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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영어

그는 그곳에 있었다 (현재까지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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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경기장 중앙에는 한 여가수가 화려한 춤과 노래를 선 보이고 있었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그녀를 향 해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중들의 손에는 음료수와 간식거리가 들려 있었고  밝은 미소로 경기장을 함께 찾은 친구 그리고 가족들과 수다 떨기에 정신이 없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흥분은 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여가수의 무대가 끝나면 중죄를 지은 사형수들의 처형식이 곧 이어지기 때문 이였다. 관중들은 세명의 사형수의 처형식을 관람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것 이였다.

2년에 한번씩 치뤄지는 이 사형식은 전국으로 TV를 통해 방영이 되었고 표를 구하지 못 한 시민들이 본래의 가격보다 몇 배나 높은 암표를 구해서라도 경기장을 찾아 관람을 하고 싶어 하는 인기 높은 행사 중에 하나였다. 본래 이 제도가 시행이 되었을 때는 국가가 관할 하고 담당 기관이 무작위로 선정 된 시민들에게 관람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국가 제정 문제와 많은 시민들의 요구로 인해 민영화가 되어 거대 기업에서 관할하게 되었다. 그 뒤로 국가가 무작위로 정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이 아닌 표를 구매하고 사형식을 관람 할 수 있는 제도로 변하게 되었다. 국가에서는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경찰력을 제공하고 있었고 그 외의 모든 일들은 사형식을 실제 소유한 기업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인기가수들의 무대 같은 경우도 국가가 사형식을 관할 할 때는 없었 던 부분 이였으나 기업에서 사형식을 국가로부터 일임 받고 사형식을 진행하게 되고 난 후부터 생기게 된 무대였다.

경기장의 밝고 열기가 넘치는 분위기와는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지하 통로에 세명의 남자가 일렬로 서 있었다. 통로를 비추고 있는 유일한 불빛은 통로 양쪽 벽 바닥 밑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 된 통행등이 전부 였다. 통로는 경기장으로부터 들려오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로 가득 울리고 있었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죄수들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양쪽에는 간수가 그의 각 팔을 잡은 채 서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남자의 머리는 이미 검은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백발 이였고 그의 눈가에 패인 굵은 주름과 잔주름들은 그의 나이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입은 푸른색 죄수복의 왼쪽 가슴 부분에는 회색의 표가 붙어 있었고 그 회색의 표에는 검은색의 죄수번호 01이 새겨져 있었다. 남자의 눈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처럼 그저 어두운 통로의 끝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을 뿐 이였다. 사형수들의 양팔을 붙잡고 있는 간수들은 침묵을 지키며  통로 천장에 달려 있는 푸른색을 띄고 있는 작은 전광판을 무심히 바라보고 만 있었을 뿐 이였다.

갑자기 어두운 통로를 울리 던 관중들의 환호성 소리가 잦아 들었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간신히 들릴 수 있을 정도로 통로를 통해 흘러 들어왔다. 사회자가 여성 가수의 무대 마무리를 알리고 사형수들의 처형식을 소개하기 시작 한 것 이였다. 통로에 울려 작게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음성은 웅얼 거리는 정도의 소리였지만 간수들은 사회자가 첫 번째 죄수를 소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맨 앞에 서있었던 간수들은 자신들이 붙잡은 사형수를 붙잡은채 이미 통로를 향 해 움직이고 걷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두 번째 죄수가 간수들에게 붙잡힌 채로 서서히 쫓기 시작했다. 사회자의 웅얼거리는 듯 한 목소리가 통로에서 사라졌을 때 다시 한번 관중들의 거대한 환호 소리가 통로를 가득 울렸다. 첫번째 사형수가 경기장 중앙에 등장 한 것 이였다. 다시 환호 소리가 잦아 들었고 다시 사회자의 작은 목소리가 통로를 통해 들어왔다. 두 번째 사형수가 경기장에 도착 한 듯 했고 이전 보다 더 큰 환호성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환호성 소리가 잦아 들 때 즘 사회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리기 시작 했고 간수들이 바라 보고 있던 천장에 달린 푸른색 전광판이 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두 간수는 사형수의 팔을 힘주어 잡은 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사형수는 무기력한 발걸음으로 그들의 발걸음에 맞추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 했다. 그들이 발걸음을 내디디면 내디딜 수록 사회자의 음성이 점점 뚜렷하게 들려오기 시작 했다. 이전 두 명의 사형수들의 소개보다 더욱 길었고 더욱 큰 음성으로 마지막 사형수를 소개하고 있었다. 세 명의 남자가 통로의 끝에 달았을 때 사형수의 오른쪽 팔을 잡고 있던 간수가 자신의 오른팔을 뻗쳐 벽에 붙어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바로 열렸고 두 간수는 자신들이 붙잡고 있던 사형수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사형수는 무기력한 몸짓으로 매우 좁은 공간의 엘리베이터로 자신의 몸을 끼어 넣었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매우 좁았으며 성인남자가 간신히 자신의 몸을 조심스레 돌릴 수 있을 정도의 공간 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이였다. 사형수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자마자 문이 닫혔고 서서히 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정지 하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강렬한 빛이 사형수의 눈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환호성 소리가 좁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가 앞을 볼 수 있게 되는 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형수의 30 미터 앞으로는 잠시 전까지 여가수가 노래를 부른 무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사회자가 관중들과 그를 번갈아 보며 그를 향 해 손을 뻗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제히 바라보며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는 관중 들이었다. 그가 발자국을 내 디뎌 엘리베이터를 빠져 나오자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문을 닫고 경기장 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빠져 나온 구멍은 자동으로 닫혀 버렸다. 마지막 사형수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자 사회자는 더욱 큰 몸짓을 사형수에게 보냈고 관중들의 환호 소리는 그 날의 가장 큰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이미 그보다 먼저 나와 있던 두 명의 사형수가 서 있었고 각 사형수마다 간수 두 명이 그들의 양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는 그들을 사형에 처 할 기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마지막 사형수에게도 또 다른 간수들이 다가왔고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사형수들은 간수들의 요구에 의해 간수들에게 양팔을 잡힌 채로 자신들이 서있는 자리에서 간수들과 함께 제자리를 돌기 시작 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중들에게만 보여지고 있던 것이 아닌 카메라를 통해 전국으로 방영이 되고 있었다. 그들의 눈들은 그들도 모르게 경기장 곳곳에 설치 된 카메라들과 마주치고 있었다.

1.

사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형제도에 대해 의견을 묻는다면 대답 해 줄 만한 생각이나 의견 따위는 없었다. 골치 아픈 정치 이야기나 사회적 문제에 관한 토론은 질색이였다. 사석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사형제도나 정치에 관해 묻는 다면 그저 어중간한 단어들로 대화를 마무리 짓고는 했다. 고층 건물에 달린 전광판 속에 있는 사형수를 보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 죽이는 관경을 보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표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나를 기분 상하게 하는 것은 토요일 아침임에도 상사의 부름에 회사를 가야 한다는 현실이였다. 10여 분 전에 부른 택시를 기다리며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는 중 이였다. 전광판을 통해 클로즈 업 된 검은색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흰머리를 가진 사형수의 얼굴이 보였고 그의 눈은 카메라와 마주치고 있었는지 전광판을 통해 보인 그의 모습은 흡사 도시의 저 너머를 주시하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얼굴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수 많은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는 경기장 내부의 모습으로 전광판의 내용은 바뀌었다 카메라는 관람석을 도는 듯 했고 관객들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과장된 행동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소리치는 듯 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생각없이 전광판을 바라 보고 있던 내 앞에 택시가 뒷문이 정확히 내 앞에 오게 끔 정차했다. 손을 내밀어 손잡이 밑 부분에 부착 되어 있는 감지기에 내 손목을 가져다 되었고 바로 내 손목 뼈에 삽입 되어져 있는 주민등록증이라 불리 우는 소형마이크로칩을 인식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나는 손잡이를 당겨 택시의 뒷문을 열고 택시안으로 들어갔다. 내 손목에 저장 된 칩을 인식한 택시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택시를 탔는지 몇시 몇분에 탔는지에 대한 정보를 택시내부에 저장되어 있는 컴퓨터에 자동으로 저장을 하게 되어 있었다. 

택시 내부는 여느 택시와 같이 앞 좌석과 뒷 좌석의 사이를 가로 막는 얇은 TV가 설치가 되어 있었다. 문득 생각이 난 것이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예전에는 TV가 아닌 강철판 비슷한 것으로 앞좌석과 뒷좌석을 분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급증하는 택시 강도 사건 때문에 법으로 택시에는 최대 3인의 승객만이 탑승 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승객은 꼭 뒷좌석에만 탑승을 하게 끔 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거기에 운전기사의 안전을 위해 앞좌석과 뒷좌석의 사이에 강철판을 설치하는 것이 의무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TV가 강철판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TV가 택시기사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 되게 된 이유는  택시강도사건의 수가 줄어서 였는지 아니면 강철판으로는 택시회사가 광고수익을 내지 못 하기에 TV를 설치했다는 이유 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친구들이 한창 정치에 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릴 때 옆에서 흘려 들었던 기억이 났다. 택시 회사들이 택시 내부에 TV를 넣은 것이 TV광고로 이익을 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 창 열변을 토한 친구가 있었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주제였기에 그리 귀를 귀울이지는 않았다. 


TV의 버튼을 눌러 TV를 키고 전체 화면을 1인 화면으로 바꾸었다. TV를 켜자 택시에 설치 된 TV에서만 나오는 그 특유의 광고가 5초간 흘렀고 그 뒤를 곧바로 전형적으로 이어 곧 있을 대선거에 관한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공익광고였다. 훌륭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민의 최대 권리라는 내용의 광고였다. 지루한 광고였다. 채널을 돌려봤지만 전부 같은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택시 내부의 TV로는 시청 할 수 있는 채널이 한정 되어있었고 대부분이 국가가 운영하는 공영방송이었다. 사형식이 열리는 날은 전국의 모든 공영방송국들이 의무적으로 사형제도를 방영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사형식이 방송 될 때는 총 3번의 광고가 나오는데 첫번째 광고는 국가에서 만든 공익 방송 이였고 두 세번째 광고는 대기업들이 만든 광고가 주를 이루었다. 전 국민이 시청을 할 수 밖에 없는 방송이였기에 광고 수익료는 어마하게 높은 가격으로 책정이 되었고 광고의 내용은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사형식이 열리기 1년 전 부터 어떤 회사가 얼마의 가격을 주고 광고를 낙찰했는지 어떠한 광고를 만들 것 인지가 큰 화제를 끌었고 신문이나 뉴스등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뉴스가 되기도 했다. 


첫번째 광고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곧 사형식이 집행이 된다는 뜻 이였다. 첫번째 광고가 끝나면 첫번째 사형수의 사형이 집행이 되고 다시 두번째 광고가 그리고 두번째 사형수 다시 광고 그리고 마지막 사형수의 형이 집행이 되는 식이였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아 TV를 껐고 창으로 고개를 돌려 도시의 전경을 생각없이 바라 보았다. 사형식 때문인지 거리는 한산 했고 택시는 토요일 아침의 정체없이 한산한 도로를 정규속도로 나아 갈 수 있었다. 택시를 탄지 15분여가 지났을 까 택시는 국가내부안전감시청사 입구에 도착했다. 정문에 정차한 택시는 경비의 요구에 따라 택시의 문을 열고 경비에게 단말기를 내 보였을 것이고 단말기에는 내가 탑승 할 때 인식한 칩을 통해 얻은 개인신상정보를 보여주고 있었을 것 이다. 잠시 후 내가 앉아있는 쪽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는 경비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자동적으로 손목을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경비는 들고 있던 단말기를 내 손목 부근에 가져다 대었고 단말기가 내 손목을 스쳐감과 동시에 택시에 탈 때 났던 비슷한 신호음이 단말기에서 울렸다. 경비는 모든 단말기 화면에 뜬 나의 정보확인을 마치고 자신의 경비실로 돌아갔고 잠시 후 정문을 가로 막고 있던 철문이 열렸다. 회사에 도착하고 나서 다시 내리기 전에 택시 내부에 위치한 인식기에 내 손목을 가져다 대었다. 칩이 인식된 손목을 손에 가져다 대자 내가 타고 온 거리 그에 따른 요금이 음성으로 나오고 TV 한 쪽 구석에 표시가 되었다. 택시에서 내려 정원을 가로 질러 본관으로 향 했다. 로비는 흰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 이였다. 안내 데스크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김부장의 사무실이 위치한 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내부에는 중저음의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부장의 사무실이 위치한 층에 엘리베이터가 섰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부장의 사무실 쪽에 다다랐을 때 문 옆에 달린 인식기에 다시 손목을 가져다 대었다. 손목을 인식하자 인식기에서 택시에서 들린 똑같은 신호음이 울림과 동시에 문의 잠김이 풀리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부장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장은 자신의 책상을 뒤로하고 유리창에 설치 된 TV 쪽으로 등을 돌린 채  사형식 중개 장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인기척을 했고 부장은 앉은 채로 의자를 돌려 나를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신대리 미안하네. 토요일 인데 쉬지도 못 하게 하고 이번에 새로 설치한 소프트웨어가 이상해서 말이야 난 분명히 설명 받은 대로 했는데 신버전이라 그런지 자꾸 문제가 자꾸 나네. 신대리가 한번 봐주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신대리가 전문가지 그렇지?"
김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의자에 앉으라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앉아 앉아, 밥은 먹었고? 괜히 약속 있는 사람 부른거 아닌지 몰라"

"네, 전 먹었습니다. 부장님은 식사하셨어요? 약속은요 무슨 아닙니다 부장님도 주말에 나와서 일 하시는데 당연히 문제가 있다면 나와봐야죠."

부장의 자리에 앉으며 제발 사소한 문제여서 빨리 해결하고 자리를 뜰 수 있기를 바랬다. 부장은 내가 자리에 앉아 화면을 살피기도 전에 보고 있던 TV로 몸을 돌려 버렸다. 화면에 뜬 프로그램의 문제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늦으면 1시간 빠르면 30분 안에 끝낼 수 있는 문제로 보였다. 안도의 마음이 저절로 들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화면의 아이콘들을 하나하나 클릭하기  찍기 시작했다.  부장은 TV에 눈을 고정 시킨 채 넋두리를 시작했다.

"어때 빨리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신대리한테 미안하네 그래. 아니 주말에 일 좀 하려고 했더니 말이야 갑자기 그런 문제나 생기고 나도 참 운이 없단 말이지. 나 운 없는 건 괜찮은데 괜히 그것 때문에 엄한 사람 고생 시키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이해 좀 해주게 신대리."

'알면 부르지 말던 가.'

차마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참았다.

"아닙니다. 어차피 저도 아침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니 젊은 사람이 주말에 밖에서 사람도 만나고 즐기고 다녀야지 왜 아무것도 없어. 젊을 때 놀 수 있을 때 놀아, 장가들고 애 낳고 내 나이 되면 주말에 즐기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서 못 놀아, 집사람은 모임 때문에 밖으로 나돌지 애들은 공부한다고 나가지 친구 만난다고 나가지 친구 놈들은 가족일 때문에 바쁘다 일 때문에 바쁘다 만날 사람은 고사하고 이거 집에서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어진 다니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 하는 척 했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자 TV의 소리가 한층 더 크게 들리는 듯 했다. TV에서는 이미 2번째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곧 있으면 마지막 사형수가 등장한다는 의미였다. 부장은 조롱 섞인 말투로 오늘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형수인 죄수 번호 1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죄수번호 1번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구나. 그래도 죄수번호 1번은 역사적인 인물인데... 손목에 칩으로 된 주민등록증도 모자라서 머릿속에 GPS를 박아 넣게 만들게 한 게 저 놈인데 말이야. 법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데 어느 정도 일조한 인물인데 감형 좀 시켜줘서 무기징역으로 바꿔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허허허."

죄수번호 1번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인물이였다. 약 7년간 38명의 사람들을 살해 한 연쇄살인마였다고 한다. 그는 남녀노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7년간 공권력을 조롱하며 살인을 저질렀다. 그의 살인방식은 매우 잔인하였고 용의주도 하였다. 경찰이 그에게 자유아닌 자유를 허용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살인 방식이 매번 다른 패턴을 이루고 있었고 살인 방법이 일치하지 않는 방식이였던대다가 살인대상들도 전혀 공통점이 없었던 사람들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지역에서만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닌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질렀기에 초반 몇년간은 그 누구도 연쇄살인 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일련의 살인사건들 속에서 경찰이 연쇄살인사건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게 해준 것은 그가 살인을 시작한지 4년째 되던 해였다. 경찰은 매주 넷째주 화요일에 희생자들이 살해 당했다는 것을 밝혀 냈다고 한다. 


그 후로 그는 국가의 대대적인 공공의 적으로 낙인이 찍혔고 그의 엽기적인 살인행위로 인해 사회는 한 명의 개인으로 인해 공포에 질려갔다. 연일 모든 미디어들은 그의 살인 사건에 대해 기사화 했고 그와 동시에 정부의 무능력에 대해 연일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그러한 여파로 당시 여당은 이러한 사건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 위해 사형제도의 재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였고 더 나아가 논의가 법안 통과를 위해 논의 중이던 손목에 심을 주민등록증 외에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머리속에 GPS를 심어야 한다는 정책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 할 수 있느 법안이라 하여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였으나 죄수번호 1번이 잡히지 않고  사건이 장기화 되자 여론은 점점 사형죄와 GPS를 이식하는 법을 지지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당시 여당이자 이 두가지 정책을 내 논 국민정의당이 다수의 의석을 확보하며 두가지 정책 모두 여론과 지지를 얻어 자연스레 통과가 되었다. 그 후로 모든 사람들의 손목에는 신용카드와 주민등록증 역할을 하는 칩이 그리고 머리에는 실종시에 또는 범죄를 저질렀을시 추적이 가능한 GPS가 이식이 되게 되었다. 아마 이것을 비꼬는 의미에서 부장은 죄수번호 1번을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한 모양이였다. TV의 광고가 끝나고 다시 사형수 중계 현황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부장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어 시작한다, 이제 추첨 시작하겠는데, 신대리 자네도 잠깐 쉬고 이거 봐."

나는 의자에 앉은체로 유리창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TV가 나오는 부분을 제외한 넓은 유리창 밖으로 거대한 빌딩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TV를 눈을 옮기자 사회자가 한 손을 상자안에 넣은채로 휘젓고 있었다. 잠시 후 사회자는 자신의 손을 상자에서 꺼내 들었고 그의 손 안에는 입장권에서 절취한 번호표가 들려있었다. 그는 입장권을 흥분 된 얼굴로 들여다 본 후 큰 소리로 번호를 외쳤다. 잠시 후 화면은 전광판에 뜬 번호를 확대시켜 보여주었다. 번호를 보여준 뒤 카메라는 경기장 안을 뱅글뱅글 돌며 보여주기 시작했고 돌고 있던 카메라는 한 위치에 갑자기 정지하였다. 정지한 위치에서 화면이 점점 확대가 되었고 확대 된 화면으로 젊은 여성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그녀가 오늘의 마지막 사형수이자 역사적인 인물의 처형자가 될 사람이였다. 사형집행에 관한 운행이 사기업으로 넘어간 뒤로부터는 첫번째와 두번째 사형수는 사형집행인이 따로 있는 반면 마지막 사형수는 추첨을 통해 관람자에게 사형수를 사형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기업들이 이익을 얻기위해 부리는 수작이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국민들의 인기가 너무 거세 그러한 비판도 곧 사르라졌다. 추첨의 기쁨으로 가득 찬 그녀의 양 옆으로 그녀를 사형수 옆으로 인도할 경비병들이 붙어 있었다. 화면의 그녀가 사형수에게 다가가는 것을 계속해서 주시하며 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으로 보이는 관중들은 부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국사시간에나 배우는 부분이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러니까 국민안전관리법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사회에는 흉악범죄가 급속도로 급증하고 있었다고 한다. 세상은 문명의 발달로 더욱 편해지고 아름다워져 갔지만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는 여전히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국사선생이 문명을 발전 시킬 줄은 알았지만 인간은 자신들 스스로를 교화시키고 발전 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흉악 범죄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대부분의 범죄도 도심 지역인 가 지구가 아닌 공업지구인 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도심지역에서는 살인사건과 같은 중범죄라는 단어조차도 잊혀져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까닭은 현재의 발달 된 기술과 그런 기술을 사회에 적용 시킬 수 있는 법안이 마련이 되어 현재에는 0%에 가까운 강간 살인 범죄의 발생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도심지역인 가 지구에서-. 이러한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가 발생 했을 시에도 최대한 빠른 검거를 할 수 있는 체계가 잡혀있었다. 그 체계를 유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 한명이 나였다. 내가 하는 일은 사무실에 앉아 전 도시에 설치 된 CCTV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이였다. 거기에 시민들에 의해 휴대폰 카메로라로 찍혀 내가 일하는 곳의 웹사이트에 업로드 된 녹화 된 화면들도 볼 수 있었다. 반사회적 행동을 공공장소에서 하는 것은 최악의 행동으로 분류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고 심각하게는 특정한 행동들은 공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법률에 접촉 될 수 있었다.


그러한 화면을 시민들이 자신들의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내가 근무하는 국가내부안전관리청사의 사이트로 전송한다. 사실 시민들이 자신의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찍힌 영상을 청사로 보내주는 것은 국민안전관리법 이전부터 존재하던 매우 원초적인 그러니까 지금 국민안전관리법이 근본 정도 되는 행동이였으나 여전히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의 벌어지는 소위 적절하지 않은 행동들을 -그 수가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촬열을 하여 보내고 있었다.  일일이 국민 개개인이 화면을 찍고 녹화 된 자료를 사이트에 전송 할 필요없이 국가가 운영하는 국가안전감시청사 사이트에 접속하여 시간 장소 그리고 내용을 입력하면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신고내용을 접수 당시의 파일을 시간과 장소를 검색하여 화면을 불러온 뒤 자료를 검열하게 된다 그런 절차를 걸쳐 화면에 잡힌 신고 된 시민의 행동을 청사에 일하는 담당자들이 직접 보고 판단하여 법에 접촉 될 만한 행동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법률팀으로 자료를 넘기게 되고 법률팀은 그들 나름대로의 규정으로 다시 한번 자료에 대해 분석을하고 만약 분석결과가 신고당한 시민이 법률을 어겼다는 것 이라면  법적인 절차를 밟게 되어있었다.법률적 용어를 빌어 표현을 한다면 국가사전안전관리 및 보호를 위한 감시는 이미 공공장소에 수백 수천대가 설치 된 CCTV를 통해 실행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시민들로부터 전송받은 화면들과 CCTV에 잡힌 반사회적 행동으로 의심이 되는 장면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저장하고 진정 특기할 만한 자료들은 법률팀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안전감시팀에만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수도지역 가 지구 청사에만 수십명에 달했으며 전국으로 따지면 2-3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방청사에서 국가공무원으로서 나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공익을 해치는 부적절한 또는 반사회적 행동 -물론 범죄는 다른 분류지만-을 한 사람이 실제로 화면에 잡히고 법률팀에서 화면에 잡힌 행동을 분석하여 법에 위촉된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국가는 그에 대한 절차로 고소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자동으로 가지게 되어있었다.

.
부장이 맞긴 모든 일을 마치고 부장을 향해 돌아섰다.

"부장님 다 끝났습니다."

부장은 자신의 몸을 기울여 화면을 바라 보았다.

"음 그렇구만, 신대리가 했다면 뭐 다시 확인 안해봐도 되겠지 고생했어. 언능 가봐야 되는거 아니야?"

"아, 예. 부장님은 사무실에 더 남아 계실 건가요?"

"나는 일을 조금 더 하다 갈려하는데, 자네 점심 약속은 있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네...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습니다."

"아 그러면 어서 가야겠네. 빨리 가고 주말 잘 보내게."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의 얼굴은 왠지 나에게 남으라고 하는 듯 한 표정이었으나 더 이상 남아있고 싶은 마음은 꿈에도 없었다.

"그럼 부장님, 먼저 들어 가보겠습니다. 주말이신데도 이렇게 나와 계시는 거 보면 확실히 부장님께 배워야 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응 그래 어서 가봐."


"네. 그럼 들어 가보겠습니다."

나는 부장에게 짧게 대답하고 부장으로부터 등을 돌려 사무실로부터 빠져 나왔다. 사실 점심약속은 없었고 오늘 저녁에는 친구놈을 만나 술 한잔하고 클럽에 갈 예정이였다. 그 전까지는 마땅히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다.  하지만 부장과 주말에 점심까지 먹는다는 것은 정말 유쾌하지 못 한 결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둘러 나와 버렸다. 밖으로 나온 나는 휴대폰을 꺼내 택시회사로 전화를 걸었고 택시가 10분 정도 후면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 주변으로는 고층건물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어 거대한 건물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각 건물들의 유리창에는 수 많은 형형색색의 광고들이 방송 되고 있었다. 거의 반은 벗은 듯한 여성부터 택시에서 본 국가공익광고까지 다양한 광고들이 거대 빌딩의 유리창을 포장하고있었다.  빌딜들의 유리창은 외부에서는 TV로 건물 내부에서는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유리창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왠만한 고층건물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광고수익의 원천이었다. 거리는 여전히 한산했고 드문드문 걸어다니는 사람들만이 보일 뿐이였다.


잠시 기다리자 어느 덧 택시가 왔고 택시 안으로 몸을 실었다. 택시의 뒷자석에 몸을 깊숙이 파 묻었다. 부장이 권유한 점심을 거부한게 마음에 걸렸지만 만약 거절하지 않았다면 부장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었어야 했을 것 이다. 능력도 그렇게 높지 않고 매번 여러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서 혼자 떠들기 일 수 였지만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였다. 하지만 문제는 부장이 술자리에서건 여러 직원들과 함께 할 때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는 것 이다. 보통 그가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는 부장의 대학시절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몸에 시민증과 신용카드를 저장 된 칩을 심는 것이 법으로 통과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데모를 했으며 거리와 공공장소에 CCTV가 설치 되는 것은 인권과 인간의 기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국민들에게 법안의 부정적인 영향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국민안전법이 통과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의 열정을 쏟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부장의 시점에서 보자면- 안타깝게도 법안은 두 개의 법안은 투표를 통해 모두 통과가 되었고 부장과 내 팔에 심어져있는 칩과 내 두개골 어딘가에 GPS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보면 부장과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실패하였는지를 이미 잘 설명 해 주고있었다. 거기에 더욱 모순되게도 부장은 젊은 시절 그렇게 반대하던 국민안전법의 통과로 인해 생겨난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민들의 공공장소에서의 생활을 감시하는 부서의 부장을 달고 있다는 것 이다. 지금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이 택시안에 설치되어있는 CCTV를 통해 택시 내부의 모습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법이 허락하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부장이 마음먹고 본다면 못 할 것도 없는 일 이였다.  

어쨌든 지금도 국가안전법과 몸에 이식 된 칩으로 인해 여러 정치인들 사이에서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찬반논의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주제와 같이 사람들이 정치이야기를 하거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게 되는 이야기 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해 학교내 수업에서 몇 번에 걸쳐 학교 과제와 수업 덕 분에 한 때는 찬성쪽에서 한때는 반대쪽에서서 토론을 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지긋지긋한 주제와는 작별을 고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이런 정치관련 주제 사회관련 주제가 나오면 그저 듣거나 자리를 피했을 뿐 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도 뉴스를 보고 TV를 보기 때문에 인권과 안전에 관한 주제에 관해 접할 수 밖에 없는 위치이기에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별로 관심없는 주제에 대해 떠들고 아는척하고 무언가 내가 옳다는 듯이 한 쪽편에 서서 이야기를 끌어간다거나 언성을 높여가며 논쟁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고 확실히 사회적으로 실효성을 거두는 모습을 이 법안이 보여주자 매번 이 법안을 폐지하자는 소수의 의견은 큰 지지를 받지 못 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공공의 이익에 대해 확실한 개념이 없는 의견이라고 일축 당하는 것이 십상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 또한 인권과 개인적 자유보다는 국가 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금처럼 보장 할 만한 체제와 정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인권은 둘째로 두고라도 현재의 법안을 지키고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 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부의 감시는  어느 정도 인정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법안이 사회적인 실효성과 효과에 대한 증거들로 인해 사회적으로 동의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었다 인권과 복잡하게 들리는 법안들은 내 관심사 밖이였다. 내가 가진 관심사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내 계좌 안으로 월급이 제대로 들어왔으면 하는 것이 내 주된 것이였으며 내 일상이 그저 무난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관심사이자 주제였다. 가끔 시민들에 의해 녹화되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거나 법안이 통과 된 직후 생긴 이 기관에 보내진 녹화되어 있는 자료들을보면 세상이 정말 미쳐 돌아가고 있었구나 이 법안 통과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 외에는 그저 깊게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부장과의 점심이 그저 상급자와 점심을 먹기에 불편한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야 한다는 것이 부장과의 점심을 거절하게 만든 더 큰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집에가서 밤에 있을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낮잠을 자고 싶었다. 주머니에 있는 전화기를 꺼내 펼 쳐 친구에게 친구에게 거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 친구와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가장 친한 친구였다. 택시는 거대한 빌딩들로 이루어진 빌딩 숲의 한산한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로 솟아난 빌딩들의 건물에는 수많은 광고들이 형형색색의 빛깔로 치장 된 채 방영되고 있었다. 무슨 광고인지 구분도 안되는 광고를 택시 창을 통해 바라보며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휴대폰을 통해 신호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를 끊은 나는 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나 우선 집으로 가 있는다, 보거든 연락 줘라.’

휴대폰을 말아 다시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얼마 후 집 앞에 다 달았고 택시 내부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시 한번 인식기에 손목을 대고 인식했다는 소리와 음성이 흘러나오자 마자 문을 열고 내렸다. 내가 사는 곳은 35층 아파트의 23층에 위치한 곳 이였다. 부모님이 실버지구로 옮겨가면서 도시 외각에 위치한 나 지구의 집을 나에게 상속해주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혼자 살기에는 집이 너무 컸고 사실 말이 상속이지 부모님이 마저 갚지 못 한 -물론 대부분을 상환했지만- 잔금을 치뤄야 햇다. 혼자서 사는 처지에 그런 큰집을 -물론 거대 대주택 수준은 아니지만- 혼자서 관리하기도 그렇고 남은 잔금을 치루는 것도 원하지 않아 상속으로 받은 집을 팔고 잔금을 주고 나니 도심 지역에 이 정도 되는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젊은 남자 혼자 살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에 대한 잔금을 물고 그 집을 소유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결혼에는 마음도 없었고 은퇴연금이 내 월급에서 국가가 꼬박 꼬박 징수하고 있기에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고 나면 부모님처럼 실버지구로 들어 가게 되 있기 때문에 먼 미래에 내가 머물게 될 집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내가 태어난 이래 나 지구에 있던 우리 집에서 살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한 목했다. 부모님은 결혼 후에 얻은 그 나 지구에서 실버지구로 들어 가 실 때까지 거의 반평생을 살았지만 나는 주말이나 되야 집에 갈 수 있었다. 부모님은 여타 가 지구나 나 지구에 사는 부모들같이 내 돌이 지난 후에 나를 시민보육기관에 양육을 양도하였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은 소수의 부유가정들처럼 집에서 나를 양육 하며 맞벌이를 할 수 없었고 나는 시민보육기관에 맞겨 진 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 거의 부모님은 주말에만 만나게 되었다. 그렇기에 집에 대한 애착도 없었고 실제로 집처럼 편하게 느껴 본 적도 없었다. 시민보육기관은 국가에서 세운 기관으로서 돌이 지난 아이의 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져 준다. 부모가 원하면 언제든지 와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볼 수 도 있었고 주말이 되면 아이들을 자신들의 집으로 대리고 갈 수도 있었다. 국가의 보육지원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중산층 부모들은 아이들의 양육에 대한 걱정 없이 일을 하고 큰 부담 없이 자신들의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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