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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주식&경제

게임산업을 거꾸로 가게 하는 사람들과 에듀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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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모순, 허무맹랑 이라는 소리는 이럴 때 한다. 한국의 게임산업이 번창과 발전을 거듭해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지금한국의 게임산업을 여전히 아이들의 코묻은 돈 때어먹는 불량식품제조 업자들로 취급한다. 비교가 불가능한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전 국민에 가까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그런 인프라의 성장과 동시에 성장 할 수 있었던 산업이 게임산업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발전하고 있는 산업에 대한 몇 몇 사람들의 시각은 좋지 않다. 20-30년 전 만화가 유행하던 시절 부모님들은 만화 볼 시간에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셨고 대한민국 정부는 검열이라는 말도 안되는 칼로 대한민국의 만화를 난도질 했다. 대한민국의 만화의 황금기였던 80년대와 90년대의 이야기다. 아이큐 점프가 있었고, 소년 챔프가 있던 시절 그리고 TV에서는 꼭 한국만화 한 두편이 방영을 하던 시절이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만화를 산업으로 보지 않았고 국가가 나서 키워야 될 산업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저급한 문화, 아이들의 뇌를 망치고 공부를 방해하는 그런 물건 따위로만 바라 볼 뿐이였다. 




그렇게 부모의 반대와 국가의 학대에 가까움 관심과 무관심이 한국 만화계를 죽여나갔지만 모순되게도 만화 시장은 커져만 갔다. 물론 그 시장을 채운건 대한민국의 만화와 만화영화가 아닌 미국발 디즈니 만화들과 일본의 만화책들이었다. 우리의 컨텐츠를 죽이고 얻은 것은 확대되어 가는 시장 속에 우리의 컨텐츠가 아닌 타국의 컨텐츠를 소비하는 형태를 만든 것이다. 만화를 보는 시각이 그랬다. 저급한 문화, 성인이 되면 멀리해야 될 유치한 문화로 규정짓고 아이들에게 만화를 보지 말라고 강권했던 사회가 만들어낸 모순 된 사회다. 여전히 아이들은 만화책을 읽고 만화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만화책을 읽는 사회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세상이 바뀌는데도 편협한 인식에 빠져 자국의 컨텐츠를 죽여버리는 행태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질 좋은 만화가 생산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보단 유치한 문화가 생산된다고 하여 고급의 문화가 싹 틀 수 없게 해 버린 결정은 누구의 결정이었을까. 




게임산업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성장하는 산업에는 언제나 문제가 따른다. 게임산업의 경우 아이들의 중독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게임에 중독되어 아이를 방치해 죽게 만든 부모, 게임에 빠져 집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과 패륜을 저지르는 아이들. 게임과 관련 된 사회 문제들이 게임에 대한 인식을 더욱 안 좋게 하고 있다. 사실이며 부정할 수 없다. 게임산업이 커짐에 있어 게임을 만드는 업자와 개발자들 중에는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더 뜯어 먹을려고 머리를 싸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게임산업이 성장함에 따라오는 부작용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만화산업이 어떻게 사장 되었는지를 고민해 보면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우리나라가 게임산업을 규제하고 게임산업을 국가의 주된 산업으로 인식하지 않아도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게임을 만들 것이고 공백이 생긴 우리나라에 수출을 할 것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게임을 할 것이고 어른들은 질 좋은 게임을 찾아 수입된 게임이라도 하게 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게임의 역기능만을 이야기 하는 건 절대 우리나라를 위해서 게임산업을 위해서 좋지 않다. 




영국은 초등학생때 부터 코딩을 가르치는 법을 통과 시켰다. 영국의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프로그램 개발을 기초적으로는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그 프로그램 개발에는 게임도 포함이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통부를 폐지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을 마약상에 비유하며 순진한 아이들을 게임에 중독시키고 코 묻은 돈을 때어먹는 사람들로 만들려고 한다. 정말 시대를 따르다 못 해 상상을 초월하는 궤변으로 게임산업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생각 했을 때 게임의 역기능을 생각한다면 제제와 규제가 어느정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순기능을 생각해 보자. 산업으로서의 순기능뿐만이 아닌 게임을 통한 교육도 가능하다는 순기능 말이다. 20년 전 PC 게임으로 유명했던 코에이사의 삼국지와 대항해시대를 생각해 보자. 이 두가지 게임을 통해 어렴풋이 삼국지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었고, 전 세계 지리에 대한 이해도를 가질 수 있었다. 교육용 게임이 아닌 재미를 위한 게임이였음은 명백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유비의 이야기를 배우고 대항해시절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문명이라는 게임과 심시티는 어떤가. 완벽한 역사를 배울 수는 없지만 세계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을 어느 정도 손에 얻을 수 있는 게임이 문명이고 심지어는 영문판을 하며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사람을 만든 게임이 문명이다. 심시티는 도시 건설에 있어 계획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통해 폭력성만이 오직 키울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소리다. 게임을 유치하고 마약으로 비유하며 제제를 하고 규제를 하는 것 보단 에듀테인먼트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 한국을 위해서도 게임산업을 위해서도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한다. 


 


부억칼도 자동차도 쓰는 사람에 따라 쓰이는 상황에 따라 극단적인 폭력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부억칼과 자동차를 자신들의 폭력성을 배출하기 위해 사용하지는 않는다. 요리를 하기 위해 먼 거리를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해 제대로 목적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현대 사회에서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도구이고 사이버상에서의 소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쌍팔년도 오락실에서 아이들의 호주머니를 탐하던 동네 나쁜 형들의 이미지와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와는 상관을 지을게 아니다. 세상은 21세기이며 게임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게임기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소비재 그 이상이다. 하나의 벗어 날 수 없는 문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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