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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정치

영웅으로 퇴장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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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복수를 했다. 국가대표팀이 스위스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경기력도 좋았지만 그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한국 축구의 대들보 이영표 선수의 은퇴였다. 하프 타임에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는 ‘초롱이’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MLS의 밴쿠버 화이트 캡스에서 은퇴한 이영표의 마지막 게임은 이영표 본인만을 위한 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팬들은 그의 얼굴이 새겨진 입장권을 들고 경기장에 들어와 역시 그의 얼굴이 그려진 걸개를 흔들었다. 구단은 홈페이지에 특별 영상을 게시했고 주장 완장까지 채워주었다.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 경기의 완성은 전반 43분에 이루어졌다.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킨 카밀로 산베소는 공을 들고 이영표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은 뒤 떠나는 영웅에게 공을 바치는 세레모니를 했다. 후반전이 종료되기 직전 감독은 이영표를 벤치로 불러들였고 관객들은 모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전광판에는 한글로 ‘이영표 선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고 주인공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은퇴였다. 영웅의 끝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표본이라 해도 좋았을 것이다.



                                            <이영표 은퇴 경기의 입장권>


반면 그와는 반대로, 그 와중에 국내에서 벌어진 일들은 긍정적인 끝은커녕 첫 단추조차 제대로 끼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합진보당은 지하혁명조직을 뜻하는 ‘RO’(Revolution Organization)를 만들고 활동하다가 내란 음모와 내란 선동,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 혐의를 받게 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순교자, 나아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영웅의 이미지라도 덧씌우려는 듯하다. 당원 1만 명 실천단을 만들어 촛불집회 등 각종 장외투쟁을 실행하는가 하면 이정희 당 대표는 아예 직접 변호인으로 나섰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이긴다”는 이석기 의원의 자신감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옳다고, 본인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자의 그것이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은 새누리당이 주도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의사당 안에서 정쟁을 주도할 힘이 없는 상황에서, 버텨낸다면 그들의 능력과 무고함을 증명하는 것이고 만일 해산된다 해도 박근혜 독재의 순교자로 스스로를 포장하면 될 일이라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통합진보당이 깡그리 잊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설령 법률 다툼에서 이길지라도(지난해 당내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건 때 실제로 기소당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 바 있지 않은가!) 쉽사리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영웅을 만드는 이는 당사자가 아니라 대중이라는 간단한 진실이다. 이영표는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고작 두 시즌 밖에 뛰지 않았다. 그가 전성기를 보낸 곳은 캐나다가 아니라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와 영국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쿠버의 팬들이 이영표의 은퇴를 아쉬워하고 그의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치는 까닭은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최선을 다해 뛰고 언제나 헌신하는 선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지금껏 국회에서 무슨 일을 이뤄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는 것이 이석기를 구하고 해산 심판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우선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리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영웅으로 죽거나 악당이 될 만큼 오래 살아남거나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설령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유지를 결정한다 할지라도 그 결정이 무색할 만큼 선거에서 크게 지고 곧 사라질 것이다. 어차피 영웅이 될 수 없다면,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통합진보당의 유일한 선택이어야 한다. 그들의 존재는 좋든 싫든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포용한다는 증거 정도는 되어 줄 테니 말이다.


                                                                                                                         By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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