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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정치

밥벌이의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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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에 반해버렸다. 실은 처음 마주한 녀석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녀석의 진정한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꺼먼 남정네들과 그들의 몸에서 피어 오르는 짙은 땀냄새만이 가득한 육군 훈련소에서 녀석의 가치는 그렇게 재발견되었다. 녀석의 이름은 바로 초코파이. 사회에 있을 때에는 누가 사줘도 안 먹었을 과자 한 조각이 왜 그리 맛있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화장실 한 켠에 앉아서 숨겨두었던 초코파이를 베어 무는 순간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라던 152번 훈련병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초코파이에 대한 관심과 충성은 자연스레 초코파이를 나눠주는 손으로 옮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시 동년배였을 조교는, 초코파이를 나눠줄 권한을 가진 위대한 영도자처럼 보였다. 그가 가진 채찍은 얼차려요, 채찍질 다음에 건네는 당근은 초코파이였던 셈이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자, 나를 포함한 훈련병 대부분은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 마냥 단순해졌다. 조교의 명령에 잘 따르면 별 일은 없을 것이고 운이 좋다면 초코파이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반대로 명령 불복종은 곧 얼차려라는 깨달음 역시 얻었다. 어쩌면 그 괴롭던 PT체조 8번 보다도 더욱 본질적인 훈련이 그 작은 초코파이 하나에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국가는 나를 먹이고, 나는 충성을 다 한다.

 




이 간단한 진리는 비단 군대의 철조망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 헌신하면 헌신짝이 되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외쳐도 사랑은 변하며, 개천에서 나온 용을 만나면 개천으로 함께 빨려 들어갈 것을 경고하는 세상이다. 주면 받고, 받으면 준다. 이 정도 대칭성이면 상당히 공평하고 수긍할 만 하다 싶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파업이라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범죄와 동급에 놓이게 된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코레일이라는 안정적인 공기업에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직장인 평균을 상회하는 연봉을 받는 이들이 파업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일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파업의 주동자를 체포하겠다며 4,000 명이 넘는 경찰력을 투입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잘 먹여줬는데 감히.

 



하지만 세상이 어디 밥만 먹여주면 다 용서가 되는 것인지 의문이 남게 마련이다. 개가 주인을 물지 않는 이유는 주인이 밥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군생활을 열심히 한 까닭이 뭐라도 더 얻어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본인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싶어서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잘 먹이고 열심히 훈련시킨 경찰들을 투입하기에 앞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려는 과정을 거쳐 신뢰를 쌓는 일이 아무래도 먼저가 되었어야 한다. 하기야, 인스턴트 커피 두 박스를 훔쳐 나가려 했던 의경들의 실태를 생각해보면 제대로 먹이는 과정도 거치지 않은 모양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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