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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XXIV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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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III 



B가 준 2파운드는 약 열흘 정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지속 될 수 있었던건 패디 덕이었다, 그는 거리에서 지독한 인색함을 배웠고 하루에 제대로 된 한끼도 터무니없는 사치로 여기는 바였다. 그에게 있어, 음식은, 순전히 빵과 마가린만을 의미했다-영겁의 차와 빵 두조각, 이것으로 한 두시간은 배고픔을 속일 수 있다. 패디는 반크라운으로 어떻게 살고, 먹고, 피고, 자는, 이 모든 것들을 하루동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패디는 가끔식 '불을 꺼주는' 일을 했는데, 위태로운 일이었다, 불법이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약간의 돈을 벌 수 있었고 우리의 돈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을 얻어 보려고 했었다. 사무실들이 모여있는 뒷골목으로 다섯시에 갔으나, 이미 30명에서 40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2시간이 지나고 남은 일자리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는데, 샌드위치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이 부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루 열시간을 일하고 3실링을 받는다-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바람이 부는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숨어서 쉴 수도 없는게, 감독관이 수시로 찾아와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감시를 한다. 그들에게 추가적인 문제가 있다, 일용직이라는 것이다, 가끔 3일을 고용하기도 하지만, 절대 일주일 단위로는 고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사람들은 아침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아침마다 줄을 서야만 한다. 일 할 준비가 된 넘쳐나는 실직자들은 이들이 더 나은 처우를 위해 싸울 수 없도록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사람들이 탐내는 일은, 같은 급여를 받으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이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전단지를 한장 받아 주는 것이다, 전단지를 모두 나눠주어야만 할당된 일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우리는 간이숙박소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불결하고, 지루함에 멍해지는 평온한 삶 말이다. 며칠을 이어서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하실 주방에 앉아, 어제 신문을 읽고 있거나, 누군가 구해 온, 유니온 잭 과월호를 읽었다. 그 당시 비가 상당히 많이 왔는데, 모든 사람들이 몸에서 열기를 뿜으며 밀려 들어왔다, 주방에 끔찍한 악취가 진동을 했다. 유일한 즐거움은 주기적으로 먹는 차 한잔과 빵 두조각이 전부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런던에서 이렇게 살고있는지는 모르겠다-최소 몇 천은 되지 않을까 한다. 패디에게는, 실제로 지난 2년간 그가 알고 있던 어떤 삶보다 최고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부랑자 생활의 막간은, 어찌됐든 몇 실링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던 시기였다, 언제나 이런 식이였다. 떠돌이 생활 자체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그의 훌쩍이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보니-패디는 먹고 있지 않을 때는 언제나 훌쩍이고 있었다-실직이 그에게는 얼마나 큰 고문인지 알게 되었다. 실직자들이 그들의 급여에 대해만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문맹자들은, 직업병이 뼛속 깊숙히 박혀있기에, 돈을 원하는 것 보다 한참은 더 일자리를 원한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강제실업상태를 참고 견뎌 낼 수 있다, 이것이 빈곤이 가진 최악의 폐해다. 하지만 패디같은 사람은, 아무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게되면, 개가 사슬에 묶여있는 것처럼 비참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몰락한 사람들'이 다른 그 누구보다도 동정받아야 한다는 소리는 허튼소리다. 진정으로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시작부터 바닥이었고, 아무 대책없이 백지의 상태로 빈곤을 직면해야 되는 사람들이다. 






침체의 서리가, 내 마음 속에 어느 정도 가라 앉아 있었는데, 보조와 이야기 할 때만은 예외였다. 한 번은 빈민가를 순방하는 사람들에게 숙박소가 침공받은 적이 있었다. 패디와 나는 밖에 있다가, 오후에 돌아왔는데, 밑층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밑으로 내려갔고, 반질반질한 옷을 입고, 우리들의 주방에서 종교행사를 열고 있는 부유해 보이는 세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부 선생은 행사용 외투를 입고 있었고, 여자는 자그마한 이동용 오르간 앞에 앉아 있었으며, 나약해 보이는 청년은 십자가상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초대장 이런 것도 없이 밀고 들어와서는 종교행사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숙박객들이 이 침범자들을 대하는 법을 보는 것은 꽤나 즐거웠다. 그들은 이 빈민굴 구경꾼들에게 그 어떠한 무례도 저지르지 않았다. 전적으로 무시했다. 주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합의에 의해-백여명 정도가 있었다-이 빈민굴 구경꾼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참을성 있게 노래를 부르며 함께 부르기를 권했다, 그럼에도 집게벌레보다 못 한 취급을 받으며, 아무 주목을 얻지 못 했다. 종교행사용 외투를 입은 남자는 설법을 전파하려 했지만,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노래소리, 욕설, 그리고 냄비들이 달카닥 거리는 소리에 묻혔다. 사람들은 오르간 바로 옆에 앉아 밥을 먹고 카드놀이를 즐기며, 평온스럽게 그들을 무시했다. 이윽고 빈민굴 구경꾼들은 포기했고 자리를 비웠다, 여하튼 그들은 곤욕을 치루지는 않았다,  그저 무시만 당했을 뿐이다. 분명히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막힘없이 가장 낮은 빈민굴에서 자선사업을 펼쳤다.' 





보조 말로는 이런 사람들이 한 달에 몇 차례고 숙박소로 찾아 온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경찰에 영향력이 있어서, '대리인'도 거부할 수 없다고 한다. 궁금 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의 소득이 일정수준 밑으로 떨어지자마자 어떻게 그렇지않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해주는 권리가 생긴다고 당연시 여기게 되는 것일까.  





B로부터 돈을 받고 9일이 지난 뒤 돈은 1실링 9펜스로 줄어 있었다. 패디와 나는 숙박료 8펜스는 따로 빼두었고, 3펜스는 차 한잔에 빵 두 조각에 썼다, 하나를 시켜 둘이 나누었다-식사라기 보다는 간식에 가까웠다. 오후가 되자 지독하게 배가 고파졌다, 패디는 킹스 크로스 역 근처에 있는 교회를 기억해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부랑자에게 무료로 차를 나눠주는 곳이라고 했다. 그 날이 오늘이였고, 우리는 그곳에 가기로 결정했다. 보조는, 비도 오고 한 푼도 없었음에도, 교회는 자신이랑 맞지 않는다며, 함께 가지 않았다. 교회 밖에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러운 행색을 한 사람들은 공짜 차 소식을 듣고 저 멀리서부터 모여든 것이다, 죽은 버팔로를 감싸고 맴도는 솔개들 같았다.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렸고 성직자 한 명과 소녀들이 나와 우리를 교회 윗층의 회랑으로 안내했다. 복음주의 교회였는데, 벽 여기저기에는 피와 불에 관한 글들이 새겨져 있었고, 삭막하고 일부러 꾸미지 않은 티가 났다, 찬송책은 1250개의 찬송가를 담고 있었다, 몇 개의 찬송가를 읽어보고, 단순히 양만 많은 고약한 운문으로 채워진 문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차를 마신 뒤에 예배가 준비되어 있었기에, 평신도들이 밑층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그날은 평일이었고, 20-30명의 사람들이 전부였다, 지저분한 늙은 여자들이 다수 였는데 털빠진 새들을 연상시켰다. 우리들은 회랑의 의자에 앉았고 차를 받아 마셨다. 차는 1파운드 잼 단지에 담겨 나왔고 6조각의 빵과 마가린도 함께 나누어 받았다. 차를 마시자 마자 문가 쪽에 앉아있던 열 몇 명의 부랑자들은 예배를 피하기 위해 재빠르게 도망쳐 나갔다. 나머지는 남았는데, 감사함의 표시라기 보다는 도망갈 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아서였다. 





오르간에서 소리를 확인하는 소리가 나오고나서 예배가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신호에 맞추기라도 한 듯, 부랑자들이 난폭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도처에서 부랑자들이 예배당 의자에 누워있었고, 웃고, 떠들고, 몸을 숙이고는 빵 알갱이를 신도들에게 던졌다. 나는 담배 불을 붙이려는, 거의 힘을 써가며, 내 옆에 앉은 남자를 제지해야만 했다. 부랑자들은 예배를 순전히 재미난 구경꺼리로 취급했다. 그게, 사실은, 충분히 터무니없는 예배이기는 했다-'할렐루야' 외침이 뜬금없이 터져 나왔고 여기저기서 끝나지 않는 통성기도가 이어지고 있었다-그럼에도 부랑자들의 태도는 도가 지나쳤다. 신도들 중 늙은 남자가 한 명 있었다-부틀 형제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듯 했다-우리를 기도 하게끔 요청받은 사람인데, 그가 일어설때 마다 부랑자들은 극장에에서 하는 것처럼 발을 쿵쾅 거렸다. 부랑자들이 말하기를 이 남자는 이전의 예배에서는 목사가 말리기 전까지 25분간 통성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한다. 부틀 형제님이 다시 일어나자 한 부랑자가 '십중팔구 넌 7분도 못 견딜걸!' 소리가 너무 커서 교회 전체가 들을 수 있었다. 목사보다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하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가끔은 누군가가 분에 찬 '쉿' 소리를 올려 보냈다 그래도 별 효과는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예배에 집중하게 했고, 아무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정말 이상하고, 넌더리 나는 광경이었다. 밑에서는 몇 안되는 순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위에서는 음식을 얻어먹은 100여명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예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더럽고, 털이 덮수룩한 남자들이 회랑에서 비웃으며, 거리낌없이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몇 몇의 늙은 여자들과 남자들이 백여명의 난폭한 부랑자들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우리를 두려워 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음식을 나눠주며 굴욕을 안겨준 그들에 대한 복수였다. 





목사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윗층에서 들리는 키득거리는 소리와 떠드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렁찬 소리로 여호수와에 대한 긴 설교를 했다. 하지만 결국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였는지, 큰 목소리로 선언했다. 





'마지막 남은 5분은 '구제받지 못 할' 죄인들에게 설교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한 뒤, 누구는 구원을 받고 누구는 구원을 받지 못 했다는 의심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5분간 설교를 이어갔다. 그렇지만 우리가 신경이나 썼을까! 목사가 지옥불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을때도, 담배를 말았고, 마지막 아멘이 나올 때는 고함과 함께 우르르 몰려내려오며, 다음 주에도 공짜 차를 또 마시러 오자는 동의를 하고 있었다. 





광경은 내 흥미를 자극했다. 평소 부랑자들의 태도와는 너무 달랐다-비참한 벌레같이 감사해하며 자선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것과는 말이다. 설명을 해 보자면, 당연히, 우리의 숫자가 신도들의 수보다 많았기에 그들을 겁내지 않은 것이다. 자선을 받는 사람은 그들의 후원자를 거의 언제나 싫어한다-이는 인간 본성에 심어져 있는 성격이다, 이 사람 뒤에 50명에서 100명의 사람이 있을 때, 그들은 이런 성질을 보여준다. 





저녁이 되어, 공짜 차를 마신 뒤, 패디는 우연찮게 '불을 꺼주는'일을 하게 되었고 8펜스를 벌 수 있었다. 정확히 하룻밤은 더 잘 수 있는 돈이었다, 우리는 돈을 챙겨두고 다음 날 저녁 9시까지 굶었다. 우리에게 음식을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를, 보조는, 하루종일 밖에 나가 있었다. 도로가 질퍽했기에, 보조는 엘레판트 엔 캐슬 거리에 가있었다, 그는 보호소 아래 하나의 자리를 알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나에겐 담배가 남아있었고, 그렇게 더 나쁠 수 있던 날이 지나갔다. 





8시 반이 되어 패디는 나를 템스 강둑으로 데리고 갔다, 성직자가 일주일에 한 번 무료식권을 나눠준다고 알려진 장소가 있었다. 채링 크로스 다리 밑에 50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들 푸들같이 떨고 있었다. 그 중 몇 몇은 진정으로 끔찍한 상태였다, 강둑에서 자는 사람들이었고, 템스 강둑은 수용소보다 더 최악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 중 한 명은, 단추가 없는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외투를 밧줄로 동여 메고 있었고, 넝마 바지에, 발가락들이 신발 밖으로 튀어 나와있었다, 넝마 그 자체였다. 그의 수염은 이슬람의 고대 수행자처럼 자라 있었고, 기차 기름과 비슷한 흑색의 더러운 오물을 가슴과 어깨에 뒤집어 쓰고 있었다. 먼지를 뒤집어 쓴 그의 머리 밑으로 볼수 있었던 것은 악성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표백된 종이만큼 창백해진 얼굴이었다. 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꽤 괜찮은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사무원이나 매장감독관 같았다. 





성직자가 모습을 나타냈고, 사람들은 그들이 도착한 장소에 모여 줄을 서기 시작했다. 성직자는, 친절하고, 통통한, 젊은 남자였다. 정말 기묘하게도, 파리에 있는, 내 친구 찰리와 닮아있었다. 그는 수줍음을 타며 부끄러워 했다, 짧은 저녁 인사외에는 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둘러 줄을 따라가며 각 사람들에게 식권만을 찔러 넣어주었고, 감사하다는 말은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의 행동의 결과로, 이번에는, 진심 어린 감사가 돌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성직자를-괜찮은 친구라고 칭찬했다.누군가가(성직자도 분명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외쳤다. '이런, 저 사람 주교는 절대 못 되겠군!' 이 말의 의도는, 당연하지만, 따뜻한 찬사였다





식권의 가격은 6펜스 정도였고 멀지 않은 값 싼 식당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의 주인장은, 부랑자들이 다른 곳에는 못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각 식권마다 4페니에 해당하는 음식만을 내주는 것으로 사기를 쳤다. 패디와 나는 같이 식권을 냈고, 다른 커피숍에서는 6펜스나 8펜스 어치에 해당하는 음식을 받아 들었다. 성직자는 1파운드가 넘는 식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주인장은 여기서 일주일에 7실링 또는 그 이상을 부랑자들에게 등쳐 먹었다. 이런 부당함은 부랑자들의 삶에 당연한 부분이었고, 사람들이 돈이 아닌 식권을 부랑자들에게 주는 이상 언제고 이어 질 수 밖에 없다. 패디와 나는 숙박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배가 고팠고, 주방에서 어정거리며, 음식을 불의 따스함으로 대체했다. 열시 반이 지나자 보조가 돌아왔고, 초췌한 모습으로 피곤에 절어있었다, 짓이겨진 발이 걷는 것도 극도의 고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도 한 푼도 벌지 못 했다, 보호소 밑에 있던 자리들은 이미 누군가가 이미 선점하고 있었고, 그는 경찰들의 눈치를 봐가며, 구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8펜스를 모아서 왔지만-숙박료 1펜스가 부족했다. 방세를 낼 시간은 이미 한 참 지났고, 대리인이 보지 않을때 몰래 들어 오는 수 밖에 없었다. 걸리기라도 하면 쫓겨 나고, 강둑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보조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물건들을 꺼내 살펴 보며, 무엇을 팔지 고민했다. 면도기를 팔기로 결심했고, 그것을 들고 주방을 한 바퀴 돌았다, 몇 분후 면도기를 3펜스에 팔수 있었다-차 한 잔을 마시고, 숙박료를 낸 후 반페니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보조는 차를 들고 불 옆에 앉아 옷을 말렸다. 그가 차를 마시며 혼자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웃긴 농담에 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놀란 나는, 뭐가 그리 재밌냐고 물어 보았다. 






'우라질 웃기다고!' 그가 말하길,'한 대 맞아도 좋을 정도로 웃기지. 내가 어디서 뭘 했다고 생각해?' 





'무엇 말인가?' 





'면도도 하지 않고 면도기를 팔다니, 하필이면 이런 멍청한 짓을 하다니!' 





그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 했고, 몇 마일을 꺽여진 다리로 걸었다, 옷은 전부 젖어 있었고 그와 굶주림 사이에 남은 것이라곤 반페니가 전부였다. 이 모든 악조건을 가지고도, 면도기를 잃은 것에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XXXIV                   






다음 날 아침 우리가 가진 돈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패디와 나는 수용소를 향해 나섰다. 우리는 올드 켄트 가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서, 크롬리 쪽으로 향했다. 런던수용소로는 갈 수가 없었다, 패디가 최근에 그 곳에 갔었기 때문에 다시 가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16마일의 아스팔트와 땀을 쏟게 만드는 언덕을 지나야 하는 거리였고, 배는 몹시 고팠다. 패디는 거리를 살피며, 수용소에서 보낼 시간 동안 필 담배 꽁초를 비축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인내심이 보상을 받았다, 패디는 1페니를 주었고, 맛이 간 큰 빵 한덩이를 사서는, 걸어가는 동안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크롬리에 도착했을 때는, 수용소로 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그렇게 몇 마일을 더 걸어, 앉을 수 있는, 목초지 근처의 농장으로 갔다. 부랑자들의 주된 쉼터였다-그들이 남기고 간 눌린 풀, 젖은 신문지들, 녹슨 깡통들을 보면 단 번에 알 수 있다. 다른 부랑자들도 한 두명씩 모여 들고 있었다. 날씨는 화창한 가을 날씨였다. 근처에, 쑥국화가 자라고 있었는데, 아직도 그 톡쏘는 쑥국화의 악취를 지금도 맡고 있는 것 같다, 부랑자들의 악취가 베어있는 쑥국화의 냄새란. 목초지에서는 생 시에나토 색의 갈기와 꼬리를 가진 건장한 숫말 두마리가 입구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들은, 목초지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지쳐 땀 흘리며, 뻗어 있었다. 누군가가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폈고, 깡통에 든 우유없는 차를 돌려가며 마셨다. 몇 명의 부랑자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빌은, 재밌는 사람이었는데, 진정으로 장기간을 거지로 지내온 신세였다, 헤라클레스 만큼 강했고 일하기를 진심으로 싫어했다. 그는 그가 가진 힘으로 건설현장에서 언제고 일을 구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첫 주급을 받아 쥐는 순간 술을 진탕 마시고 잘리기 일수였다. 그 사이사이에는 '구궐'을 했고, 주로 가게주인들을 상대로 한다고 말했다.





'가까운데 부터 보면-켄트, 켄트는 힘든 동네야. 켄트는, 거지가 너무 많아. 빵가게 주인들은 거지들에게 빵을 주기 보다 버려버리지. 옥스포드, 옥스포드야 말로 구궐하기 좋은 동네지. 옥스포드에선 빵도 구궐하고, 베이컨도 구궐하고, 고기도 구궐하지, 그리고 잠자리를 위한 6펜스는 매일 밤 학생들한테 구궐하고 말이야. 마지막 밤에는 방세 3펜스가 부족하더군, 그래서 목사한테 가서 3펜스를 구궐했지. 3펜스를 주고는, 돌아서자 마자 경찰에게 일러 바치더군. '구궐하고 있었나?' 경찰이 물었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답했어, '저 신사분에게 시간을 물어 본 것 뿐입니다요.' 경찰이 내 외투 주머니를 뒤지더니, 고기 1파운드, 빵 두덩이를 꺼내더군, '그럼 이건 뭐야?' 경찰이 말하길, '경찰서로 따라와.' 판사가 7일을 때리더군. 그 뒤로 목사들한테는 절대 구궐 안하지. 이런 젠장할! 7일이나 썩으면서 뭘 신경이나 썼겠어?' 





그의 인생자체가 이런 듯 보였다-구궐, 술, 구금. 이런 말을 하면서 껄껄거리며 웃었다, 대단한 일이 아닌 것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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