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ity Life/인문사회

인권과 페미니즘-평등과 불평등

반응형

인류는 불평등을 타파하며 평등을 추구해왔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렇지만, 이 두 단어 중 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한 단어는 아마도 '평등'이 아닌 '불평등'이었을 것이다. 불평등이 언제부터 인류사회에 퍼지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보기에, 인류는 불평등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로 시간을 돌리려 또는 평등만이 존재하는 시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대다수는 평등과는 가까이, 불평등과는 멀리하고 싶어 한다. 



인류는 지난 몇 세기 간 종교, 정치, 학문 등을 기본으로 삼고, 이성과 감성을 토대로 수많은 이론과 사상, 교리를 통해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등과 불평등은 21세기 지금도 인류가 풀어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과거의 노력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다른 세상을 만들어 냈고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지식과 경험 위에서 엄청 더디어 보이지만, 불평등 없는 평등세상을 만들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째서 인류는 불평등을 혐오하고 평등을 이토록 추구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빈약한 대답은 아마도, 인류가 가진 평등 의지는 우리 안에 내재된 본능 어딘가에 끼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직관적으로 불평등은 확고한 인상을 주는 반면, 평등은 불확실한 인상을 심어준다. 불평등한 사회를 타파하자는 구호에 발작성 반응을 일으키고 이견과 여러 방법론을 내세우며 반대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에는 모두가 함박웃음으로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쌍심지를 켠 눈과 함께 불을 품은 입을 통해 다양한 이견들을 내뱉어지고 얽히고설켜 평등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한 혼란스러운 혼돈적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혼란스러운 논의가 시작된다면, 평등이라는 단어의 정의, 의미에 대한 선긋기, 공동체 합의 등등 고려해야 할 수 없이 많은 사항들이 평등으로 가는 길에 도사리게 될 것이다. 평등이 내포하고 있는 뜻이 어디서부터가 어디까지인지,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과 토론, 진정한 평등에 도달하기 위한 공동체 합의와 실천 등등, 불평등과는 달리 평등은 여러 제반 사항에 대한 선결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인다. 아마도 발언시간 분배, 좌석 안배부터 토론에 들어가기 전부터 평등에 대한 논의가 마른 산에 번개 떨어진 것처럼 불붙을 것이다. 


"불평등을 없애고 평등을 추구한다." 이 말을 듣는다면 아주 쉽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될 것처럼 직관적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평등과 평등은 반의어이면서도 정확한 대척점에 서있지 않아 보인다. 불평등을 완벽히 제거했다고 해서 온전한 평등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평등한 세상을 이루었다고 해서 불평등이 티끌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단어가 가진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될지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불평등을 제거해야 평등을 얻을 수 있는지, 평등을 얻어내면 불평등은 자연스레 제거되는가에 대해 말이다. 


평등과 불평등을 나누고자 함은 어찌 보면 말장난의 덫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천천히 살펴보자. 누군가에겐 불평등이 누군가에겐 평등으로 -반대의 경우로도-받아들여진다. 인권과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이 인류와 남녀의 평등이라면 평등함을 얻어내고 유지하기 위해 불평등과 평등은 구분 지어져야 한다. 


극단적 평등은 불평등을 낳을 수 있고, 적절한 불평등은 균형 잡힌 평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