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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인문사회

나치와 일본의 통치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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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유럽에서 그리고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해 나갔다. 영국,프랑스, 그리고 미국은 이미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동남아시아 지역에 거대한 제국을 일구어 논 상태였지만 늦은 산업화로 인해 독일과 일본은 그럴 여건이 되지 못 했다. 독일은 산업화와 국가의 통일로 인해 거대한 힘을 거머쥐게 되었고 1차대전에 참가하여 유럽에 거대한 전화에 한 몫하게 된다. 하지만 독일은 패했고 길고도 긴 피폐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19세기 말, 일본은 서구열강들의 강제에 가까운 개방요구에 굴욕을 맛 보며 자신들의 문호를 개방했다. 하지만 그들은 빠른 시간 동안 자신들의 국력을 키웠고 서구열강들이 행했던 방식으로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욕을 가지게 된다. 



나치가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는, 독일인들의 보호자로서 자신들을 자칭하기 시작하면서다. 진정한 애국을 위한 정치단체로서 독일을 더욱 강력하고 부강한 나라로 발전시키겠다는 정치공략을 내건다. 독일인들의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면서 그들의 수장인 아돌프 히틀러를 신격화 시키는 작업을 한다. 쓰러져 가는 독일의 구세주로서 보이도록 후광효과를 더하고, 그의 말에 찬동하는 사람들을 나치당으로 받아들이며 세를 불려 나간다. 주도면밀한 계획과 치밀한 전략 그리고 부국강병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의 애국심을 자극하여 나치의 지지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의 전략은 정확히 들어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를 구원자로서 인식시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악당이 필요했다, 선과 악, 흑과 백, 악당이 있을때야 말로 구원자의 힘이 더 큰 빛을 발휘하게 된다. 그들은 첫 번째 적으로서 유대인을 꼽았다. 당시 유럽에서 천대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 선입견, 그리고 적대심을 극대화 시키는 노력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격적 그리고 본능적 단점을 단지 유대인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포장하고 그들 야욕과 욕심 때문에 유럽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논리를 펼쳐 나간다. 나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독일인들이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도록 유도했고 그들의 적개심이 극에 달하도록 노력했다. 결국 유대인들은 게토에 갖히고 그들이 살아온 터전을 빼앗기게 된다. 아무도 유대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낼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유대인들의 가슴에 다비드의 별을 붙이고 그들과 독일인들은 완전히 다른 종족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정통 아리아인과 더러운 유대인은 함께 할 수 없다는 선입견과 편견을 확대 재생산 한다. 





하지만 이 확대재생산된 적개심과 편견 그리고 차별은 유대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치에 반기를 들거나 동조하지 않는 사람, 동성애, 폴란드인, 집시, 장애인 등과 같은 독일과 유럽사회의 소수들에게도 똑같은 별을 달아주고는 수용소에 가두어 버린다. 나치는 순수 아리아인만이 정통성을 지니며 그 외의 사람들은 아리라인보다 하등계층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들의 확대재생산된 편견과 적개심은 여기서도 그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혹한 짐을 씌운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공산주의가 들어선 소련으로 확장된다. 그들의 적은 내부에서 외부까지 퍼지게 된다. 나치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 초반 나치의 군대는 승승장구하게 되고 1차대전 이후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빠져있던 독일인들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지게 된다. 차별과 학살 그리고 전쟁이 모두 나치정권 아래 합법적인 수순을 밟고 일어나게 된다. 사람들을 내에 갈등을 조장하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 너아니면 나, 우리는 없는 체제를 성공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너가 아니면 나라는 인식은 나치당에 속한 사람 또는 속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고, 나치당에 속할 수 있던 사람들은 다수가 되어 소수들이 받는 핍박을 의식/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나치당에 충성을 바치게 된다.






19세기 후반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국력을 키워나갈 때 조선을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본의 지배층 내에서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아직 일본에게는 조선을 칠 힘은 있었지만 서구 열강들에게 대항할 충부한 힘은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섣불리 조선을 공격했다가는 서구열강들이 전쟁에 개입할 명분을 줄수도 있다는 판단 또한 함께 하고 있었다. 유럽과 미국에 퍼져 있던 일본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조선침략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세웠고 일본의 조선침략설은 가라 앉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일본은 충분히 준비를 거치고 조선의 문을 자신들이 당한 방법으로 똑같이 두드리고 강제로 열게 한다. 차근차근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던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자신감에 차서는 조선에 대한 야욕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일본은 자신들을 조선을 청의 속국에서 독립시켜준 나라, 서구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내 줄 수호자로 자처한다. 당연히 일본은 힘으로 조선을 병합하려 한 것이지만, 그들의 명분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조선을 서구제국으로부터 지켜낸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무력을 가지고 국제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일을 자행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미 외교적으로 다른 국가들과 합의를 본 상태였다. 일본에겐 서구열강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서구열광과 협상을 진행하고 타결할 수 있는 외교력과 교환할 먹이가 있었다. 





교묘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명분을 내세운 일본은 조선을 점령했고. 조선통치의 첫 번째 원칙은 조선인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이었다. 조선이들이 가지는 적개심을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못 하게 자신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자신들의 통치력을 강화 시키는 것이었다. 조선에 들어선 조선총독부는 칼과 총으로 자신들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투옥하여 고문하고 죽여 나갔다. 그리고 독립을 외치고 일본에게 반항하는 사람들을 불량선인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조선인으로서 대한인으로서 조국의 독립을 원하거나 독립단체를 후원하는 자, 그리고 일본인을 폭행하거나 일본인을 상대로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을 불량선인으로 부르며 탄압한 것이다. 일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조선의 역사서들을 불태우고 변형되고 삐뚫어진 역사를 창조해 나간다. 조선인들이 가지고 있는 적개심을 자신들이 아닌 조선의 마지막 조정으로 돌리게 했고 역사에 대한 옳바르지 않은 인식으로 조선인들이 가지는 정체성에 혼란을 주려고 했다. 조선이 망한 것은 일본이 무력으로 점령했기 때문이 아닌 조선조정이 썩고 문드러졌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퍼트린다. 한마디로 조선의 적은 일본이 아닌 조선 그 자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자신들이야 말로 조선사람들을 무능력한 정부로부터 구해내고, 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더 나아가 침탈의 야욕을 가진 서구제국으로부터 구해냈다는 논리를 펴 나간 것이다. 그렇게 침략자에서 구원자로 자신들을 세탁하고 이러한 인식이 지식인과 민간인들에게 퍼질 수 있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불법과 비도덕적 행동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과 재산을 바쳤지만 반대로 일본의 힘에 눌려 자의 또는 타의로 조선총독부에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게 된다. 조선인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서로 적개심을 갖고 싸우게 만든 것이다. 친일악질 순사들 중에 많은 조선인들이 끼어있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이 두 나라의 악질적인 통치는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시키고,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힘이 없는 소수의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 들이고,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서 낙인 찍고 일그러진 탈을 씌우고는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과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못 하게 한 뒤 탄압,차별 그리고 비판에 동참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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