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VII - 조지 오웰

반응형



우연치 않게 보리스에게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가 있었지만, 그의 프랑스 신분증의 기한은 지나버려있었다(세금을 피하기 위해, 신분증을 갱신해 두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이름으로도 외투를 저당 잡힐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터벅걸음으로 내 방에 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포트 로얄 대로에 있는 전당포로 외투를 가져갔다. 


나는 보리스를 방에 남겨두고 전당포로 내려갔다. 그 곳에 도착했을 때 전당포는 닫혀있 네 시까지는 열지 않는 것을 알게됐다. 시간은 한 시 반을 넘겼을 뿐이었고, 나는 12 킬로미터를 16시간 동안 먹지 못 하고 걸었을 뿐이었다. 운명이 보기 드물 정도로 달갑지 않은 희극을 연속적으로 공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행운이 마치 기적처럼 변해버렸다. 브로카 대로를 따라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도로위에 반짝거리는 것이 있었다, 5상팀을 보았다1). 난 동전에 덤벼들었고, 집으로 허겁지겁 와서는, 가지고 있던 5상팀을 챙겨 1 킬로그램의 감자를 샀다. 감자를 살짝 데울 정도의 기름만 남아있었고, 우리에겐 소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게걸스럽게 먹어치워버렸다, 껍질도 남기지 않고. 그러자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앉아서 전당포가 열 때 까지 체스를 두었다. 



네 시가 되어 나는 전당포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희망적이지 않았다, 지난 번에도 70프랑을 받았을 뿐인데, 합판으로 만들어진 여행가방에 담긴 낡아빠진 외투 두 벌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보리스는 20프랑을 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엔 10 프랑 정도였다, 아니면 심지어 5 프랑 정도 이거나. 남은 최악은, 전부 거부당 할 수도 있었다, 지난 번의 불쌍한 83번 처럼 말이다. 첫 번째 벤치에 앉았다, 점원이 5프랑이라고 말 했을 때 사람들이 비웃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마침내 점원이 내 번호를 불렀다: '117번!'


'네'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50 프랑?'




지난 번 70프랑을 받았을 때 만큼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에와서 확신하지만, 점원이 다른 사람의 번호와 나의 번호를 뒤죽박죽 섞어 놓았던 것 같다, 다른 누군가는 온전한 외투를 50프랑에 팔 수 없게 되버렸다. 나는 집으로 달려왔고 손을 등 뒤로 돌린채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리스는 혼자 체스를 두고 있었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받았나?' 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어떻게, 20 프랑은 아니던가? 아니면, 확실히 10프랑은 챙겼겠지? 이런 5프랑인가-그건 너무 심하게 빡빡한데. 친구, 5 프랑이라고 말하지 말게. 만약 자네가 5 프랑이라고 말한다면 진심으로 자살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네.' 




나는 50 프랑 지폐를 탁자 위에 던졌다. 보리스의 얼굴이 분필처럼 하얗게 변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거의 뼈가 부러질 정도로 내 손을 움켜쥐었다. 우리는 밖으로 뛰어 나갔고, 빵과 와인, 고기 한 덩이와 스토브에 쓰일 알코올을 샀다, 그렇게 실컷 먹었다. 




다 먹고 난 뒤, 보리스는 내가 알아오던 그 어떤 그 보다 더욱 긍정적으로 변해있었다. '내 자네에게 뭐라 했는가?'그가 말했다, '전쟁의 행운이라고! 아침에는 5 상팀 동전, 그리고 지금의 우리를 보게. 내 언제나 말하지 않았는가 돈을 얻는것 보다 쉬운 일은 없다고. 뭔가 생각이 나는군, 폰더리 거리에 친구가 한 명있는데 그를 찾아가 보는게 좋겠네. 나한테 4000 프랑을 사기 쳤지, 사기꾼 자식. 그가 술에 깨어있을 때는, 살아있는 최고의 사기꾼이야, 근데 재밌는 건 말이야, 취해 있을 때는 꽤나 솔직한 놈이란 말이지. 저녁 여섯시 까지면 아마 취해있을 걸세. 가서 한 번 그를 찾아보자고. 바로 한 백 프랑 정도는 줄 공산도 있어. 젠장! 200 프랑을 줄 지도 모르지. 갑세!'





우리는 폰더리 거리로 갔고 그를 찾아냈다, 그는 취해있었지만, 우리는 백 프랑을 얻지는 못 했다. 보리스와 그가 만나자 마자 심한 언쟁이 거리 위에서 오고갔다. 그 남자는 보리스에게 땡전 한 푼 빚진게 아닌, 반대로 보리스가 그에게 4000 프랑을빚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둘 모두 내 의견은 어떤지 계속해서 물어보았다. 나는 사건의 전말을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둘은 계속해서 말 싸움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거리에서, 그 다음엔 비스트로에서, 그러고는 저녁을 먹으러 간 보통의 식당에서, 그리고는 또 다른 비스트로에서. 결국, 두 시간을 서로 사기꾼이라 불렀고, 계속해서 술판을 이어가다 보리스가 가진 마지막 한 푼을 다 쓰고 나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보리스는 어느 수선공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커머스 구역의, 또 다른 러시아 난민이 되었다. 한편, 나에겐 8프랑과 담배가 잔뜩 남아있었고, 음식과 음료를 잔뜩 먹은 상태였다. 이틀간의 불행 뒤였기에 더욱 막히게 좋은 변화였다.




VIII     




이제 우리 손에는 28 프랑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일자리 찾는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보리스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수선공의 집에서, 보리스는 다른 러시아 친구로부터 20프랑을 빌릴 수 있었다. 그가 친구가 많았는데, 대부분이 그 처럼 장교였었고, 파리 전체 이곳 저곳에 있었다. 몇 몇은 웨이터이거나 접시딲이 였고, 택시를 몰기도 했으며, 소수는 여자에게 얹혀 살고 있었다, 몇 명은 러시아에서 돈을 가지고 올 수 있어서 무도장이나 정비소를 소유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파라의 러시아 난민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같은 사회층에 속한 영국인들 보다 그들의 불행을 더 잘 받아들였다. 당연히도, 예외는 있었다. 보리스는 그가 한 번 만났던 러시아 공작에 대해 말 해 주었는데, 비싼 레스토랑에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공작은 웨이터 중에 러시아 장교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했는데, 그러고는, 친근하게 굴며 그들을 자신의 식탁으로 불렀다고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