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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정치

가족같은 회사의 가족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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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의 사실 하나.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결코 11명으로는 이길 수 없는 스포츠가 축구이기도 하다. 드넓은 그라운드 위에서 11명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약속된 플레이가 있어야 하며 또 그를 실제로 몸에 익히는 과정 역시 필요로 한다. 감독과 코칭 스태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은 훈련장에서 다양한 전술을 실험하고 토의를 거쳐 베스트 일레븐을 선발한다. 승리하고 성공할 때의 스포트라이트는 선수들에게 먼저 돌아가지만 패배하고 실패할 때의 책임은 감독에게 가장 무겁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일종의 가장인 셈이다.

 

그 대신 감독이 그 자리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진다. Coach에서 Manager로 감독의 명칭이 변경되어가는 요즘의 분위기가 이를 증명한다. 단순히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그들이 뛸 때 전술적인 측면에만 집중하는 이가 Coach라면, 선수들의 계약과 선발 등 선수단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이가 Manager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감독의 권한이 막강해질 수록 그에 따르는 책임도 커지고 선수들과 감독 사이의 인간적인 교류가 이어질 가능성 역시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제 감독을 아버지라 부르고 충성을 맹세하는 선수도, 망나니 같은 모습을 보이는 젊은 선수들을 인내와 설득으로 갱생시키는 감독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는 축구가 과거처럼 노동자들만의 놀이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팬들을 보유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변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축구를 축구로써 온전히 즐기는 것은 오직 팬들의 몫이다. 선수들과 감독을 구단과 한 데로 묶여 있는 까닭은 그들이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용역 제공과 대가 지불이라는 근대적 계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팬들이야 선수와 감독들이 하나로 뭉쳐 팀을 리그 순위표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주길 바라겠지만 축구가 직업인 이들에게 그보다 우선되는 것은 자신의 안녕과 안정적인 주급 지불일 것이다. 평생 축구 선수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더욱 높은 주급과 명성을 찾아서 하위권 팀의 에이스가 빅클럽으로 이적하는 일은 이제 너무도 빈번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비난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서 떠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감독, 아니 사장이 우리 사회에는 존재하고 있지 않은지는 살펴 볼 일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이사회가 ‘수서발 KTX 법인 설립’안을 통과시키며 시작된 철도 파업 사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불과 닷새 만에 7,843 명의 노동자들이 코레일로부터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이후 최연혜 사장은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집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발표했다. 코레일과 노동자들의 관계 역시 구단과 축구선수들의 관계와 다를 것이 없다. 이런 근대적 관계에서 노동자의 파업은 법으로 보장된 협상의 수단이다. 사측 역시 법의 울타리 안에서 노동자들을 강제할 수단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스스로 부모를 자처하는 상급자의 언사 속에는 엄연히 실존하는 근로 계약을 떠나 자신과 노동자 사이의 신분 격차가 있다는 의도처럼 보일 수도 받아 들여 질 수 있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회사가 고용된 사원들을 실제로 가족 처럼 대우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부모가 일 시키는 대가로 봉급을 지불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밥줄을 자를 수 있겠는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라면 그저 사장으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도 부모의 역할을 맡고 싶거들랑,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담이나 떠올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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