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ity Life/인문사회

당신은 한국사람이십니까?

반응형



피는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의 국적까지 가져야 자랑스러운 진정한 한국인 되는 것일까?        



언젠가 고려인 동포와 룸메이트가 되어 같은 방을 쓴 적이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한국 말을 하시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국말을 할 줄은 알지만 잘 쓰지 않고, 자신은 전혀 한국말을 할 줄 모른다는 교포 3세 였다. 같이 방을 처음쓰게 되었을 때 나보다 어린 그를 한국 동생 대하듯이 대하려고 했었다. 러시아 이름을 쓰는 그였지만 성은 크박이라 발음 되는 곽씨 성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알게 됐지만 형처럼 굴려던 나의 거만함이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인 줄 알고 친구들과 함께 야밤에 집단구타를 계획도 했었다고 한다. 처음 만나 본 교포 3세였지만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문화적 차이는 없을거라는 막연한 무지에서 나온 오만함에 나온 내 불찰이었다. 어쨌든, 다행하게도, 야밤 잠결에 집단구타를 당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함께 같은 방을 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며 친해졌고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성인 크박을 놀리던 같은 반 아이들과 벌인 싸움이 셀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그의 동생도 같은 경험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언어가 고착이 된 것인지 변화가 된 것인지 백김치를 김지라 부르고 순대를 순자라 불렀지만 할머니가 해 주신 김지와 순자가 그렇게 맛이 있다며 방학 때 집에 돌아가 빨리 먹고 싶다고 하는 그였다. 나를 외국인이라 부르는 그에게 그럼 너는 누구냐라고 되묻는 나에게 자신이 진짜 까레이츠(고려인, 한국인)라고 했다. 그 나라에 있을 때 나도 내 자신을 소개할 때 까레이에서 왔다고 하거나 까레이츠라고 대답을 했다. 그나 나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까레이츠였지만 뒤에 따르는 부연설명이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한국여자와 결혼을 안 하면 어쩌나 고민을 한다고 했다. 그 나라에 사는 교포간의 결혼율은 90%가 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자신들의 피에 이리 집착하는 민족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일본에 점령 된 땅을 피해 북쪽으로 올라간 조선인들은 훗날 국경이 갈리며 자신들이 살 던 땅이 러시아로 변하고 중국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 보아야만 했다. 조선땅에 남은 사람들인지, 중국이나 소련에 포함된 조선인들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하고 운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 쪽에 있던 많은 조선인들도 소련의 정책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나는 학교 교과서는 고사하고 언론을 통해서도 듣거나 본 적이 없었다. 소련 국경 내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독일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차 짐칸에 몸뚱이만 짓이겨 넣어지고는 허허 벌판으로 강제이주를 당해야만 했다. 이주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 버려진 조선인문자 그대로 맨몸으로 살아 남아야만 했다. 맨 손으로 우물을 파고 돌을 들고 물길을 내어 농경지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살아 남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세대를 이어 자신의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대학에 보냈고 그렇게 이어져 온 명맥 중 한 명이 나와 함께 방을 쓰던 그였다. 







크박, 곽씨라는 성을 가진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한글도 배우고 싶어했고 한국말도 배우고 싶어했다. 본관에 대해 알려주고 자신의 본관에 대해 알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관심없는 척했지만 반짝이는 눈은 감추지 못 하던 그였다. 한국에 가보고 싶지 않느냐는 말에 가보고 싶다던 그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 보는 건 어떻겠냐는 질문에는 밝은 내색을 하진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놀랍게도 그의 가족들은 한국에 있는 친척들과 연락이 됐었다고 한다. 연락이 되던 한국의 가족들을 찾아 그의 삼촌이 한국을 방문했었던 모양이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었지만 한국을 방문했던 삼촌이 돌아왔을 때 그리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마도 너무 달라진 한국 그 자체, 그리고 오래 제대로 된 교류없이 멀리 떨어져 지낸 친척들과의 사이에 생긴 벽 때문이 아닌가 하고 여기고 있었다. 그의 여권을 본 적은 없지만 그가 말 해주길 자신의 여권에는 국적과 민족이 동시에 표기 된다고 한다.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인으로 등록해 두는 것이었다. 자신의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신을 그 나라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였지만, 여전히 민족은 한국인이었다






예전 아르바이트로 공장에 일을 하러 갔을 때, 조선족 아저씨와 고려인 청년과 함께 일 한 적이 있었다. 재중교포 아저씨는 연변발음을 썼지만 분명 한국말을 했다.국적은 중국에 연변방언을 사용했지만 둘도 없는 한국말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교포총각은 한국말은 하지 못 했지만 자신의 누나가 한국에서 결혼을 했고 자신도 한국에서 살 수 있으면 한다고 했다. 뭐랄까 뭔가 묘한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나까지 포함하여 태어난 나라도 다르고 살아 온 환경도 다르며 궁극적으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을 조선인, 고려인, 한국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맴돌았다.                 





중국에서 일을 해 보신 이사님과 대화를 하다 인상적인 말을 듣게 됐다. 재일교포, 재미교포 일본과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또는 이민 몇 세대라는 말로 더 정확히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재중동포, 재중교포라고 부르지 않고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러시아 또는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국인들은 재러동포나 교포라고 부르지 않고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그네들에게 조선족이세요? 라는 말로 질문을 하면 바로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고, 반면 교포세요 라는 말을 하면 경계를 풀고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 온다고 한다. 중구과 국교를 맺고 많은 재중교포들이 한국으로 들어왔고 중대한 사건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어쩌다 이렇게까지 돼버렸을까, 중국과 러시아 지역에 사는 한국인들은 조선족과 고려인들은 어쩌다 동포가 아닌 외국인처럼 인식하는 풍토가 생겼을까. 어쩌다 북을 다른나라로 보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외국인 대하듯 말 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됐을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복잡하게 얽혀버린 사회적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되는 것을 당연하다거나 정상적으로 보는 시각이 당연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인듯 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