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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인문사회

외로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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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0년 전 만해도 동양과 서양에는 농사가 주생업으로 삼던 나라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족, 친지들은 한 마을에 모여 살았고 다른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이동하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길러지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신이 태어난 그 마을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한 해를 같이 맞이하고 한 해를 같이 보내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는게 이상하고 더 힘든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농사를 하러 나가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전까지도 매우 흔하고 당연한 삶 중에 하나였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은 농경생활을 하던 인류의 최대 목적인 기아탈출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한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일구고 배고픔을 이겨낸, 전형적인 성공한 국가 중 하나다. 50년 전 입에 풀칠할 거리를 찾는게 일이었다면 오늘에는 무엇으로 지루한 입을 달래줄까가 주 된 고민인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공부를 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니 바로 윗세대인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의 이야기는 전설따라 삼만리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로 간주가 되는 세상이 됐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우리 옆에서 숨쉬고 산 증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그들이 겪은 시절은 너무 급격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TV에서는 배고픈 삶을 이겨내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찾아 보기 힘든지 오래이고 그 자리를 부유층의 사랑과 배신, 연애, 직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채우고 있다. 대한민국은 20년 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성공했지만 성공하지 못 한 것 같은, 무언가 빠진 듯 한 성공이지만 말이다.    


산업화, 경제의 발전은 사람에게 배고픔을 걷어간 대신 외로움을 남겨주고 갔다. 젊은이들은 집을 떠나 도시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마을에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들만이 남게 되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도시로 간 사람들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곡괭이와 낫으로 일구던 농경지에는 열사람 백사람의 몫을 하는 기계장비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람이 있던 자리에 사람이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산업화 초기, 공장, 사무실도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했다. 산업화가 가지고 있던 불완벽한 자동화의 자리를 사람들이 채웠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곡괭이와 삽이 포크레인으로 대체되었듯 산업화를 넘은 자동화는 공장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사람들을 자리에서 내 몰기 시작했다. 농경지를 떠나 공장과 사무실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다시 기계와 컴퓨터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기계에게도 자리를 뺏긴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농사를 짓는 고향의 그곳도 기계장비가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농사라는 일과 거리를 둔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돌아 갈 엄두도 생각도 못 했기 때문 일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선 그자리를 제외하고는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부모님을 뒤로 하고 도시로, 도시에서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었지만, 다시 자식들은 다른 도시로 가거나 집을 나와 독립을 해야만 하는 세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빠르게 세포분열하듯 도시 이곳 저곳으로 분열을 했고 지금은 1인가구수가 역대 최고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혼자 사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다. 혼자 살게 된 인구들이 많아지고, 그 사람들이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졋을 테지만 , 절대 익숙해 질 수 없는 것이 하나가 있다. 외로움이다. 인간의 본능에 내재가 된 것인지 아니면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기억에 남은 대가족에 대한 추억이 외로움을 만들어 내는지, 어떤 쪽이 사람들을 외롭게 만드는지 딱 잘라 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사회이건, 산업화, 자동화 그리고 경제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 일 수록 외로움에서 벗어 나기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TV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육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군대생활을 하는 것을 보여주며, 가상연애를 하는 연인들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혼자 사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사람들의 눈을 잡아 두려고 한다. 예전이었다면,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삼촌의 가족을 보며, 친형이나 오빠, 아니 친척 형이나 오빠가 추석이나 설날에 들려주던 군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애를 하는 가족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볼 수도 있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혼자 산다고 하면 혼자 사는 이를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닌 걱정이란 걱정은 모든 가족들이 해주던 때가 있었다


혼자인게 자연스럽고 창피할 게 없어진 사회다. 혼자 살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일 하고, 혼자 잠자리 든다. 부모님을 추석이나 설날때 못 찾아 뵌다는 대답은 쉽사리 이해를 받고 더 이상의 질문은 오지랖이 된지 오래다. 그렇게 외로워져 간다. 먼저 산업화를 겪고 경제의 발전을 일구어내며 현대문명사회의 주축이 된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빛바랜, 한 물간 소재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외롭게 살고 있다면,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그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밥이 없어 굶주린 배를 물로 채워야 했던 세대가 겪은 배고픔이 그 시절 만연하고 당연했듯, 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 현재는 외로움이 옛시절의 배고픔만큼 당연한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외로움이 극에 달했다면, 분명 이를 어느 정도는 덜어 낼 방법이 있다.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방법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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