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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IV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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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 주는 불편하고 즐겁지 못 했다, 명확하게도 더 나쁜 일이 찾아오고 있었다, 긴 시간을 지나 방 값을 지불해야 할 날이 온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상황이 내가 예상한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가난에 가까워질 수록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을 발견하게 된다. 지루함, 기가막힌 문제들 그리고 배고픔을 알게된다, 그리고 가난의 장점을 발견하게 된다. 미래를 완벽하게 파괴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정해진 한계 속에서는, 실제로 사실인 것이 가진 돈이 적을 수록 걱정도 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백프랑을 가지고 있을 때는 끔찍한 공황에 영향을 받기도 쉽다. 하지만 단지 3프랑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3프랑은 내일까지 먹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생각할 수 없다. 따분하긴 하지만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애매모호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내일 이나 모레 즘에는 굶주리게 될거야 - 충격적이야 그렇지 않나?' 그러고는 다른 주제들로 생각이 쏠린다. 빵과 마가린과 같은 식단은 -어느 정도까지는- 배고픔을 잊게 해준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 있는데 빈곤 속의 위안이다. 돈에 쪼달려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건 안도감인데, 거의 기쁨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빈털터리가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얻는 것이다. 개들에게 말을 하기 위해 자주 찾아가 왔다, 그래, 여기 개가 있다, 개들에게 다가간다, 참아 낼 수 있다. 모든 근심을 날려버린다.        


IV 


어느 날 내 영어 수업이 갑작스레 중단되었다. 날씨는 더워지고 있었고 학생 중 한명이, 수업을 하기엔 너무 귀찮아서, 나를 돌려보냈다. 다른 한 명은 숙소에서 아무 통지없이 사라져 버렸다, 12프랑이 밀려있었다. 나에겐 30 센티메만이 남겨져 있었고 담배도 없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할 것도 필 것도 없었고, 너무 배가고파 더 미룰수도 없었다. 남은 옷가지를 여행가방에 쟁여넣고 전당포로 가져갔다. 이는 윤택한 척을 끝으로 몰아 넣었다, 마담 F의 묻지 않고는 옷들을 호텔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없었다. 기억한다, 구역내에서는 흔한 속임수인 야반도주와 옷을 몰래 빼내는 대신 그녀에게 물은 내 질문에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


프랑스의 전당포를 찾은 건 처음이었다. 벽돌로 된 웅장한 정문을 통과해서, (물론, '자유, 평등,박애'라고 새겨져 있다, 프랑스 경찰서 위에도 똑같이 쓴다) 고등학교 교실처럼 크고 텅빈 방으로 들어가면, 계산대와 몇 줄의 벤치가 있다. 40에서 50명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담보물을 계산대 넘어로 넘기고 앉는다. 점원이 물건을 감정한 후 호출을 한다, '번호 몇 번 몇 번, 50 프랑을 받으시겠습니까?' 가끔은 50 프랑 밖에 하지 않는다, 아니면 10 프랑, 아니면 5프랑- 어떤 물건이든, 모든 방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점원은 모욕적인 태도로 호명했다, 83번- 여기!' 휘파람 소리와 함께 손짓 했다, 마치 개를 부르는 것처럼. 83은 계산대로 다가갔다,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목까지 단추를 채운 외투와 단이 닳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점원은 아무 말도 없이 꾸러미를 계산대 넘어로 던져버렸다 - 보기에도 아무가치 없는 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지고 꾸러미가 풀렸다, 남성요 모직 바지 네개가 드러났다. 누구도 웃음을 참지 못 했다. 가엾은 83번은 바지를 주워 모으고 비틀거리며 나갔다,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말이다. 내가 담보 잡히려는 물건은, 여행 가방과 함께, 20 파운드 정도 했었고, 상태도 괜찮았다. 10 파운드 정도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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