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소설/영어

시간의 중요성

반응형

공기와 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식물에게는 전혀 상상 할 만한 거리가 되지 못 한다. 상상을 해 본 다는 것에 별다른 고통이 수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일에 대해 상상 해 볼지라도 이미 정해진 그리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정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공기와 물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동식물이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은 굳이 과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숨을 1분 정도만 참아봐도 알 것이며 하루 만이라도 물을 안마시고 보내봐도 충분히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동식물은 숨을 쉬어야 하며 물을 마시고 음식을 섭취해야  삶을 지속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기본 상식 중에 상식이며 불변의 사실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진 시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있다면 그러한 세상은 상상이나 가능 할 것인가? 시간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 과연 동식물들은 어떻게 살아 갈 것이며 어떠한 형식으로 삶이 유지 될 것인가라는 상상을 시도 해보아도 도무지 상상을 시작 할 수 있게 도와 줄 만한 자료를 찾기도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모든 동식물은 정지상태로 그 자리에 머물 것인가. 지금 당장 시간이 멈추어 버린다면 모두가 정지상태로서 존재를 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멈춤과 동시에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의 생명이 정지 할 것인가. 시간이라는 것이 공기와 물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히 인간의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증명하기도 매우 쉽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이 알 수 없는 존재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은 어떻게 생성이 되었으며 소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간의 중요성은 물과 공기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존재자체에 대한 증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재고하더라도 여전히 시간의 무겁디 무거운 중요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현재에 존재하는 동식물 사이에서는 그 무엇도 시간을 멈추거나 뒤로 돌리거나 앞당기거나 하는 시간을 조정,조절 할 수 있는 능력도 지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 중에 하나이면서도 그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없다는 것이다. 물과 공기에 대해서는 공립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과학 지식 정도는 들어 보았거나 기억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 대해 묻는다면 과연 몇 몇 명의 사람이 이에 대해 완벽하게 누구나 합의 할 수 있는 이론(적어도 이론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까 한다. 시간이 멈춘다고 해서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가 없기에 동식물이 물과 공기가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보이며 그러한 무리가 따름에 시간의 중요성을 물과 공기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시간이 물과 공기보다 중요하다 라고 증명 할 수 없음에도, 어렴풋하게 나마 주어진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동감 할 수 있는 명제라고 보여진다.

우리는 종종 물 부족에 대한 걱정을 들으며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들을 듣는다. 공기가 오염이 되어 동식물의 건강과 생명에 해가 됨으로 이에 대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을 보고 있다. 그들의 행동이 시사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더욱 발전하는 것을 넘어 온전한 삶을 즐기기 위해서 우리가 물과 공기를 정화하고 다시금 이전의 상태로 돌려야 한 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여러 종교에서 종말이라는 시간의 끝과 비슷한 개념의 예언을 하고있다. 시간의 끝,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지상에서의 삶 등등. 늙지도 병에 걸리지도 죽지도 않는 삶에 대해 여러 종교가 이야기하고 있으며 대비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예언이 오는 날을 대비하며 살아가는 것도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는 살아있는 생물에게는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말이 실제로 내일이 될지 내년이 될지 또는 1000년 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무도 예측 할 수도 확실한 날짜를 정 할 수도 없는 시간의 끝이 존재한다 할 지라도 이 세상은 여전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그러한 날이 존재한다고 할 지라도 시간이라는 개념을 두고는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가진 중요성을 비교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일은 정말이지 쉬운 일로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시간이라는 틀 속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그 무언가와 비교 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색할 것이다. 시간이 물보다 덜 중요하다 라고 정의를 내릴지라도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으며 시간의 중요성이 공기의 중요성보다 작다 라고 할 지라도 우리는 시간 속에 존재해야 하며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맞기거나 끌려 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얼만큼 중요하며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증명 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물이 없는 삶을 생각 할 수 없듯이 공기를 마시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동식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듯이 시간이 흐름에 있어 우리는 단지 시간의 한 부분이라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일 태양이 뜨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달이 기울지 않는다고 하여 시간이 멈춘다고 할 수 없다. 태양이 예상 된 시간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여 내일이 오지 않고 모레가 오지 않는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동식물이 모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며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쫓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시간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각자가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내가 가진 오늘은 다른 사람의 오늘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가치가 매겨 질 수도 없다. 가치를 매길 수 있다면 그건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시간의 어떠한 가치와 중요성을 부여하느냐 이다. 내가 가진 내일이 다른 누구의 내일보다 더욱 찬란하고 보람차며 활기 찰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시간의 중요성이 타인의 시간의 중요성보다 더욱 높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헛되이 보낸 어제가 누군가가 보낸 보람찬 어제보다 더욱 중요한 시간소비 였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증거와 증명을 대기란 쉽지않다. 시간의 흐름이 태양과 달에 의존하지 않듯이 내가 사용하는 시간의 중요성 또한 타인의 시간 사용에 비교되거나 의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다. 시간의 중요성이라는 어느 특정 인물이 이에 대한 개념을 완벽하게 증명 할 수 없다면 자신의 사용하고 있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옳바른 삶을 추구하기 위한 시간소비가 되었거나 자신만의 삶을 소위 말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기위한 시간소비를 하던 그 누구도 타인의 시간소비를 자신의 시간소비 또는 사회적 시각으로 비평 할 수도 비판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시간의 중요성은 우리에게 있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명확히 해 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가 있다면 과연 그 세상에 사는 동식물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아니면 어느 날 어느 특정 개인의 모든 시간이 몰수가 된다면 그 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의 특별성과 공정성에 관한 장에 밝혀있듯이 시간의 공정성은 그 누구도 빗겨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정성 앞에서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이며 어떻게 생각 해야 하는 것일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