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폭풍이라는 단어는 폭탄이 터진 뒤 생기는 바람을 뜻하는 군대용어라고만 생각했다. 요새에는 이 후폭풍이라는 단어를 연인간 헤어진 뒤 찾아오는 감정의 기복을 표현하는 뜻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전남친 후폭풍, 전여친 후폭풍이라는 단어는 자신과 헤어진 전애인이 이별 후에도 자신을 잊지 못 하고, 그리워 하며 힘들어 함을 말하는 속어다.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한 사람과 이별을 했다면 그 사람에 대해 그리워 하고 잊지 못 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할지 모르겠다. 매몰차게 돌아서며 차가운 이별을 말을 던진 사람이건, 시베리아 찬바람보다 차가운 그 사람의 등을 보며 슬픔의 눈물을 삼킨 사람 모두 말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어제까지만 해도, 내 사람, 내 사랑, 우리, 함께, 행복, 미래라는 단어들로 표현되던 관계가 단 한 마디로 모두 끝이나고 없었던 일처럼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몇 년을 만났던, 얼마나 화려한 장미빛 미래를 꿈꾸었던 상관없다, 말 한마디와 도장 한 번 이면 님이라는 글자에 남이 되는 건 순간이다. 남이라는 글자에서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었다가, 그 지웠던 점을 다시 붙이는 단계인 이별을 겪고 나면 정신적 공황 상태가 찾아 온다. 그게 기쁨의 형태이던 슬픔의 형태이던 감정의 기복을 겪는 것이다.
이별을 고하는 쪽은, 아마도 며칠에서 몇달 또는 몇 해를 이별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듣는 사람에게는 뜬금없고 청천벽력같은 소리겠지만 보통 이별을 고하는 사람은 즉흥적으로 이별을 진지하게 고하지 않는다. 물론 싸우는 도중에 감정이 격해지는 바람에 "헤어져!" "이혼해!" "갈라서!" 라고 소리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의 이별선포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진지하게, 그리고 공식적으로 이별을 고하려고 한 사람은 자신의 복잡한 감정이 이별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단지 그 복잡한 감정이 확실해지고 확실해진 감정을 입 밖으로 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생각지도 못 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 한 말을 준비되지 못 한 상황에서 듣게되면 충격을 받게 된다. 생각지도 못 한 돌발상황에다가, 준비도 안되어있는 상황에서 이별을 고하는 연인의 입을 보며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며 대처를 할 수 있을까. 잡아도 보고, 빌어도 보고,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하겠지만 별반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별을 말 하는 쪽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을 지고 싶어하고, 그 동안 복잡했던 감정이 입 밖으로 나온 한 마디로 정리가 확실히 된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이별을 고했던, 이별을 통보받았던 두 사람 모두 유쾌한 기분일리는 없다. 물론, 전남친, 전여친에게 폭행, 사기, 절도, 공갈, 불륜(바람) 등등 범죄 또는 인간적 배신에 해당하는 일들을 겪고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조차도 안타깝지만, 사람의 기억은 그리 약하지가 않다.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약이 이미 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자신의 뇌에 이 부분은 지워, 생각하지마 라고 말하고 명령을 해 봐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모순되게도 그 생각을 지우려고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기억은 점점 또렷해지고 창고에 밖혀 있던 기억들까지도 끄집어 내게 해준다.-고맙게도 말이다- 내 머리에 들어있는 뇌라는 것은 절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린시절 악몽같았던 기억이나, 군대시절의 기억들이 기억이 나는가? 지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가끔은 그 시간이, 순간들이 행복하기도 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린시절 학교는 끔찍한 공간 중에 하나였다. 숨막히는 교실에서 학우들과 함께 하기도 싫은 공부를 12년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선생님들에게 혼나고 맞고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던 기억조차도 아름답게 포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침 8시에 나가 밤 10시에 들어오는 생활에 대한 그리음, 아 그 아름다웠던 학창시절이여 하는 것 말이다. 대부분의 기억은 그렇게 재포장이 된다. 연인사이의 기억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별 직후에는 그 사람에 대한 안좋은 기억, 안 좋은 성격들만이 기억이 나기 마련이다. 특히 이별을 고한 쪽에서 심할지 모르겠다. 이별을 통보받은 쪽에서는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더 많이 떠 올린다.
질문이 생긴다, 둘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한 쪽은 나쁜 기억만, 한 쪽은 행복했던 기억만 가질 수 있을가?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는 아름다운 기억만 떠올리게 될 확률이 크다. 범죄에 가까운 행동이나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게 한 연인들은 제외 하도록 하자. 짧게 말하자면, 결국 후폭퐁이라는 건 누구나 겪게 되지 않나 싶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예전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떠 올릴 때가 생긴다.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보통 몇 명이나 안 좋았던 기억, 슬펐던 기억을 떠올릴까? 기억을 지울 수 없는 한, 사람은 과거의 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뇌를 완벽하게 조종할 능력이 없는 이상 보통은 과거에 대한 추억, 기억을 상기하게 되어있다. 그 기억과 추억을 떠 올렸을 때 생기는 그 복잡 미묘한 아련한 감정을 후폭풍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되는 듯 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과거의 잔인했던 기억을 지우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없다면 아마도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 찾기 힘들어 지게 될 것이다.
후폭풍은 이별을 경험한-통보 받은 쪽, 고한 쪽 모두-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어있다. 각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크기, 그 복잡성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 사람이-나와 함께 했었던 사람이-후폭풍을 겪는게 의미가 있는 일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 사람이 후폭풍을 겪으며 다른 여자,남자와 희희덕 거리며 새로운 사랑을 말하거나, 방안에 주저앉아 소주 한 잔을 기울인다고 한들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해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심리인 것일까? 아파하는 만큼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 인 것일까? 하지만 어찌 알겠는가 실제로 아파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 날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이별 한 뒤에 힘들었냐고 물어보고 전화를 끊을 건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그럴 정도의 행동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더 이상 상대방이 이별의 후폭풍 때문에 힘들어 하던 아니던 신경쓰지 않을 단계가 된 것이라고 보인다. 더 이상 서로의 기억과 추억을 신경쓰지 않고 현재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없는 편한한 단계를 맞이했을 확률이 높다.
이별을 고한 사람이 나와 함께 한 순간을 기억하고 잊지 못 하고 그리워하며 힘들어 한다고 해도 양쪽의 인생에 가져 올 큰 변화는 없다. 어느 한 쪽이 먼저 전화를 걸어 다시 함께 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니 전남친이, 전여친이 후폭풍을 겪는지 신경쓰기 보다는 지금 현재 본인이 겪고 있는 후폭풍에 대해 먼저 신경을 쓰는게 더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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