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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웹소설

인류 대멸절 이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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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멸절이라는 말을 비웃었다. 한국의 한 과학자가 세상에 외쳤지만 아무도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과학자의 방송을 구독자하는 사람들만큼은 열심히 들어줬지만 세상의 인식을 바꾸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과학자의 구독자들은 도네이션이나 좋아요 그리고 댓글을 다는 행위로 과학자의 열변에 보답해주었다. 과학자는 주장하고 또 주장했다. 인류는 절멸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번 대절멸은 인류를 지구에서 쓸어 버릴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는 미래의 이야기다. 99억에서 멈춰선 인류는 자연재앙이 자신들의 탓이라며 지구를 살리고 싶어했지만 세상은 아니 지구는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구는 인간 없이도 태양을 도는데 아무 제약이 없었다. 과학자는 마지막이라며 자신의 구독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이 과학자는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 했다.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대학의 교수도 아니었고 학계에서 힘 좀 쓸 만큼의 경력과 인맥도 없었던 이 과학자는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더 이상 존재감은 내세우지 않았다. 구독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소문이 돌았으나 CIA 납치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누구는 일루미나티까지 언급을 했지만 비주류 의견으로 취급받았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한 이래 이런 지구의 변화는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누구도 겪어 본 적 없는 환경을 지구가 제공해 준 것이다. 대멸절이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 했다. 지구가 차가워지는 듯 하다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곤충들이 사라졌고 풀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어떤 사업가는 자신이 만든 비료만 있으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은 이 사업가를 비추었고 실제로 이 사업가의 비료는 죽어가는 곡물과 작물들을 소생시켰다. 그가 설립한 회사의 주식은 상승에 상승을 거듭했고 모두가 고점이라고 말 할 때도 그런 평가를 비웃듯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시총을 찍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료의 힘은 오래가지 않았다. 땅이 문제가 아니라 태양이 문제였다. 태양은 지구를 꾸준히 달구었고 곡물은 타 죽어갔다. 아비규환이 현실이 됐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흔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일도 벌어졌다. 물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보다 힘들었다. 가끔 내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만찬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석학도 박사도 과학자도 이유를 밝혀내지 못 했다. 이유가 없었다. 많은 이론들이 오고 갔고 해결책이 제시됐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공룡 다음으로 인간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인류는 반성했고 온갖 신에게 자비를 기도했다. 기도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신에게 호통치며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렇게 인류는 대멸절은 맞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대멸절의 시간이 흘렀고 지구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지구는 여전히 태양을 중심으로 돌았고 태양을 도는 지구의 주변을 달이 돌고 있었다. 그 과학자의 주장은 정확히 들어 맞았다. 한가지만 빼고. 인류는 살아남았다. 99억에 달했던 인류는 살아남았고 여전히 지구를 활보했다. 다만 지구 위, 남은 땅에 돌아 다니는 인구가 통틀어 총 1억 미만이었다. 98억이 사라졌고 그 중에 1억이 남았다.

1억이라하면 남북한 인구가 합쳐서 대략 75백만 정도된다. 인구밀집도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확연하게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말 그대로 학교 운동장에 혼자 남은 기분을 지구 위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인구밀집도였다. 더 안타깝게도 인류는 1억미만의 인구에서 다시 번창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역사를 지구 위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인류는 대멸절을 겪은 이후로도 바뀌는게 없었다. 들판의 나무를 베러 다녔고 과일을 채집하고 동물을 사냥하며 서로를 싫어하고 때려죽이지 못 해 안달이 나있었다. 다행인 것은 총이니 핵이니 폭탄이니 비행기니 인간을 한 번에 대량학살 할 수 있는 무기들이 없었다. 과학도 없었다. 과학이라 하면 철을 제련할 수 있는 수준의 과학력이었다.

 

김원석의 집은 동산 위에 있었다. 평화롭게 들풀을 씹으며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마을 농사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젊은이들이 모여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말은 옹기종기 했다. 마을 인원을 다 합쳐 봐야 50명이 넘지 않았다. 누가 이 마을을 시작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정선 김씨 40대 종손 김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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