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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II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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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접시닦이 생활의 어떤 점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내 의견을 나누고 싶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대단히 현대화 된 도시 속에서 수 천명의 사람들이 그 들의 깨어있는 시간을 뜨거운 지하소굴 안에서 접시를 문지르며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점은 이상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제기하는 의문점은 어째서 이런 삶이 계속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어떤 목적이 이를 지탱해 주는가, 누가 이런 삶을 유지되게 하는가, 그리고 어째서 나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느냐 이다. 나는 접시닦이 삶의 사회적 중요성데 대해 생각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 





접시닦이들을 현대화 된 사회의 노예들이라 칭하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듯 하다. 이 사람들을 울음을 흘릴 필요는 없는 것이, 이들은 많은 육체노동자들 보다는 상황이 낫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이 사고 팔리게 되면 더 이상 자유롭지 못 하게 된다. 그들의 일은 기술 없이 굽실거리면 된다. 목숨을 부지 할 정도의 급여만을 받는다. 그들의 유일한 휴일은 해고다. 결혼은 가로 막혀 있고, 결혼을 하게되면, 그들의 아내도 일을 같이 해야만 한다. 행운의 기회가 아니라면, 이 삶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없다, 감옥에 갖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 졸업장을 가진 누군가는 파리 어딘가에서 접시를 10시간 15시간을 문지르고 있다. 누구도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말 할 수는 없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생각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에 갖혀 있을 뿐이다. 만약 접시닦이들이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오래전에 노조를 만들고 더 나은 처우를 위해 시위를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여가를 즐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놓았다.





질문을 해 보자, 왜 이런 노예제가 멈추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모든 일이 행해지는데는 타당한 목적이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법이다. 누군가가 유쾌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는, 그 일은 필요하다고 말 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 된다고 생각한다. 석탄 채광을, 예로 들어보자, 힘든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다-우리는 석탄이 필요하다. 하수도에서 일 하는건 유쾌하지 못 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 접시닦이들의 일도 이런 맥락이다. 누군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일주일에 80시간을 접시를 닦아야 한다. 문명화 된 세상의 일이다, 그러므로 질문할 가치도 없다. 이 점은 고려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접시닦이들의 일은 정말 현대문명에 필요할까? 우리에겐 그 일들이 "고된" 일이라는 느낌이 있는데, 힘들고 유쾌하지 않은 일이며, 우리가 육체노동을 숭배해 왔기 때문이겠다. 나무를 자르고 있는 사람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사회의 필요성을 채우고 있다고 확신해 한다, 단순히 그가 그의 근육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마도 그가 흉측한 동상을 세우기 위해 아름다운 나무를 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들지 않는다. 이는 접시닦이도 이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마에 흐르는 땀으로 그들이 먹을 빵을 얻는다. 그들이 제공하는 호화스러움은, 매우 자주, 호화스러움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뜻하는 호화스러움이 호화스러움이 아님을 뜻하는 예가 있다, 유럽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인도의 인력거꾼이나 마차를 끄는 조랑말들을 예로 가져와 보자. 극동에는 수 백명의, 샅바를 맨 깡마르고 검게 탄 사람들이 있다. 몇 몇은 병에 걸려 있고, 몇 몇은 50살이 넘었다. 태양과 비를 맞으며 끊임없이 달린다, 머리는 숙이고, 그들의 흰수염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손잡이 끝을 끌어 당긴다. 그들이 늦게 달리기라도 하면 손님들은 그들을 여성의 성기로 비하하며 욕한다. 한 달에 30 루피에서 40 루피를 벌며, 몇 년이 지나면 폐가 망가지도록 기침을 한다. 마차를 끄는 조랑말들은 깡말랐다, 악독한 것은 그들은 아주 싼 가격에 팔려 몇 년간의 일만이 남겨진다. 그들의 주인들은 채찍을 음식 대체재로 여긴다. 그들의 일에는 방정식 같은 것이 있다- 채찍 더하기 음식은 힘이다. 주로 60 정도가 채찍이고 음식이 40 정도가 된다. 말들의 목에는 종종 넓은 상처가 띠를 두드고 있기에, 맨 살로 하루종일 마차를 끌고 다니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말들을 일 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말들을 거칠게 때려 지금 느끼는 고통이 다른 고통보다 더욱 크게 느껴지게 할 필요가 생긴다. 몇 년이 지나면 채찍 조차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고, 조랑말들은 지쳐 떨어져 나간다. 이 것들이 필요하지 않은 일들의 사례다, 실제로 마차를 끄는 조랑말이나 인력거꾼은 필요가 없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걷는 것이 동양에서는 천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치품이다,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들이라면 알 고 있듯, 매우 불쌍한 사치품들이다. 아주 적은 용품만을 살 여력이 있는데, 이 또한 사람과 동물이 겪는 고통을 상쇄 시켜주지 못 한다. 





접시닦이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들을 인력거꾼이나 마차를 끄는 조랑말과 비교하면 왕이 되겠지만, 그들의 사례도 그리 다르지 않다. 접시닦이들은 식당이나 호텔의 노예들이다, 그들의 노예화는 거의 쓸모가 없다. 거대한 호텔과 깔끔한 식당의 진정한 필요성은 어디에 있을까? 호텔이나 식당은 호화로움을 제공해야 하지만, 실상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조잡하고, 사치품을 흉내낸 것들이 전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호텔을 싫어한다. 어떤 식당은 다른 식당들 보다 낫기는 하지만, 같은 가격으로,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좋은 음식을 식당에서 먹기란 불가능 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호텔과 식당은 존재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 백명의 사람을 노예로 만들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일하게 하느냐는 요점이 아니다. 요점은 호화스러움을 대변해야 하는 사기꾼들이다. 세련됨이란, 불리는 것과 같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단순히 직원들의 일은 늘어나고 손님들은 돈을 더 낸다는 것이다. 호텔의 도빌에 휴양용 별장을 사고 있는 주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이익을 얻지 못 한다. 기본적으로, '세련된' 호텔이란 백명의 사람들이 개 같이 일을 하고 이백명의 손님들이 터무니 없는 가격에 실제로는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사는 곳이다. 만약 호텔과 식당에서 터무니 없는 짓을 잘라내고, 일이 단순히 효율적으로 처리가 된다면 접시닦이들은, 매일 같이 열다섯 시간씩이 아닌, 하루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만 일을 해도 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접시닦이들의 일은 거의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따라 오는데, 대체 누가 그들이 계속해서 일 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나는 직접적인 경제적 원인을 넘어서서, 평생을 접시를 닦아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누가 어떤 기쁨을 얻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려 한다. 의심할 필요 없이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편안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런 생각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 낸다. 노예는, 마르쿠스 카토가 말 하길, 잠을 자고 있지 않다면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했다. 노예들이 하는 일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단지 일을 해야만 한다, 일 그 자체 안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노예들은 그래야 한다. 이러한 정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유용하지도 않은 힘들고 단조로운 일들을 산 처럼 쌓아 놓고 있다. 





내가 믿기로는 유용하지 않은 일을 영구화 시키는 본능은, 기저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군중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군중들은(많은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너무 저급한 동물들로서 만약 여가 시간을 가지게 되면 위험해 질 수 있다.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바쁘게 만들어 놓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 지적으로 정직한 부자가 있다, 그가 만약 노동여건개선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면, 보통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할 것이다. 






'우리는 빈곤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빈곤이라는 것이 너무 동떨어져 있기에, 우리는 그 것이 가진 불쾌함을 생각하며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차라리 즐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에 있어 어떤 행동을 할거라 예상은 하지 마십시요. 우리는 저소득계층인 당신네들을 안타까워는 합니다, 피부병을 앓고 있는, 한 마리의 고양이를 안타까워 하듯 말입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당신들 여건을 개선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해 싸울 것 입니다. 당신들이 지금처럼 있음으로 우리는 더 큰 안도감을 느낌니다. 현재 상황이 우리에게 어울립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 입니다, 하루에 단 한 시간의 여유도 말이죠. 자, 존중하는 형제분이여,  보아하니,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경비를 지불하기 위해 땀 흘려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으니, 땀이나 흘리시고 그렇게 살다 죽어버리세요.'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특별히 이렇다. 이 사상의 본질은 수 없이 많은 글 속에서 읽을 수 있다. 일 년에(말 하자면) 4000 파운드 밑으로 버는 소수의 교양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부자들의 편에 서는데, 어떠한 자유라도 가난한 자들에게 이양이 되면 그들의 자유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암울한 마르크스적 유토피아를 대안으로서 예견하지만, 교육받은 사람들은 현 상황의 유지를 선호한다. 이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부자친구들을 극도로 미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자들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사람일지라도, 가난한 사람들 보다는, 그들이 가진 행복에 해로움을 끼치지도 않고, 자신들의 부류에 더욱 가깝기도 하다, 그렇기에 부자들의 곁을 지키는 것이 낫다라고 생각을 한다. 위험하다고 추정되는 군중에 대한 공포심은 거의 모든 지성인들을 그들의 의견에 있어 보수적으로 만든다. 





군중에 대한 공포는 미신적이다. 이 미신적인 공포심은,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는, 마치 두 이 두 부류가 흑인과 백인이 다른 인종인 것 처럼, 설명하기 힘든,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을 구분짓는 것은 그들의 소득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 보통의 백만장자들은 평범한 접시닦이들이 새로운 양복을 입고있을 뿐이다. 주제를 전환해 보자, 어느 쪽이 맞을지, 누가 판사이고 누가 도둑일까? 가난한 부류와 섞여 있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다. 문제는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인데, 진보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을거라 기대를 받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절대 가난한 부류와는 섞이지 않는다. 대체 교육받은 사람들이 가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비용1)의 시에관한 원고에 적힌 'Ne pain ne voyent qu'aux fenestres' 는 부분에 설명을 위한 주석이 필요하다고 편집자는 생각하고 있었다.1)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경험 조차도 굶주림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이런 무지로부터 군중에 대한 미신적인 공포심이 자연스러워지는 결과를 도출한다. 교육 받은 사람들은 야생적인 무리가 하루의 자유를 위해, 그들의 집을 약탈하고, 책을 불사지르고, 기계를 지켜보는 일을 시키고, 화장실을 청소시킬 것이라 상상을 한다. '그 어느 것보다도,'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군중을 속박을 풀어 주느니 차라리 어떠한 부당함이 필요하다.' 이들은 태반의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의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 하기에, 군중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 군중들은 이미 자유로워져 있고, -부자들의 모습을 하고- 그들의 힘을 사용하여 권태의 쳇바퀴를 세우고 있다, '세련된'호텔같은 것들 말이다.





요약을 해 보면, 접시닦이는 노예다, 필요없는 노예로서, 대체로 우습고 필요없는 일을 한다. 접시닦이는 일에 얽매여 있는데, 궁극적으로, 그들이 여가를 가지게 되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뚜렷하지 않은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이들 편에 서 있어야 함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은 이들에 대해 무지하고 무지의 결과로 그들을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상황을 접시닦이들의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의 삶에 대해 고민해 보았기 때문이다. 셀수 없이 많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가, 틀림없이 진부했을, 근원적인 경제에 관한 질문을 제외한, 접시닦이들의 기본적인 삶에 대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이다. 호텔에서 일을 해본 누군가의 머릿속에 박힌 생각들 중 하나의 견본으로서 이들을 묘사 했음이다.





XXIII





식당을 떠나자 마자 나는 침대로 들어가 시계가, 한 시간을 빼고, 한 바퀴를 돌 동안 잠을 잤다. 그리고 이주만에 처음으로 이빨을 닦고, 목욕을 하고 머리를 자르고는, 전당포에서 옷을 찾아왔다. 나는 이틀동안 눈부시게 아름다운 게으름의 순간을 보냈다. 심지어 나는 내가 가진 최고의 정장을 입고 내가 일했던 식당에 찾아갔다, 술을 파는 곳에 몸을 기대어 5 프랑을 주고 영국 맥주 한 병을 마셨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한 때 노예의 노예였던 장소에 손님으로 있는 것은. 보리스는 우리가 직업을 얻고 돈을 만질 수 있을 기회가 왔을 때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 했다. 그 뒤로 그의 소식을 들었는데, 그의 말로는 하루에 백프랑을 벌고 매우 진중하고 절대 마늘 냄새가 나지 않는 여자를 만났다고 한다. 





하루를 내가 살던 구역을 작별 인사를 하러, 돌아다니며, 보냈다. 그 날이, 한 때 같은 구역에 살았었던, 수전노 루콜의 죽음에 대해 찰리가 말 해 준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찰리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야기는 괜찮았었다.






루콜은, 74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파리에 도착하기 1년 전 또는 2년 전 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내가 있을 때도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야기 하고는 했다. 절대로 그를 다니엘 댄서나 그런 부류의 사람과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아침마다 중앙시장 레 알에 찾아가 버려진 야채를 줍고, 고양이용 고기를 먹고, 속옷 대신 신문지를 입었다. 방의 벽을 덮고 있는 나무를 땔감으로 썼고, 부대자루를 바지로 만들어 입었다. 이를 통해 반 백만 프랑을 투자 하게 된다. 그와 알고 지낼 수 있었다면 매우 좋았을 듯 하다. 






다른 수전노들이 그렇듯, 루콜도 무모한 계획에 돈을 집어 넣음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어느 날 구역에 유태인이 한 명 나타났는데, 조심성이 많았다, 사업 수완이 좋은 이 녀석은 영국으로 코카인을 밀반입 하려는 일급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충분히 쉬운 일이었다, 파리에서 코카인을 구입하기도, 밀반입을 하는 것도 꽤나 단순한 일이었다, 다만 경찰이나 세관원에게 계획을 팔아 넘길 첩자가 언제나 있을 뿐이었다. 이 방법은 코카인을 파는 사람들에 의해 자주 이용 된다고 했는데, 밀수사업은 거대 연합체의 손에 들어가 있었고, 그들이 경쟁을 원치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유대인은, 절대 위험할 일이 없다고 맹세했다. 그는, 다른 평범한 경로가 아닌, 비엔나로부터 코카인을 직통으로 얻어낼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갈취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소르본 대학에 다니는, 젊은 폴란드 학생을 통해 루콜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도 루콜이 육천 프랑을 집어 넣으면 사천 프랑을 계획에 집어 넣으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10 파운드의 코카인을 살 수 있었고, 영국에서 상당히 많은 돈이 될 수 있는 양었다.






폴란드 친구와 유태인은 늙은 루콜의 갈퀴 사이에서 돈을 끄집어 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육천 프랑이 많은 건 아니었다-루콜은 더 많은 돈을 침대 밑에 꿰어 두고 있었다- 하지만 동 전 한닢이라도 남에게 주는 것도 그에게는 고통 이었다. 폴란드 친구와 유대인은 몇 주를 쉬지도 않고 루콜 옆에 붙어서는, 설명하다, 괴롭히고, 구슬리다, 다투고, 무릎을 꿇고 돈을 보여달라고 애원하였다. 이 늙은 남자는 욕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반쯤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의 창자들은 오천 프랑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갈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돈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구석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끙끙거리다가 소리를 치고는 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는 힘을 달라는 기도도(매우 독실한 신자였다)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다른 것도 아닌 기진맥진 해져서, 갑작스레 항복하게 되고 말았다. 그는 돈이 감춰진 침대를 찢고는 육천 프랑을 유대인에게 넘겨 주었다.                                


                          


                 




1) 비용, 프랑스의 시인

2) 프랑스 사전으로도 해석이 불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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