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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인문사회

인터스텔라, 인간 그 본능에 관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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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 관한 논의는 접어두도록 하자. 영화를 본 -나를 포함하여-사람 중에 20세기 천재과학자가 발표한 이론을 이해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됐을까.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름으로, 우주를 여행한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늦게 늙을 수도 있고, 지구에 남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빨리 늙을 수 있다는 정도만 이해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과학자가 아닌 입장에서  상대성이론을 영화로 입이 떡 벌어질 듯한 영상미로 표현했다는 점이 인터스텔라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블레이드 러너, ET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느낀 감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고 예상하게 해주는 점은 덤이겠다. 3시간을 쉴 새 없이 달리는 영화는 지루함을 느끼지 못 할 정도로 짜임새있고 이야기의 전개도 매우 훌륭했다. 영화 그 자체만으로도 즐기기에 충분했고 사람들의 뇌리에 박힐만큼의 충격을 주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근래에 보기 힘든 신선한 소재를 주제로 삼은 영화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인터스텔라는 참신한을 던지는 영화임에도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로 들여다 보면 그리 새롭지 않은 주제를 내용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가 완벽하게 새로운 무언가를 제공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한다. 미대륙에 무단으로 상륙해 땅을 점령하고 원주민을 학살한 내용을 담은 아바타를 보았을 때도 그랬고, 인간이 개인재산을 소유하게 된 시점부터 멈추지 않는 싸움을 주제로 삼은 설국열차를 보았을 때도 그러했다. 눈을 사로 잡는 영상, 겪지 못한, 겪지 못할, 상황에 대한 새로움만이 있었을 뿐 본질적인 주제는 인간들의 역사에서 따오거나 현재에도 진행 중인 이야기 였을 뿐이다. 


인터스텔라 또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 한다. 거대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광활한 우주로 떠나는 인간들,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4차원과 5차원의 세계 그리고 블랙홀, 절대적인 시간이 아닌 상대적인 시간이 존재하는 자연을 담은 인터스텔라에는 분명히 참신한 것들로 가득채워져 있다. 하지만, 영화 그 자체의 주제는 인간이 두발로 걷기 시작하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시작한 이후로 풀지 못 한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고 있을 뿐이다. 생존 그리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풀지 못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영화의 주요 주제인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인간이 약 200만년전도 넘게 전에 지구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그 누구도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해 왔는지, 아니 대체 왜 살아가고 있는지 그 해답조차 찾아내지 못 했다. 인간의 일만도 아니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공존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대체 이 지구가 왜 만들어졌고, 이 안에 생명체들이 왜 살아가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 한다. 왜 태양은 지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을 제공하는지, 태양이 왜 그곳에 있는지도, 달은 어째서 지구에서 떨어져 나가 밀물과 썰물이 가능하게 됐는지, 태양, 지구 그리고 달의 작용원리와 중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이 근본적인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 한다. '왜 존재하는가.' 인간 이전 존재했던 공룡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왜 멸망을 했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가장 근본적이고 단순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 한다. '대체 왜 존재하고 사라져 가는가'





인터스텔라에 주된 내용은 생존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 내는가, 생존에 대한 열망은 과연 이성인가 아니면 본능인가. 영화 속 한 과학자는 자신이 살아남고자 이기적인 마음으로 구조신호를 보낸다. 자신의 임무가 실패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존본능, 또는 인류번식이라는 이성에 의해 구조신호를 보내 다음 대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그가 가진 생존을 위한 이기적인 본능은 자신 이후로 다음 대원들이 구조신호를 듣고 찾아 올지도 모른다는 불확신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게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고 지구의 사람들을 구하려고 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생존본능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이기적인 생존본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아 남아 인류를 번식시켜야 한다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괴변을 늘어 놓는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그 안에는 그저 자신의 생존 본능을 합리화 시키려는 논리 밖에 남아있지 않다. 가장 뛰어난 과학자인, 이성의 꽃이라 불리는 과학을 업으로 삼은 이 사람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과연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얼룩말을 쫓는 사자와, 살아남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사자로 부터 달아나는 얼룩말과 다른 점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우주를 연구하고, 자연을 연구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고 자부하지만 결국 생존 앞에서는 본능 앞에 무너지는 하나의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생존 앞에서는 상대성이론, 5차원,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는 고차원적인 생각과 능력도 그리고 도전정신도 필요 없어진다. 그저 하나의 동물로서 가지고 있는 머리와 몸으로 발버둥칠 뿐이다.   





인류를 존속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영화는 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성과 감성 과연 어느 것이 인간을 생존하게 끔 만드는 가. 인류를 위한 번식을 위해 필요한 것은 위험을 줄이고 성공확률이 높은 계획을 선택하는 이성적인 판단일까, 아니면 가족을 살리고 인류를 구원하려는 정의감이나 사랑과 같은 감정일까. 





주인공은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우주로 떠나간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지구를 찾아 나선다. 여성과학자는 이 임무와 함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우주로 떠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떠나는 사람, 이 두사람은 같은 비행선에 몸을 싣는다. 왜 사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지만 살아 남아야 한다는 강한 열망을 모두 품고 우주로 나간다. 5차원의 세계, 블래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왜곡된 시공간, 인류를 동면에 취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 다른 은하계로 이동할 수 있는 과학과 기술력, 이 모든 것들의 존재 이유는 하나다. 인간이 어떤 마음을 품고 이런 기술과 문명을 사용하던, 결국 생존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윤발이 이쑤시개를 씹으며 무전기만한 전화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 할 때, 저런 일이 언제즘이면 실생활에서 일어날까 했던게 불과 내 어린시절임을 생각했을 때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이론 현실성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이 현실화 된다고 할 지라도 인간들의 삶이 가지는 본질적인 그 무엇은 변하지 않을 듯 하다. 300km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반나절이면 대양을 가로질러 다른 대륙으로 날아갈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 마음 속과 머리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풀지 못 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살아남았고, 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우주는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지금보다 더 발전 된 미래가 찾아오고, 우리가 알지 못 했던 우주의 비밀들과 신비함들이 밝혀질 날이 오고, 그로 인해 우리의 존재이유가 밝혀진 미래는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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