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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XII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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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I 


단언컨대 호텔에서의 내 최고의 시간은 4층의 웨이터들을 도우러 갈 때 였다. 작은 식료품 저장소에서 일을 했는데 서비스 엘레베이터로 카페테리에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지하에 비하면 기분 좋을 정도로 시원했다, 주 된 일은 식기구에 광을 내는 일이었는데, 사람이 할 만한 일이었다. 발렌틴, 이 웨이터는, 예절이 바르고, 둘이 있을 때는 나를 평등하게 대해 주었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거칠게 말해야만 했지만, 웨이터들은 접시닦이들에게 친절하게 굴어서는 안 됐다. 가끔 그가 괜찮은 수입을 얻은 날에는 팁으로 5프랑을 나에게 주었다. 그는 곱상한 외모에, 24살의 나이에도 18살 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른 웨이터들이 그렇듯, 그도 자기관리를 잘했고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연미복과 하얀 넥타이, 부드러운 갈색머리와 생기넘치는 얼굴, 그는 정확히 이튼 학생1)처럼 보였다, 다른 점은 그는 열 두살 때부터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지금까지 되기 위해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일을 했다는 것이다. 여권없이 이탈리아 국경에서 장사를 하고, 북쪽 대로에서 수레를 끌고 밤을 팔았다, 런던에서는 허가증없이 일을 하다 50일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어느 호텔에서는 늙은 갑부 여자에게 몸을 팔았어야 했는데, 그에게 선물로 다이아몬드를 주고는 후에 그가 훔쳐 갔다며 고소한 여자다, 이런 것들이 그가 겪은 일들의 일부분 이었다. 나는 그와 대화하는 것을 즐겼었다, 쉬는 시간에 엘리베이터 통로 옆에서 담배를 피면서.  





즐겁지 않은 날은 식당에서 설겆이를 할 때 였다. 접시를 닦을 필요는 없었다, 주방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식기구들, 은제품, 포크, 칼 그리고 유리잔들을 닦아야 했다, 이 정도기는 하지만, 13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하루에 30장에서 40장의 행주를 썼다.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구시대적 방법은 설겆이를 갑절로 증가 시켰다. 접시걸이는 거의 쓰이지 않았고, 주방 비누도 없다, 당밀 비누만 있을 뿐인데, 프랑스의 센물에서는 거품도 일지 않는다. 더럽고, 사람들로 가득찬 굴에서 일을 했는데, 식료품 저장고와 부엌이 함께 있었다, 식당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설겆이 외에도, 웨이터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고 시중을 들어야 했다, 대부분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고 버릇이 없었다, 정중함을 얻어내기 위해 주먹도 한 번 이상은 사용해야 했다. 보통 그곳에서 설겆이를 하는 사람은 여자였는데, 그들은 이 여자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더럽고 작은 부엌을 훑어 보는 일은 재미가 있었다, 생각해 보라 우리와 식당사이에는 양쪽으로 여는 문 하나 밖에 없었다, 화려하게 차려 입고 앉아있는 손님들, 점 하나 없는 식탁보, 꽃병들, 거울과 천장을 두른 장식과 천사들로 찬 그림들, 그리고 이 곳, 단지 몇 발자국 떨어졌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역겨운 오물 속에 있었다. 정말 메스꺼울 정도로 더러웠다. 저녁 때까지는 바닥을 닦을 시간이 없어, 비눗물, 양배추 입사귀, 찢겨진 종이, 뭉개진 음식들로 섞인 바닥을 미끄러지듯 다녔다. 많은 웨이터들이 상의를 벗고, 그들의 젖은 겨드랑이 부분을 보여주며 다녔다, 그렇게 식탁에 앉아 엄지손가락은 크림 단지에 찔러 넣고는 샐러드를 비볐다. 그 곳은 더럽고, 냄새와 음식냄새로 섞여 있었다. 모든 천장 안의 식기구 뒤에는, 웨이터들이 훔쳐 둔 지저분한 음식들이 쌓여 있었다. 싱크대는 두 개 밖에 없었고, 세면대는 없었다, 웨이터들에겐 식기구가 헹궈지고 있는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식당문에는 거울과 코코넛 발이 달려 있었고, 웨이터들은 몸치장을 하고는 청결함을 담은 그림처럼 식당으로 들어갔다. 호텔 식당으로 들어가는 웨이터들을 보는건 꽤나 재밌는 광경이다. 문을 지나는 순간 그들에게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다. 태도가 변하는데, 모든 더러움, 급함, 짜증을 한 순간에 털어 버린다. 목사같은 근엄한 분위기로 카펫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부지배인이 기억이 나는데, 불같은 성질의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식당으로 나가는 문 옆에 멈춰 서서는 와인병을 깬 견습생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머리 위로 올린 손을 떨면서 소리를 쳐댔다(운이 좋겠다 거의 방음이 잘 됐다)





'말해 봐라- 너 스스로를 웨이터라 부를 수 있겠냐, 이 어린노무 자식아! 넌 웨이터야! 네 엄마가 사는 창녀굴의 바닥을 닦는게 아니라고. 기둥서방같은 놈아!'




이런 말들을 했음에도 그는 화를 풀지 못 하고, 문 쪽으로 돌아섰다. 문을 열며 스콰이어 웨스턴이 톰 존스에게 했던 것 처럼 마지막 모욕을 던졌다, 




그러고는 식당으로 들어가 접시를 들고는 항해하듯 가로 질러 나아갔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말이다. 십 초후에는 경건한 자세로 손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인사와 미소, 숙련된 웨이터의 상냥한 미소를 보고나면, 손님은 이런 귀족같은 사람이 자신에게 봉사를 한다는 것에 우쭐 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설겆이는 전체적으로 끔찍한 일이었다-힘든건 아니다, 하지만 지겹고 하찮은 일 그 이상이다. 이 직업을 위해 몇 십년을 소비한다고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내가 대체한 여자는 60대 전후였는데, 일 년 내내, 하루 13시간을 싱크대에 앞에 서있었고, 일주일에 6일을 일했다, 그녀는, 게다가, 웨이터들에게 지긋지긋하게 괴롭힘도 당했다. 그녀는 한 때 여배우였다고 했는데-사실, 내 상상에는, 창녀가 아니였을까 한다, 대부분의 창녀들은 파출부가 된다. 그녀의 삶과 나이에도 불구하고 눈화장은 진하게 하고 20살 소녀처럼 분칠을 한 밝은 금색 가발을 쓴 그녀를 보는 건 어딘가 이상했다. 일주일의 78시간 노동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는 활력을 남겨 두는 모양 이었다.


         


                         



1)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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