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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정치

비운의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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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가 많았던 대통령 중의 한 명이었던 존 F. 케네디의 퍼스트 레이디 잭클린 케네디 오아시스.


 케네디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어린 나이에 대통령 이었듯이 퍼스트 레이디 였던 재클린의 나이 또한 그리 높지 않았다. 당시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재클린의 인기는 헐리우드 영화 배우 못지 않은 인기였다고 한다. 섹시하고 멋진 케네디 대통령의 아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 자체로도 패션 아이콘으로서 당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퍼스트 레이디로 활동을 하던 재클린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 백악관으로 예술가와 정치가들을 초대해 만찬을 열기도 했고 여러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모,명예,지위,부 없는게 없을 정도로 완벽했던 그녀의 환경이었지만 그녀의 삶은 그리 완벽하지 못 했다. 


그녀가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건 어느 저녁 파티에서 였다고 한다. 같은 사교그룹에 등장을 하던 케네디와 재클린은 어느 새 가까워져 연인관계로 발전을 했고 둘은 약혼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만난 지 1년 만에 식을 올린 두 사람의 나이차는 12살. 재클린의 나이는 24살 이었고 케네디의 나이는 36살 이었다. 그녀는 약 서른 즘에 미국 대통령의 아내이자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그녀의 삶은 역경의 소용돌이로 빠지게 된다. 1963년에 아들을 낳았지만 태어난 그 작디 작고 사랑스러웠던 아들은 폐가 완벽하게 생성되지 못 해 5주 만에 삶을 달리하고 만다. 그렇게 아들을 잃은 슬픔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 한채 그녀의 남편이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주의 댈러스에서 그녀와 함께 퍼레이드를 벌이 던 중 암살을 당하고 만다. 컨버터블에 함께 동승해 옆자리에 있던 남편의 죽음을 목격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녀가 당시 입고 있던 옷에는 머리를 관통당하며 튄 그의 피가 고스란이 묻을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을 잃은 뒤로 그녀의 행보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남편의 관이 도착하자 그녀는 그녀가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남편의 손가락에 끼어주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후에도 그녀의 행동은 파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의 뒤를 잇는 존슨 대통령의 대통령 선서 날에는 사고가 있던 날 입고 있었던 분홍색 상의를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상의에는 그녀의 남편의 피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일부러 남편의 피를 지우지 않았는데 그녀가 지우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한마디로서 표현이 되었다. "잭에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들이 봤으면 한다." 그녀는 남편을 암살한 사람들이 어떤 잔인한 짓을 했는지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1968년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시련이 찾아 온다. 남편의 동생이었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이 되고 만 것이다. 당시 미국 국회의원이었던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은 재클린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고 그녀가 새롭고 안전한 인생을 결정 지울 수 밖에 없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당대의 최고 갑부 중에 한명이었던 아리스톨 오나시스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스의 선박왕으로 부자이자 수 없이 많은 스캔들을 내놓고 있던 아리스톨 오나시스와 전 영부인의 결혼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었고 그녀의 삶은 비난과 동정으로 얼룩진 대중의 눈빛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영부인 때와는 다르게 기자가 아닌 파파라치 들이 그녀의 뒤를 쫓아 다녔고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다른 이들의 가십거리로서 사용이 되어져 갔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의 이유는 그녀, 그리고 그녀와 전 남편 사이에서 얻었던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 다는 생각을 지울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선박왕 오나시스는 그녀에게 안전한 생활을 보장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녀를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세간의 눈은 그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 후 오나시스의 선박왕이 죽은 후 그녀는 어느 잡지 회사의 편집장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퍼스트 레이디로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그녀는 불행하게 남편을 잃고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잃어서기를 반복 했고 1994년 마지막 눈을 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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