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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인문사회

신이여 그들을 증오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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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은 신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이 누군가를 증오할 수 있게끔 또는 증오 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인간이 가진 본능, 심성에 자동으로 장착이 되어져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자제하려 한다해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겨나고 자라나기도 한다. 득도를 한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에야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신이 있고,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들 신에게 누군가를 증오하는 일에 대해 허락을 구하거나 사죄를 구할 필요도 없을 듯 하다. 인간을 만들면서 증오라는 감정을 심어 준 것이 신이라면 신은 이미 사람이 누군가를 증오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고 현재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품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자유이고 누구도 그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없다. 최소 그 감정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화가 난다고 타인을 구타하거나 타인의 물건을 파손시키는 일은 엄연히 불법이고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아님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의 자유를 누리고 지킬 권리가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증오를 한다는 자유는 누릴 수 있다, 그 증오로 인해 누군가를 죽이거나, 해를 입힌다거나 하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유를 기본으로 삼는 국가인 미국은, 아쉽게도 자유를 짓밟으며 성장한 국가 중 하나이다. 아프리카에서 넘어 온 흑인들은 농장경영의 근간이었고 서부와 동부를 잇는 철도는 노예나 다름없이 값싼 노동력에 착취당한 중국인들의 작품이었다. 미국에서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뒤로도 노예제의 잔재는 미국사회근간에 뿌리 깊게 남아 1960년 70년대에 들어서 까지도 공식적으로 이어져 왔었다. 눈에 보이는 확연한 차별이 없어진건 불과 반세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백인종과 그렇지 않은 인종들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별이 존재했고 실상 지금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권투 챔피언으로 잘 알려진 무하마드 알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에도 백인들의 차별에 좌절을 느끼고 금메달을 호수에 던져 버린다. 자신의 자유도 보장받지 못 하는 판국에 타국의 전쟁에 참전할 수 없다며 베트남 전도 거부하게 된다. 미국 내에서 흑인들이 차별을 받는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 흑인들은 미국에 노예로서 들어왔고 그들이 가진 피부색은 그들이 과거를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한 때의 주인들은 예전의 노예가 아무리 자유를 얻었다 한 그들의 과거를 빌미로 자신들이 여전히 우월하다고 말해 왔던 사회가 미국사회였던 것이다. 현대인들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고 희생당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진형 중인 역사 때문인 것일까 미국에서는 차별이라는 단어를 매우 심각하고 그리고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듯 하다. 인종차별을 통해 얻은 차별에 대한 생각과 시각이 인종차별을 넘어 차별 그 자체를 민감한 시각으로 바라 보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같은 인간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특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인간을 얕잡아 보고 무시하고 그들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시각이-가시적으로는-사회전반에 퍼져있는 듯 하다.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누구나 정해진 범위 내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한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국가가 한 개인이나 다른 집단의 정당한 자유를 무시하거나 억합할 권리를 절대 가질 수 없다. 독재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이야기가 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정당한 권리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동성애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나열을 해 보라고 한다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 백, 수 천개의 이유를 나열 할 수 있을 듯 하다. 반대를 하는 이유 중에는 충분한 논리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문제를 직시하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사실 어떤 이유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든 동기가 어떻든, 아니 동기나 이유가 없더라도,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일은 타인이 통제를 할 수도 없고, 하지 말라고 강요 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집단을 싫어하고 그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성애자를 증오하고 동성애 자체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도 누구나의 자유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까지 딱 잘라 잘 못 되었다, 해서는 안 된다라고 억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증오와 미움이라는 감정이 아무리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을 지라도 한 개인이 품는 감정을 조정하려 하거나 억압하려 한다면 다른 기타 강제적으로 가하는 억압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증오와 미움을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소수의 자유를 폄하하고 억압하려 한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반대의 이유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 논리도 있고 납득이 될만한 이유들도 있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들의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한들 자유가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사람들이기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누가 정한 것이며 명확한 정의는 누가 정했단 말인가. 동성애가 자연의 섭리를 어긴다는 뜻은 그들이 종족번식을 할 수 없고 하지 못 하기에 그런 것인듯 한데, 그렇다면 세상의 불임부부나 평생을 독신으로 살기로 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기사에서는 50대 후반의 여성이 나이로 인해 대학교를 포기하고 자퇴를 했다고 한다. 이 분 또한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자신의 꿈을 쫓았기에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것일까? 남들 다 그렇듯 20대에 대학을 가고 공부를 끝냈어야 하는 것일까? 특정한 일이 다른 어떤 사건보다 더 자주 그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해서 그 일을 섭리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아이를 낳지 못 하거나 않는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논리가 되는 것일까?  종교적인 이유로 종족번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소수자들 또한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있는 것이며 불임부부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로 받아 들여져야 하는 것일까? 자연의 섭리를 반한다는 시각은 글쎄, 납득이 쉽지 않다






동성애자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언제나 존재해 왔다. 세상에 알려지고 양지로 나오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뿐 인간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동성애가 금지되기 시작한 것도 인간 전체 역사 속에서 얼마되지 않는 분량을 차지하고 거기에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타인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일은 개인의 자유이고 누구도 그 권리를 뺏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확산이 되고 소수를 혐오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당연시 되다보면 다수가 소수를 탄압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나치가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유대인 학살은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 했듯이





과연 우리는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학살은 끔찍한 악행이지만 동성애자들을 학살한 일은 자연의 섭리를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나와 다르기에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반면 이유없이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 인간이 그 정도 수준에서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피부색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기피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내 팔에 난 점을 보고 나를 혐오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하지만 이런 행동을-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라면- 개인의 자유이기에 인정해 달라고 말 한다면 반대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나치에게도 유대인을 억압하고 고립시켜 종국에는 학살해야 할 그들만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 없듯, 미워하지 말고 증오하지 말라고 강제할 수도 없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하는 생각들은 개인이 누려야 할 자유가 분명하다. 자유는 누구나 누려야 한다. 각 개인의 자유는 보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싫어해야 할 이유도 없고 반대 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일도 자유이고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자유를 즐기겠다는 것을 아니꼬운 눈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타인이 개인의 자유를 만끽하고 사회의 테두리 내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폄하 받아야 할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굳이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품기만 해야겠다면 그 누가 말리겠는가, 본인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던 그건 각자 개인이 누려야 할 자유이지 않은가.  




다시 말 했듯, 타인을-정해진 범위에서-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침범받지 못 할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권을 추구하는 것 또한 타인의 눈치를 봐가며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더욱이 억압 받아서는 절대 안 된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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