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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조지오웰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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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상한 표본 이었을 뿐이다, 찰리, 단지 콕드 거리를 풍성하게 하는 어떤 군상들이 발견 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묘사한 것이다.  


III


콕드 구역에서 나는 대략 일년 반 정도 살았다. 어느 날, 여름이었다, 나는 450 프랑만이 남겨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 외에는 영어 과외를 해주고 1 주일에 벌 수 있는 36프랑이 전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아고 있었다, 하지만 단번에 뭔가를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직장을 찾아 보기로 결정했다. -아주 운좋겠다, 잘 풀리고 있었다- 나는 대책으로 200 프랑을 한 달치 집세로 미리 내어버렸다. 영어 과외로 버는 돈을 제외하고, 남은 200 프랑으로 한 달은 살 수 있었다, 한 달안에 일감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여행 회사의 가이드나, 통역자 자리를 노렸다. 하지만 아주 작은 불운이 이를 가로 막았다. 

어느 날 이탈리아 청년이 호텔에 나타났는데 그는 스스로를 식자공이라 칭했다. 그는 사실 모호한 사람에 더 가까웠다, 구렛나루를 기르고 있었고, 그건 지성인과 깡패의 표시였다, 그리고 어떤 부류에도 확실히 넣을 수 없었다. 마담 F는 그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치 방세를 선불하도록 했다. 그 이탈리아인은 선불을 내고 육일간 호텔에 머물렀다. 그가 머무는 동안 그는 몇 개의 열쇠들을 복사했고, 마지막 날 밤에는 여러 방을 털었다, 내방을 포함해서 말이다. 운이 좋겠도 그는 내 주머니에 있던 돈을 털지는 못 했기에 나는 완벽한 빈털터리가 되지는 않았다. 47프랑이 남겨졌고, - 7 그리고 10펜스 정도다. 


 이게 내 직장찾기 계획을 끝내 버렸다. 나는 약  6프랑으로 하루를 살아야만 했다. 다른 것들을 위한 생각을 남겨두는 건 시작부터 어려웠다. 이것이 내 빈곤을 경험하게 된 경위다. 하루 6프랑, 진짜 빈곤이라 할 수는 없더라도, 빈곤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6 프랑은 1 실링 정도 된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만  알면 파리에선 1 실링으로 살 수있다. 복잡한 일이긴 하지만.

빈곤과의 첫 번째 조우는 전적으로 난감함 이었다. 누구나 가난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일생동안 무서워 했던 그것이고, 오늘 내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가난은 단조롭게 그리고 완전히 달랐다. 가난하게 사는건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복잡하다. 최악일 것이라고 생각 했을텐데, 단순히 지저분하고 지루할 뿐이다. 이런 것이 가난에 처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특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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