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ity Life/정치

미얀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반응형

버마로도 알려진 미얀마는 동남아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다. 인구는 5천 4백만이며 세계적으로 10위에 위치한 땅 크기를 가지고 있다. 주 종교는 불교이며 수도는 네피도 최대 도시는 양곤이다. 한 때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왕국으로서 존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 영국의 동인도회사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2차세계 대전 중 일본의 식민지가 잠깐 되기도 했으나 다시 연합군이 미얀마에서 승기를 잡고 1948년 독립을 이루게 된다. 독립 이전 버마의 독립과 통일을 이끌었던 아웅산과 그의 동료들이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48년부터 1961년까지 민주주의 정부체제 였다. 하지만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였기 때문에 정세는 혼란스러웠다. 

1962년 네윈 장군이 이끄는 군사정권의 쿠데타로 버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독재국가로서 존재하게 된다. 2011년까지 군부정치가 이어져 나간다. 군부는 사회주의 체제라는 미명하에 국가주도 경제를 앞세워 미얀마를 통치했다. 하지만 미얀마의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시위가 발생했다. 대학생들이 죽어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탄압받고 목숨을 잃었다. 

 

1988년 양곤에서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반군부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이를 군부는 무력으로 다시 탄압한다. 이 때 수 천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국제사회는 군부를 비판한다. 대내외적으로 수세에 물린 군부 내에서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고 마웅 장군은 국가의 이름을 미얀마에서 버마로 바꾼다. 그리고 국회를 승인하고 총선을 치루게 된다. 

 

1990년 5월 아웅산 수치가 이끈 국민민주연맹이 492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민주주의 사회로서의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한다. 하지만 군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통치권을 군부는 놓지 않는다. 2007년에는 승려들이 중심이 된 샤프란혁명이 일어났으나 이 또한 무력으로 제압하며 승려들이 목숨을 잃는다. 

 

2008년에는 태풍이 몰아닥쳐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생긴다. 이와라디강 주변은 곡창지대로 이 일대가 자연재해로 20만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 100만명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된다. 군부는 국제사회와 인권단체가 제공고자한 지원을 거부하였는데 이유는 자신들의 실책과 실수 그리고 악행이 해외로 알려질까 두려워 이를 거부한 것이다. 

 

더 이상 국내적으로도 버틸 수 없었던 군부는 2010년 민주적 총선을 치루나 부정한 방법을 쓴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지는 못 했다. 군부가 지지하는 통합단결발전당이 80%의 의석을 차지하며 대승을 거두는데 이를 정당한 총선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민주화의 시작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웅산 수치를 가택연금에서 해방시켜주고 국가주도 사업을 민간에게 이양하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설치하였으며 민간에 대한 폭압을 점점 줄이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국제사회도 이에 호응하며 미얀마의 민주화를 믿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2년 군부에서 국민민주연맹의 총선참여를 허가해준다.  2015년에 치뤄진 선거는 투명한 환경에서 치뤄졌으며 국민민주연맹이 상하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국민민주연맹의 리더 아웅산 수치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했으나 군부는 법으로 아웅산 수치가 대통령이 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틴쪼 대통령이 비군부 출신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아웅산 수치는 신설직인 국가고문 자리를 얻게 된다. 

 

2020년 치뤄진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국민민주연맹이 476석 중 396석을 가져가며 집권여당으로서 더욱 공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통합단결발전당과 군부는 33석을 가져가며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된다. 통합단결발전당과 군부 그리고 15개의 당들이 투표에 조작이 있었다며 재검표 또는 재선거를 요구했으나 선거위원회는 특별히 밝혀진 부정이 없었다며 재검표나 재선거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통합단결발전당과 군부는 끝까지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으며 2021년 2월 흘라잉 장군이 이끄는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며 아웅산 수치와 원민을 가택연금하고 내각인사들을 여러 죄명을 달아 체포 구금하고있다.  다시 미얀마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이를 군부는 총칼로 대처하며 인명피해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흘라잉 장군은 미얀마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군부의 국가주도는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웅산 수기는 1989년부터 2010년까지 가택연금 당했으며 민주화를 이끄는 수장이다. 1991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