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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정치

내 집 마련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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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귀, 눈, 덤, 뜀, 호구, 미생, 환격, 포석, 초읽기...고작 1년 만에 돌을 던지고 밖에 나가서 축구를 하는 길을 택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돌부처 이창호 9단과 같은 곳에서 바둑을 배운 동문이다. 바둑돌을 단순한 규칙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숨어있는 복잡한 술수는 어린 마음에도 묘한 대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바둑의 묘미는 누구나 스스로 자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그 결과를 상대방과 비교해서 승패를 가린다는 데에 있다. 서로 다를 것 없는 까만, 혹은 하얀 돌들을 움직여 집을 쌓는 재미와 공들여 만든 대마가 잡히고 난 후 헛손질만 해대는 허망함이 공존하는 것이 바둑이다.





잊고 지내던 바둑을 다시 떠올린 것은 나의 이십대가 한창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눈이 머물고, 마침내 마음을 주었건만 그녀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흡사 장고 중인 대가를 마주한 형국이랄까. 빈틈을 헤집고 들어가 내 집을 만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헤아려 보면 언제나 내 집이 꼭 한두 집 모자란 기분을 느끼곤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짜 집의 문제도 있었다. 나는 너를 바래다 줄 수 있지만 너는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 그것은 순전히 나에게 온전한 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숙사에서 하숙으로, 다시 하숙에서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기던 나의 생활은 메뚜기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하여, 집 같은 모텔, 이라는 간판을 마주하니 치밀어 오르는 것은 더러운 욕지기뿐이었다. 타올랐던 욕구마저도 금세 식어버릴 기분이었으니 세상은 바둑판마저도 못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별 수야 있겠느냐만 두어 시간 '내 집'을 마련하는 대가로 만 원 짜리 몇 장을 지불하고 모텔에 들어서는 심사가 유쾌할 리 없었다. 그런 식으로는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미안함으로 대체해가는 관계가 지속될 가능성은 다시금 내가 바둑돌을 잡고 이창호를 꺾을 가능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문제의 인지가 문제의 해결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바둑에서는 상대방의 수만 고려하면 내 집을 만들 길이 있었다. 설령 대국에서 패배할지언정 한동안은 내 뜻대로 운용의 묘를 부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둑판 위를 벗어나 집을 얻기는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88만 원 세대라는 단어의 뜻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창문 없는 방 32만원과 창문 있는 방 35만 원 정도 사이에서 햇살이라는 호사를 누리는 정도가 그나마 가능한 선택지다. 전세 대란이라는데 언제쯤 전세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하다.





그것이 내가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자, 바둑을 다시 두게 된 이유이다. 재개발을 해야 된다는 둥, 부동산 세제의 개편이 우선이라는 둥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는 이는 골방에서 바둑책이나 들여다볼 수밖에. 올해에만도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세 번이나 내놓았단다. 아까 펴두었던 바둑책 한 귀퉁이가 퍼뜩 떠오르는 대목이다. '묘수 세 번이면 필패.' 난국을 타개하려는 승부수도 세 번이 한계라는데, 그다지 묘수도 못 되는 대책은 대체 몇 번이나 더 써먹으려는 생각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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