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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정치

달라지고 있는 안산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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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학부모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 사건의 여파와 슬픔이 대한민국의 다른 어디보다 더 뼈저리게 다가오는 도시가 안산이기 때문이리라. 고3을 둔 학부모도, 초등학생을 둔 학무보도 더 이상 성적이 문제가 아닌 아이들의 행복이 더 우선이 된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로 성적을 낮게 받아와도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 학부모는 이야기 했다. 근래에 들어 안산 놀이터에 아이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고 주민들이 말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고 성인이 되어 둥지를 떠나기 전까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했으면 한다고 기사에서 밝히고 있다. 



결혼을 앞 둔 예비 부모들 또한 교육관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고 결혼을 앞 둔 20-30대 예비 학부모들의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6.25이래,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미명아래, 서러우면 출세해야 된다는 절대진리 앞에서 우리가 만들고 이끌어 온 교육의 한계가 들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심지어는 12시까지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 꿈을 이루기 위해선 원하는 공부가 아닌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되고, 좋은 대학에 가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삶보다는 남들이 짜 놓은 경쟁의 틀 속에서 정해진 공부만 해야되는, 친구도 경쟁상대 중에 한 명이라고 가르쳐 온 대한민국의 교육이 잘 못 됐다는 것을 이제는 진심으로 느껴야 될 때가 아닌가 한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선, 남들보다 나은 성적을 위해선 4시간 자며 공부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권해지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나라, 아, 대한민국...





경제 협력과 개발이라는 단체에서 65개의 나라의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와 연구를 하였다. 성적과 행복에 대한 연구였는데 대한민국은 어느 위치를 점하고 있었을까? 대한민국인으로서 이 질문을 듣고 예상을 한다면 아마 10에 9의 예상은 정확히 맞추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성적은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있지만 성적 상위권 나라 속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들로 기록이 되고 있다. 




   가장 불행한 학생들 말이다. 하지만 성적도 한국보다 높은 싱가포르의 이야기는 다르다. 싱가포르가 어떤 교육 체제를 가지고 있고 어떤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한 마디로 딱 잘라 왜 우리는 싱가포르 처럼 하지 못 하는가 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당연히.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대한민국의 차이가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싱가포르와 전혀 비교하지 못 할 이유도 없다. 1990 년도만 해도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떠 오르는 네 마리의 용이었다. 경제개발도상국 중에 하나가 싱가포르 였던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네 마리 용 중 나머지 세 마리는 홍콩,대만 그리고 대한민국 이었다. 불과 20 년 전까지 말이다. 싱가포르도 무너져 가던 나라였고, 가난했던 나라였다. 잘 먹고 잘 살아야 된다, 나라의 부를 만들어야 된다는 똑같은 목표가 있던 나라이다. 하지만 시간이 20 년이 지나고 대한민국은 경제에서도 아이들이 행복함에서도 싱가포르에게 이기지 못 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중요한 것은, 경제는 둘 째치고라도 말이다, 지난 20 년간 대한민국은 아이들이 더 불행해진 반면 싱가포르의 아이들은 가장 행복해진 학생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불행함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언제 시작된지 알 수도 없는 야간자율학습은 여전히 고등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 두고 꿈을 이뤄야 한다는 허울 좋은 미명아래 아이들의 꿈을 잡아 먹고 있다. 언제 시작된지 알 수도 없는 야간자율학습, 대한민국에서 야간자율학습을 안 해본 사람을 찾기는 한국에서 김서방 못 찾기 보다 더 힘들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 이상은 경험해 봤을 야간자율학습, 이 단어를 그 어느 누구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떠 올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도, 학부도 우리가 겪었던 그 불행을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에게 권하고 강요한다. 내가 했으니까, 지금도 너의 다른 친구들도 하고 있으니까, 밑도 끝도 없이 우리가 한 것,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기에 해야 된다 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알지만 다른 도리가 없기에, 대한민국이 원래 그런 나라이기에 라는 핑계를 대며 불행을 유산으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넘겨주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만약, 내 아이만큼은 공부지옥 속에서 빼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다수의 학부모가 하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현상이 지속이 될까? 만약 선생님들이 야자를 하던 하지 않던 공부를 할 학생은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하지 않을 것 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인정 한다면 우리들의 인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지 말자거나, 공부의 중요성을 간과하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의 현상을 지속해야 되는 것일까? 각 개인의 행복은 개인이 찾아 나서야 한다, 누구도 거부 할 수 없는 진리다, 하지만 아이들의 행복은 어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실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도와주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의 힘과 지혜가 있을 때 아이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 관습과 규율로 감싸진 감옥에 아이들을 묶어 놓고는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너의 몫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정말 대한민국은 아이들이 아침 8시 일어나 학교를 가고 12시까지 공부해야 학생다운 것이고, 그 학생다움이야 말로 학생들이 누려야 할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절대 바꿀 수 없는 진리인 것일까?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어째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 하고 있는 것이며 그 학생들이 성인이 된 이 대한민국은 자살율이 그렇게도 높은 것일까. 세계적인 잣대로 비교를 해봐도 높은 성적을 얻고 있는 이 똑똑한 학생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건 어딘가가 분명 단단히 잘 못 된 것이고, 실패한 교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할 수 있다, 포기하지 말자' 라는 표어를 아이들 교실에만 걸어두고 언젠가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금 시간은 불행해도 좋다라는 논리를 언제까지 써 먹어야 되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가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도와줘야 한 다는 논리에는 '할 수 있다, 포기하지 말자' 표어를 써먹지 못 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불행한 학생들이 사는 나라, 자살율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에 하나라는 오명을 벗고자 노력하는 것과 - 여전히 다른 어느 것 보다 먹고 살기가 중요한 이 나라에서는 - 행복이란 단어는 사치로 남아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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