주며 '모두 나와!' 라고 외쳤다, 문이 열리자, 퀴퀴한 악취가 진동하며 빠져 나갔다. 복도는 단번에, 각 손 마다 요강을 든, 지저분한 회색 형체들로 가득찼고, 욕실로 가기 위해 서로를 밀치며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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