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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VIII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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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내가 있었던 식당에서 주인이 나를 개처럼 취급해도 된다고 생각하더군요. 그래서, 복수로 우유깡통에서 우유를 훔치고는 아무도 알아 차리지 못 하게 다시 봉해 놓았습니다. 밤낮으로 우유를 훔쳤습니다. 매일같이 4리터의 우유를 마시고, 거기에 더해서 크림 반리터도 마셨죠. 주인은 우유가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고 어쩔줄 몰라 하더군요. 우유를 원해서 그런게 아니에요, 이해하시겠습니까, 그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게 바로 원칙입니다, 단순히 원칙이였을 뿐이죠.'




'근데, 3일이 지나자 배가 끔찍할 정도로 아파 오더군요, 그래서 의사에게 찾아 갔습니다. '그 동안 무엇을 드셨습니까?' 의사가 묻더군요. 대답을 해 줬지요, '하루에 4리터의 우유와 반리터의 크림을 마셨습니다.' '4리터요!' 그가 말하길, '당장 멈추시오. 계속 마시면 속이 다 망가져 버릴겁니다. '그걸 제가 왜 신경써야 합니까?' 라고 대답했지요. '나에겐 원칙이 전부입니다. 속이 다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우유들을 다 마셔 버려야 했죠.' 




'아쉽게도, 다음 날 우유를 훔치다 주인에게 걸려버렸지요. '넌 해고야,' 그리 말하더군요, '이번 주 주말에 나가주게.' '실례합니다만, 사장님,' 내가 말했지요, '오늘 오전에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는 안 되지,' 그가 말 하길, '이 번 토요일 전에는 편하게 보내줄 수 없지' '좋습니다, 사장님,'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누가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가나 봅시다.' 그러고는 일을 시작해서는 식기들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첫 날에는 9장의 접시를, 다음 날에는 13장을 깨버렸습니다. 그러고나자 사장은 내 마지막 모습을 보고는 행복해 하더군요.' 




'아, 난 당신이 알고있는 그런 러시아 농민이 아닙니다...'




열흘이 지났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내 수중에는 동전 한 닢도 남지 않게 되었고, 방세는 몇 날을 밀리게 되었다. 우리는 텅비고 우울한 식당 안에서 빈둥거렸다, 배가 너무 고파 남은 일을 처리하지도 못 하고 있었다. 오직 보리스만이 식당이 문을 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급사장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주인장의 돈이 주식에 묶여 있어 유리한 순간에 팔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이론을 만들어 냈다. 열흘째 되던 날에는 먹을 것도 필 것도 없었다, 주인장에게 미리 급여를 주지 않으면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평소와 전혀 다름없이 침착하게, 주인장은 급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나서는, 그의 습관에 따라, 사라져버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밀린 방세 때문에 마담 F를 마주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로의 어느 한 공원의 의자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정말이지 불편했다-등을 배기게 만들었다-그리고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추웠다. 이 러시아인들의 손에 나를 맞긴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 이었는지, 새벽과 일할 시간 사이의 지루하고 긴 시간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침이 되자, 행운이 다시 찾아왔다. 보아하니 주인장이 그의 채권자들의 이해를 얻어내게 된 것이다. 주인장은 주머니에 돈을 채워 돌아왔고, 내부수리가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선불급여를 주었다. 보리스와 나는 말의 간과 마카로니를 샀다, 열흘만에 먹는 따뜻한 음식이었다.   





일꾼들이 왔고, 놀랄 정도로 조잡한 물건들과 허둥지둥 해가며, 내부를 개조했다. 식탁의 경우, 예를들자면, 녹색 모직으로 덮기로 했으나, 주인장이 녹색 모직이 비싼 것을 알고는 용도폐기 된 군용담요를 대신 사왔는데, 땀 냄새가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식탁보로(바둑판 무늬였는데, '노르망디'풍의 장식들과 어울렸다) 이를 덮었다. 마지막 날에는 새벽 두 시까지 준비를 마치기 위해, 일을 했다. 그릇은 8시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 도착 한 것들임에도, 모두 설겆이를 했어야만 했다. 식기구도 행주등도 다음 날 아침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인장의 셔츠와 안내원의 베갯잇으로 그릇의 물기를 말려야 했다. 보리스와 내가 모든 일을 했다, 줄스는 어딘가에 숨어 있었고, 주인장과 그의 아내는 빚쟁이들과 몇 몇의 러시아 친구들과 술자리에 앉아 식당의 성공에 건배를 하고 있었다. 주방장은 식당 안에서 머리를 식탁에 올려두고는 울고 있었다, 50인분의 음식을 할 것이라 말을 들었기 때문인데, 냄비와 솥은 10명 분도 요리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다.자정즘에는 빚쟁이들의 독촉이 있었다, 주방장이 외상으로 얻어 온, 동으로 된 주방기구들을 갖으러 온 것이다. 브랜디 반 명에 그들은 잠잠해 졌다. 





줄스와 나는 마지막 지하철을 놓쳐 식당 바닥에서 자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 본 것은 주방 식탁에 앉아있다 햄을 먹고는 그 곳에 서 있는 뚱뚱한 쥐 두마리였다. 나쁜 징조 같았다, 이 식당이 망할 것이라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 





XX





주인장은 나를 주방의 접시닦이로 고용했다. 일은, 접시 닦기, 주방 청소, 야채 준비, 차와 커피 끓이기, 샌드위치를 만들기, 간단한 요리를 하기, 잡심부름 이었다. 고용조건은, 다른 곳과 다름없이, 500 프랑의 월급과 음식이었다, 하지만 쉬는 날도 없었고 고정 된 근무시간도 없었다. 나는 무한한 돈과 양질의 체제를 갖춘 호텔 X를 보았다. 지금은, 이 식당에서, 대단히 질이 낮은 식당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묘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게, 이런 류의 식당이 파리에는 몇 백개나 있었고, 모든 방문자들은 이런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 




말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여담이지만, 이 식당은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찾는 평범하고 저렴한 식당이 아니었다. 우리는 적절한 음식을 25프랑 미만으로는 제공하지 않았다, 우리는 고풍스럽고 심미적이었는데, 이는 우리 식당의 등급을 올려주었다. 외설적인 그림이, 노라망디 풍으로 꾸며진, 술을 파는 곳에 걸려 있었고-인조 불빛들과 촛대모양의 전등들이 벽에 걸려있었으며, 농노의 도자기도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입구에 말타기 디딤대도 있었다-그리고 주인장과 웨이터들의 우두머리는 전 러시아 장교였다, 그리고 손님들은 떠돌아 다니는 러시아 망명자들이었다. 요컨대, 우리는 확실히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방문 뒷편의 상태는 돼지우리에나 걸 맞았다. 주방의 상황은 이러 했다.




주방은 세로 15피트에 가로 8피트 넓이 정도 되었고, 이 중 반은 스토브와 식탁이 차지했다. 모든 냄비들은 손도 닿지 않는 선반에 올려져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쓰레기통도 하나 였다. 이 쓰레기통은 오후가 되면 꽉 차 있었다, 그리고 바닥은 통상 1인치 정도되는 뭉개진 음식퇴비들로 쌓여 있었다. 




불이라고는 오븐도 없이, 가스 스토브가 전부였고, 모든 술은 빵굽는 곳으로 빼 놓아야 했다.




식품저장실도 없었다. 이를 대체한 것은, 한 가운데 나무가 자라고 반쯤 지붕으로 덮힌 뒷 마당의 그늘 밑이었다. 고기와 야채같은 식재료들은 그 곳 맨땅위에 놓였고, 쥐나 고양이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뜨거운 물도 들어오지 않았다. 설겆이를 위해서는 냄비에 물을 끓여야 했다, 그럼에도, 음식이 만들어 지고 있을 때는 물을 끓일 자리도 없었다, 대부분의 접시는 찬물로 닦아져야만 했다. 부드러운 비누와 파리의 센물로 닦아야 했는데, 이게 뜻하는 바는 기름기를 신문지로 문질러 닦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냄비도 부족해서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저녁까지 놔두지 못 하고, 바로바로 닦아 주어야만 했다. 이것만으로도 하루에 한 시간이 소비 됐을 것이다. 




설치비를 날림으로 지불한 덕분에, 저녁 8시가 되면 전등이 자주  나가고는 했다. 주인장은 촛대 세개만을 주방에서 켤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주방장은 세개는 재수가 없다했고, 그렇게 두개만 사용했다. 




우리의 커피 분쇄기는 인근의 비스트로에서 빌렸고, 빗자루와 쓰레기통은 식당안내원에게 빌렸다. 첫 주가 지나고 세탁소에 맞긴 행주들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비용을 지불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식당에 프랑스인이 한 명도 고용되지 않은 것을 발견한 노동감독관과 문제가 있었다. 주인장은 몇 번의 개인적인 면담을 가져야 했고, 내 믿기로는, 뇌물을 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기회사 직원들은 여전히 빚독촉을 하고 있었고, 우리가 술 아페르티프로 그들에게 매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자, 매일 아침마다 찾아왔다. 식료품점에도 외상을 지고 있었는데, 만약 식료품점 사장의 아내가(콧수염이 있는 60대 여자였다)줄스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외상도 끊겼을지 모른다, 줄스는 매일 아침 그녀를 달래기 위해 보내졌다. 나 또한 비슷하게 매일같이 야채값 몇 닢을 깍기 위해 커머스 거리에서 한 시간을 소비했다. 




충분하지 않은 자본으로 식당을 시작한 결말들이 있었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 주방장과 나는 하루 30접시에서 40접시를 내가면 될 줄 알았지만, 후에는 100접시를 내보고 있었다. 첫 날부터 우리에게는 너무 고되었다. 주방장의 근무시간은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였고, 나는 아침 7시부터 다음 날 12시 30분까지 였다- 17시간 30분을 일했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오후 5시까지는 앉을 시간도 없었고, 더 최악은 쓰레기통이 아니면 앉을 자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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