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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정치

대학생, 백양로의 주인인가, 구경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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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는 내 자리가 필요할 뿐이었다. 복지부동의 공무원인 것도 아니면서 나는 늘 자기 자리가 있어야 안심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집돌이’로 밖에 안 나가고 머무르는 이유가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이 싫었던 이유를 굳이 찾자면, 다 하나로 수렴된다. 내 자리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뿐이다. 그랬던 나에게 내가 있을 곳을 알아서 찾아야 했던 대학이라는 공간은 기대와는 달리 피곤하고 귀찮은 곳이었다.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말과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러하듯, 켜켜이 쌓이는 시간과 그에 따르는 추억은 대학교 캠퍼스에도 내 자리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사실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복무 기간과 해외 체류 기간을 제한다 해도 무려 오년을 백양로에서 굴러먹었으니.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연희관 앞의 정원과 벤치, 땀 흘리며 운동을 즐기던 운동장 등 많은 곳에 나의 이십대가 담겨있다. 어디 나뿐일까. 백양로에 대한 기억은 연세대학교를 거쳐 간 모든 이들의 수만큼 존재할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오늘날의 백양로가 아프다.



                                                                                                                백양로의 요즘 모습. copyright by 주간동아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라고 명명된 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해 2월 정갑영 총장의 취임 직후였다. 6월에 이르러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1777명 중 78%가 찬성했다’는 결과가 나오는 등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설계안은 계속해서 바뀌고, 마침내 900억 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들여 2015년 5월까지 백양로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지상에 광장을 조성한다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그 실체를 드러냈다. 나무가 잘려나가고 캠퍼스의 공사화가 진행되면서 대학 사회에 불안감이 깃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연세 캠퍼스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연사모)가 만들어지고 학생들 역시 서명 운동에 가담했다.



단순히 감성팔이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의 백양로를 지켜주세요!” 라고 외쳐봤자 그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안다. 백양로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재개발을 찬성하는 사람, 나아가 추진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일단 찬성하고 삽 먼저 뜨고 보자는 측과 반대하고 나무를 지키자는 측 모두가 일종의 ‘확신범’이기에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외려 그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지난 오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다. 젊은 대학생이 지식인으로서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공헌이 ‘이의를 제기하고 반문을 하는 행동’ 뿐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사업이 900억의 예산을 사용해서, 혹은 공사 현장이 학생들에게 불편함을 주어서가 아니다. 대학이라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환경이 여전히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가 드러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책 속에 있는 지식만은 아닐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가진 이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설득하고, 때로는 설득을 당하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이미 이 프로젝트의 험난한 미래를 미리 점쳐볼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학교 입장에서야 공청회를 수차례 열었다면서 전혀 일방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취직하기 바쁘고 학점 따기 바쁜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공청회에 일일이 참석하기를 바라는 것도 쉽지 않은 기대다. 아닌 게 아니라, 한 때 시대를 앞서서 이끌어가던 지식인으로서의 대학생의 면모는 사라진지 오래다. 20년 전의 대학생들은 민주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거리에서 목청을 높였다. 취업 공부 같은 것은 할 필요도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부자유스럽고, 경제는 고속으로 성장하는 독특한 시대의 최대수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사회의 주축이 되었건만, 오늘의 대학생들은 고시생, 취준생 혹은 예비 취준생 정도로 분류가 가능하다. 대부분은 도서관에 머무를 뿐 운동권 학생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아서 문을 닫는 동아리가 속출하고 있다. 동아리 대신 그들이 발길을 돌린 곳은 취업 스터디나 학회 정도다.


심지어 이제는 대중문화의 중심에서조차 대학생은 점차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대학생이 즐기는 문화와 중고교생이 즐기는 그것에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기존에 대학생들로 설정되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제 고등학생이 맡는다. 재벌 자제들이 고등학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 <상속자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대학 문화가 살아있고 그 안에서 생동하는 대학생들을 보려면 20년 전 쯤을 배경으로 삼아야하는 모양이다. <카이스트>나 <남자 셋 여자 셋>을 보고 자라난 이들은 여전히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응답하라 1994>를 보고 있다. 이제 대학은 그 자체로 문화를 생산하고 확장시키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그저 잠시 머물러서 등록금이라는 토큰을 내고 취업이라는 버스를 기다리는 간이 정류장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때깔이 좀 다른데, 왼쪽이 고등학생이고 오른쪽이 대학생이다! 진짜다!


하여, 오늘의 백양로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처연한 감정이 든다. 단순히 한 학교의 예산을 어느 곳에 사용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학생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 곳에 있다. 자신이 이 길의 주인인줄도 모른 채, 무슨 공사냐면서 불평을 하고 잠시 후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기는 바쁜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워지는 것이다. 이의가 있다면 제기하고 자신의 뜻을 얘기해야 하는 주체인데 말이다.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자라왔으나 살릴 것과 뽑을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백양로의 나무와, 취직하는 이와 취직 못하고 있는 이로 나뉘는 대학생들의 신세가 그다지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독일의 사상가 훔볼트의 말로 이 글을 마쳐야겠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이 정원의 주인은 정원을 소유한 채, 조경사에게 관리를 맡긴다. 정원 조경사는 매일같이 이 정원을 가꾸고 돌보며 정원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정원의 진정한 소유자일까? 그것은 조경사이다.”


실로 그러하다. 정원의 주인이라면 나서서 말을 하고 정원을 직접 돌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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