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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런던과 파리의 빈털터리, 조지오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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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들이 너무 심한 날에는 사람들은 유황을 태워 벌레들을 옆방으로 몰아 내고는 했고, 그러면 옆방 사람은 자신의 방을 유황으로 가득채우고 벌레들을 다시 돌려 보내는 것으로 응수했다. 매우 더러웠지만, 집같은 곳이였다, 마담 F와 그녀의 남편이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임대료는 일주일에 30에서 50프랑 사이에서 달리했다.  



하숙인들은 흘러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외국인이었고, 짐없이 도착해서 한주를 머무르고는 다시 사라졌다. 그들의 직업은 다양했는데, 구두수선공, 벽돌공, 석공, 인부, 학생, 매춘부, 폐품수집자였다. 그들 중 몇 몇은 환장하게 가난했다. 다락방 중 한 곳에는 불가리아 학생이 미국시장에 팔릴 화려한 신발을 만들고 있었다. 여섯시부터 열두시까지 침대에 앉아 열두켤레의 신발을 만들어 35프랑을 벌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소르본 대학의 강의에 출석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는 중이었는데, 그의 신학책들은 가죽들이 널브러진 바닥에 펼쳐진 채로 엎어져 있었다. 다른 방에는 러시아여자와 그녀의 아들이 살았고, 아들은 스스로를 예술가라 불렀다. 그의 어머니는 하루 16시간을 일했는데, 한 짝에 25센티메를 받으며 양말을 기웠다, 그 와중에 아들은, 멀끔하게 차려입고는, 몽파나세 카페에서 빈둥거렸다. 한 방은 두 명의 다른 하숙인에게 임대 되었었는데, 한 명은 낮에 일했고 다른 한 명은 밤에 일했다. 또 다른 방에서는 홀아비가 장성한 두 딸과 침대를 같이 썼다, 둘 다 폐결핵 환자였다.





호텔에는 별난 기인들이 많았다. 파리의 슬럼은 기이한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였다. -평범하거나 제대로 된 삶을 포기하고, 외로이, 반쯤 미친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가난은 평범한 행동의 기준으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돈이 사람들을 일로부터 자유롭게 하듯이. 우리 호텔의 몇 몇 하숙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이한 삶을 살았다. 루기어 가족이 있었다, 예를들자면 말이다, 늙고, 지친, 유난히 작은 이 부부는 기발한 사업을 했다. 재밌는 것은, 외설적인 엽서인 것 처럼 밀봉하여 성 미쉘 대로에서 우편엽서를 팔았는데, 실상은 로이어의 성 사진들이었다. 구매자들은 이를 늦게까지 발견하지 못 했고, 당연히 불평도 하지 않았다. 루기어 부부는 일주일에 약 100프랑 정도를 벌었고, 엄격한 절약 덕분에 언제나 반은 굶주렸고 반은 취해있을 수 있었다. 그들 방에 쌓인 오물은 아랫층 사람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담 F에 따르면, 둘 모두 4년 동안 옷을 벗은 적이 없다고 한다.





하수구에서 일하는 헨리도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우울해 보이는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용의 하수구 부츠를 신고있는 그의 모습은 낭만적으로 보였다. 헨리의 기묘한 점은 일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며칠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불과 일 년전만 해도 그는 운전기사로서 안정적으로 고용이 되어있었고 저축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랑에 빠졌고, 여자가 그를 거절하자 욱해서는 그녀에게 발길질을 해버렸다. 발길질을 당하자마자 여자는 헨리와 지독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그 둘은 이주동안 함께 살며 헨리의 몇천 프랑을 써버렸다. 그럼에도 여자는 바람을 피웠고, 헨리는 여자의 팔죽지에 칼을 심었고 감옥에서 6개월을 복역해야 했다. 여자는 칼에 찔리자 마자 이전보다 더 헨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둘은 언쟁을 마무리짓고 헨리가 출옥하게 되면 택시를 사고 결혼을 해서 정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주후에 그녀는 다시 바람을 피웠고 헨리가 나왔을 때 그녀는 아이를 배고 있었다, 헨리는 그녀를 다시 찌르지는 않았다. 헨리는 자신의 저축을 모두 찾아서는 술판을 계속해서 벌였고 이는 다른 한 달의 징역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일을 하기위해 하구수로 들어갔다. 그 무엇도 헨리를 말하도록 유도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왜 하수구에서 일하냐고 물어봐도 그는 절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단순히 수갑을 찬듯 그의 손목을 교차시키고는, 교도소가 있는 방향인 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운이 그를 하루 아침에 얼간이로 바꿔 버린 듯 했다.





영국남자 R도 있었다, 그는 일 년의 육개월은 부모님과 함께 푸트니에서 그리고 육개월은 프랑스에서 살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사는 동안에는, 하루에 4리터의 와인을 마셨고 토요일에는 6리터를 마셨다. 한 번은 그가 아조레스까지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유럽 어느 곳 보다 와인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는 온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절대 소란을 피거나 싸움을 하지도 않았으며 술에서 깨어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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