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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웹소설

아포칼립스 시대의 헌터마스터 김판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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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만큼 똑똑 했지만 예측된 미래를 현실로 만들만큼 멍청했다. 누군가는 러시아가 시작했다 다른 누군가는 미국이 시작했다. 아니다 누군가는 중국이 시작했다. 또 또 다른 누군가는 프랑스가 시작했다라고 했다.

 

아니다 그건 설에 불과하고 사실은 파키스탄과 인도가 시작했다고도 한다. 다른 어딘가에선 결국 이스라엘과 이란이 터지고야 만 것이라고도 했다. 그 와중에 어느 나라의 김씨는 끝까지 눈치를 보다 호주에 핵을 날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왜 호주인지는 이야기를 해준 사람도 설명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이런 더러운 꼴이 일어나기 전 이미 화성으로 떠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죽어간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굳이 서로 더 먹겠다고 싸우지 않았어도 될만큼 기술은 발전하고 있었음에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한 두 지도자의 판단으로 인류문명은 리셋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민주주의 사회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뽑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가 쏘았던 각 나라의 지도자들은 핵을 쏠 수 밖에 없었고 탁구공 날라 다니듯 핵미사일들이 대륙을 넘어 다녔다. 며칠 가지도 않았다. 일주일도 체 지나지 않아 전쟁을 시작한 지도부들은 인류의 끝을 목격하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과 전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후회하며 목을 매기도 했고 누군가는 권총을 입에 넣기도 했다. 물론 뻔뻔한 부류는 이미 파놓은 벙커에서 참치캔을 뜯어 먹으며 다가올 다음 세상에 대한 정치적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핵겨울이 찾아왔고 이미 핵탄두로 인해 수 십억의 인류가 죽어 나간 상황에서 인류의 절반 이상이 갈려 나갔다. 그렇게 걱정하던 지구의 온도는 하강하기 시작했고 적정 온도를 넘어 빙하기에 준하는 온도까지 넘나들며 인류에게 강력한 추위를 선사해주었다.

 

빙하기는 대륙과 대륙의 바다를 얼리며 도보로 대륙을 이동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천연 얼음 다리를 건널 사람이 없었다. 만약 인류가 핵전쟁을 하지 않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최초로 러시아와 알래스카를 도보로 건넌 탐험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을텐데 말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핵전쟁보다 더 무서운 빙하기가 닥쳤음에도 인류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소형핵원자로가 기술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전력의 보고였다. 누가 그랬던가 핵으로 망한자 핵으로 흥하리라. 인류는 지하에서 올라와 방사능으로 가득한 표면으로 올라왔다. 올라 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지하철이나 기타 지하시설로 숨었던 사람들이었다. 국가에서 만들어 논 다량의 벙커에 들어간 사람들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안전하게 버틸 수 있었기에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재건의 기미가 보이자 사람들은 다시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사회를 만들어 나갔다. 모두가 희망에 가득했고 인류문명의 초석을 자신들이 세운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사능을 이길만한 강한 인간은 몇 명되지 않았다.

 

핵전쟁에 핵겨울까지 견뎌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질병에 걸려 사망해 나갔다. 여기서도 또 절반 이상이 갈려 나가며 인류의 재건은 속도를 내지 못 했다.

 

그 와 중에 또 소형원자로모듈을 차지하겠다고 자기들끼리 맨몸과 맨주먹으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상남자의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다시 여기서 지하철과 기타 지하시설로 넘어간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로 갈라지게 되었다. 지상인과 지하인이 구분되는 시점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마지막 핵탄두가 터진 이래 지금까지 약 35년은 족히 넘게 지났을 것이다. 어쩌다 저쩌다 나는 지상인 마을에서 살고 있고 혹독한 겨울만 빼면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에 살고 있다. 지상인과 지하인의 싸움에서 지상인들은 도시를 떠나 농경지로 거처를 옮겼다. 지상으로 올라 온 사람들도 북으로 가야 한다 파와 남으로 가야 한다 파가 나뉘었다.

남으로 간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러 장점들을 나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남쪽에는 많은 발전소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꺼려했다. 남으로 간 소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뒤로 소식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북으로 넘어간 사람들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지뢰밭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그 수 많은

인류를 몰살 시킨 전쟁과 자연재해를 이겨내고 견뎌낸 사람들도 또 다른 불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떨어진 사람부터 주먹보다 작은 지뢰를 밟아 죽은 사람까지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흙으로 돌아갔다.

 

고라니를 겨눴다. 고라니는 성체가 2m는 족히 넘는다. 굉장히 예민하고 멍청한 동물이지만 사냥

은 그리 쉽지 않다. 고라니는 그 잔혹했던 핵전쟁도 황량하고 추웠던 핵겨울도 살아 냈고 산과 들에서 번영을 누렸다.

그런 고라니의 심장에 김판섭씨의 K-2M에서 발사된 총탄이 날아와 박혔다.

예쓰!”

김판섭씨는 쾌재를 불렀다. 푸다다다닥

옆에 붙어 있던 새끼 고라니가 놀라하며 바로 숲으로 사라졌다.

김판섭씨의 4배율 스코프로 어미 고라니와 새끼 고라니를 모두 확인했었다. 김판섭씨의 선택은 어미 고라니였다.

김판섭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길리수트를 털털 털어냈다. 피를 흘리며 죽은 고라니에게 다가간 김판섭씨는 KCB-77 대검으로 능숙하게 고라니의 내장을 덜고 목을 걷어냈다. 고라니의 피와 내장은 도무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냄새를 풍겼으므로 빠르게 제거를 해야 한다.

담배라도 있었으면 피가 빠지는 동안 담배라도 피웠겠지만 김판섭씨에게는 담배가 없었다. 왜냐면 핵겨울로 인구의 90% 이상이 갈려 나가면서 담배를 만들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멀쩡히 남아있는 담배공장이 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김판섭씨는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의 일과를 끝냈기 때문이다. 마을로 돌아가면 환대와 환호를 받고 집에 들어가 편히 쉴 수 있었다.

고라니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마을로 돌아온 김판섭씨는 빠르게 샤워를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갈 생각에 기분이 매우 들떠 있었다.

마을의 요리사에게 고라니를 넘기고 집에 돌아가 샤워를 마친 김판섭씨의 입에서는 콧노래가 줄줄 흘러 나왔다.

듬착착 듬착착.”

하지만 예상은 언제나 항상 보기좋게 벗어나는 법.

김판섭씨의 판자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똑똑독

김판섭씨의 미간이 매우 미세하게 찌그러졌다.

누구세요?”

날 쎄. 김이장.”

김이장이라는 소리에 미간이 조금 더 찌그러졌다.

네 이장님. 들어오세요.”

이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있잖나 김군.”

네 말씀하세요. 이장님.”

옷 좀 입고 말하면 안되겠나?”

. 하하 제 정신 좀 보십시요. 제가 자꾸 예의를 까먹고 사네요.”

김판섭은 주섬주섬 옷을 갖춰입었다. 김판섭씨가 옷을 입는 동안 이장은 탁자 옆 의자에 앉았다.

허허허. 옷을 입으니 한 결 보기 편하구만 그래.”

. 하하하.” 김판섭씨가 겸연쩍게 웃었다.

그 다름이 아니고 내가 자네한테 마을을 위해 부탁할게 있네.”

김판섭씨는 최대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마을을 위한 부탁이라 함은 보통 마을을 떠나 힘든 일을 해야 될 때가 많아서다. 일전에도 김이장이 마을을 위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늑대를 잡으러 간 적도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늑대 무리들이 마을의 소를 물어 죽이는게 아닌가. K-2m 한자루, 권총 글록 19KCB-77만을 들고 늑대 사냥을 나섰어야 했다. 거의 뭐 죽을 뻔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투를 끝내고서야 마을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적어도 1주일은 걸렸던 것 같다.

. 말씀해 보세요.”

어차피 김판섭씨는 선택권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뭔가 쉬운 임무면 좋지 않을까 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 했다.

그게. 말일세. 자네도 알지만 우리가 물이 좀 부족하네. 옆 마을에 소형담수기가 필요하네.”

소형담수기요?”

그렇지. 그거 말 일세.”

그걸 어디서 구하죠?”

글쎄. 그걸 나도 알았으면 좋겠네만, 내가 가 본 곳이라고는 옆 마을 뿐이라서..”

그럼 위치도 제가 찾아내고, 들고 오는 것도 제가 들고 오는 건가요?”

정확히 그렇네.”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김판섭씨가 매우 의뭉스럽다는 표정으로 김이장을 쳐다보았다.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김이장은 차마 김판섭씨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네는 제 2대 헌터마스터가 아닌가?”

? 제가요? 저는 제가 헌터마스터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자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네가 이제 마을을 위해 사냥도 해주고 가끔 옆 마을에 다녀오기도 하고 그러지 않았나. 게다가 자네 할아버지 유언도 그러했고. 흠흠. 크흠.” 김이장은 당황 했을 때 마른기침 멈추지 못 하는 습관이 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헌터마스터셨다. 누가 지은 칭호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할아버지는 본인 스스로가 헌터마스터라 칭하며 그 칭호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마을에 대소사는 할아버지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 할아버지 밑에서 사냥, 싸움, 잡일, 전자기기 고치기, 물 떠나르기 등등 안 해 본게 없었다. 할아버지는 체력이 국력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시며 혹독하게 김판섭씨를 훈련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지도와 김판섭씨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할아버지의 모든 것을 습득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눈을 감으며 김판섭씨에게 이제 네가 헌터마스터의 정신을 잇도록 하라는 유언도 남기셨었다.

내 이렇게 부탁함세. 자네 아니면 갈 사람이 도무지 없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제가 어쩔 수가 없지요. 이장님.”

역시 자네는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지. 할아버지를 닮아 정말 남자 중에 남자구만. 하하하하.”

그럼. 한 다음 주 중에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크흠.”

김이장의 눈이 45도 깔리며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이게 시급한 일이라서…”

그럼 5일 뒤에 떠나겠습니다.”

크흠..”

“4일 뒤?”

크흠..”

“3?”

흠흠.”

내일?”

크흠..”

지금요?”

자네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정말 온 마을이 자네의 결정에 큰 감복을 할 걸세.”

아니. 이장님 지금이라 하시면 이제 좀 있으면 해도 중천이고.”

시간이 필요한 건 알겠네만 이게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보니. 점점 마실 물이 없다고 마을 주민들이 불평이 이만 저만이 아닐세. 자네도 잘 알겠지만 이장의 임무가 무엇인가. 마을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선 입에 뭘 좀 넣어주고 해야 내 말빨이 서기도 하고 위신도 서고 할텐데. 이게 물이 부족해지니 마을의 평화와 안전이 점점 무너져가고 있네. 이렇게 가면 전부 옆 마을로 이사가거나 물 찾아서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나올 판이네.”

그럼…”

김판섭의 눈은 갈 곳을 잃고 천장으로 향했다.

.”

크흠..크흠..”

김이장은 45도로 깐 눈을 잠깐씩 들어 김판섭씨의 눈치를 살폈다.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 하겠습니다.”

허허허. 역시 제 2대 헌터마스터로 구만 그려! 내 지금 우리마을 동창리 주민들에게 이 즐거운 경사를 알리도록 하겠네. 우리 마을의 미래는 제 2대 헌터마스터 김판섭 자네에게 달렸네.

허허허.”

김이장은 아주 흐믓한 미소로 집을 나섰다.

김판섭씨는 한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뱉었다.

후우..”

짐을 빠르게 쌌다. , 총알, 정수필터, 썬그라스, , 마체테, 텐트 등등 대략 25-30kg은 족히 나갈 법한 군장이었다. 하지만 마을을 떠난 다는 건 목숨을 건 행위, 대충 준비헤서는 안 될 문제였다. 신중을 고려해 김판섭씨는 짐을 꾸렸다.

준비 됐습니다. 이장님.”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주시게. 어이 김두열이 거기 사람들 한테 어서 모이라고 말 좀 전하게.”

짐을 지고 지나가던 김두열이 짐을 내려 놓고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이고, 여부가 있을깝쇼 이장 나으리.”

두열은 부리나케 뛰어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모았다.

대략 10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저기 박씨네 아줌마는 어디계셔?”

무슨 일이랴, 무슨 일이여?”

웅성 웅성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기 판섭군 이리 앞으로 나오게.”

김판섭씨는 사람들 앞에 서는게 언제나 쑥쓰럽고 부끄러웠다. 늑대와 싸울 때도 당당함을 한 번도 잃지 않은 김판섭씨였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죽을만큼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하던 성아선도 나와 있었다.

아아. 마을 여러분. 여기 우리 마을의 제 2대 헌터마스터 김판섭씨가 우리 마을의 미래를 위해 이제 떠나기로 했습니다.”

무슨 죄를 져서 떠나는 겁니까?”

김이장 옆집 사는 강원석씨가 물었다.

아 죄를 지어서 떠나는게 아니고 이제 그 우리의 먹고 있던 지하수가 이제 고갈이 되가는 것 같아서, 요 앞에 있는 바닷물을 이제 담수화 할 수 있는 기계를 찾으러 떠나는 겁니다.”

담수화요? 그게 뭐당가요?”

강원석씨의 친구이자 뒷 뒷 옆 집에 사는 성관식 씨가 질문해 왔다.

그 뭐 바다물을 식수로 바꿔주는 기계가 있소. 뭐 그런게 있는데 여기 우리 제 2대 김판섭 아니 헌터마스터 김판섭군이 우리를 위해 마을을 떠나 기계를 찾아 올거요.”

김필진씨가 손을 들었으나 김이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손을 곧 내렸다.

그 말을 길게 할 수는 없고. 자 판섭군 한마디 허시게.”

?”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판섭씨의 얼굴에 가서 꽂혔다. 얼굴이 홍당무보다 더 빨개져서는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김판섭씨는 매우 붉은 얼굴로 기어들어가듯 대답했다.

자 박수!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김판섭 씨에게 박수!”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판섭을 응원했다. 응원소리가 잦아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시 김판섭씨를 쳐다 보았다. 정적이 흘렀다.

삐줏삐줏 거리며 김판섭씨는 사람들을 쳐다 보고는 말했다.

저 다녀 오겠습니다.

그래. 몸 성히 다녀오시게.”

웅성웅성

사람들은 조금씩 삼삼오오 모여 흩어지기 시작했다. 성아선도 돌아서 무리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김판섭씨는 무거운 군장을 메고는 성아선에게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

매우 작은 목소리로 성아선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김판섭씨의 어깨를 누군가 잡았다.

김판섭군 그 마을을 떠나는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시간이 촉박 할 세.”

김이장의 말을 듣고 성아선이 고개를 돌렸다. 김판섭씨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마자 빠르게 고개를 돌린 김판섭씨는 매우 씩씩하게 대답했다.

맞겨만 주십시오!”

성아선에게는 결국 제대로 말도 못 걸어 보고 그렇게 힘차게 마을을 벗어난 김판섭씨였다.

 

다음 마을까지는 산을 넘어가야 한다. 하룻밤 안에 넘어 갈 수도 있는 거리지만 잠을 자지 않고 꼬박 걸어야 한다.  

 

김판섭씨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시간에 맞추어 쉬는 시간도 꼬박꼬박 쉬었다. 체력이 조금 남아 돈다 하여 쉬지 않고 걸으면 결국 속도가 줄기 때문이다.

 

해가 뉘엇 뉘엇 산을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 때 김판섭씨 앞에 반바지에 반팔을 입은 여자가 길가에 주저 앉아 있었다. 아무리 날씨가 덥다지만 거의 속옷에 가까운 차림이라니 김판섭씨는 최대한 눈을 맞추지 않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11시 방향의 그녀가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기요.”

김판섭이 어느 정도 다가오자 아가씨가 말을 걸어왔다.

?”

김판섭씨는 당황했다.

제가 발목을 접질려서 그런데요.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사례는 톡톡히 해드릴게요.”

사례요?”

군장을 잡고 있던 김판섭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꾸욱.

발이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요.”

흑발의 긴생머리를 넘기며 여자가 말을 이어갔다. 그 때 김판섭씨의 눈에 땀이 송글거리는 여성의 목이 눈에 들어왔다.

 

김판섭씨는 망설였다. 할아버지에게 수도 없이 들은 말이 이 세계에서 살아 남으려면 남을 믿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김판섭씨는 그런 할아버지가 해주었던 여자에게는 항상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야한다.” 라는 할아버지의 충고가 먼저 생각났다. 김판섭씨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심호흡이 매우 거칠어졌으나 김판섭씨는 자신이 긴장하고 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거칠게 나오는 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잠시만요.”

간신히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발목을 잡았다. 

발목을 보아하니 그리 크게 다치진 않았다. 붕대를 꺼내 들고는 여성의 발목에 정성스레 묶어 주었다.

너무 너무 감사해요.”

한 번 일어서 보시겠어요.”

김판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의 손을 잡아 주었다.

여자는 김판섭씨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며 포옹을 해왔다.

진짜 진짜 감사해요.”

 

김판섭씨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흠흠. 아닙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어디까지 가시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아 네 저는 이 쪽으로 가면 있는 마을에 가는 중 입니다.”

아 그러세요? 저 그 마을에서 왔어요!”

그러시군요. 흠흠.”

김판섭씨는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 했다.

저 같이 가실까요?”

네 그러시죠. 제가 가면서 도와 드릴게요.”

여자의 제안을 바로 바로 받아들이는 김판섭씨였다.

할아버지의 사람을 믿지 말라는 충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 어디서 오시는 길이세요? 방랑자세요? 저 방랑자를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우리 마을에서 하룻밤 머물고 지나갔는데 얼마나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던지, 아 근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네 저는 김판섭 입니다.”

저는 혜지에요 유혜지.”

반갑습니다. 혜지씨. 허허허.”

김판섭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때 그 방랑자분만큼 몸이 좋으신 것 같아요. 그 때 우리집에서 하룻밤 머물고 가셨는데.”

그러셨군요. 흠흠.”

. 같이 자는데 너무 더워서 힘들어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물수건까지 해서 드렸어요.”

물수건이요. 정말 귀한 선물을 주셨네요.”

그럼요. 우리 부모님께서 집에 온 손님은 정성스레 모셔야 한다고 했거든요.”

부모님이랑 같이 사시나봐요.”

김판섭씨는 자신도 모르게 빠른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돌아가신지 오래 됐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아니에요. 뭐 흔한 이야기죠. 그리고 다음 날 그 방랑자 분은 떠나셨어요. 그 뒤로 딱 한 번 봤어요.”

다시 보다니. 마을로 돌아 왔나 보군요?”

아니요. 마을 지나서 죽어 있는 걸 진씨 아저씨가 보셨어요. 가지고 있는 물건은 다 도둑이 가져 갔나 봐요. 알몸으로 죽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물건이 워낙 중요하긴 한데 옷까지 다 벗겨가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요.”

 

김판섭씨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여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다. 

흠흠. 안타깝네요.”

 

혹시 오늘 밤 어디서 머무실 곳은 있으세요?”

 

오늘은 야영을 하려고요. 텐트가 있습니다.”

 

텐트요?”

 

혹시 오늘 밤까지 마을에 도착 하지 못 하면 같이 밤을 보내도 될까요?”

 

?”

질문하나에도 얼굴이 다시 터질 듯 빨개지는 김판섭씨였다.

저 텐트가 매우 좁은데 2인용이라…”

..싫으시구나..어쩔 수 없죠…”

아뇨! 그게 아니라! 혜지씨가 불편해 하실까봐 그렇죠.”

이럴 때도 굉장히 빠르게 대응하는 김판섭씨였다. 김판섭씨의 전광석화 같은 대답과는 별개로 발걸음은 텐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느려지고 있었다. 당연히 발목을 다친 혜지의 걸음 속도에 맞추기 위함이지 김판섭씨가 다른 생각이 있어 걸음속도를 늦추고 있는게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결국 야영을 결정을 하게 됐다.

. 이거 해가 이미 넘어가고 있는데요. 지금부터 텐트치고 야영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해가 의외로 빨리 내려가거든요.”

그럴까요?”

김판섭씨는 군장을 내려 놓고 주섬주섬 텐트를 꺼냈다. 느렸던 걸음걸이와는 다르게 뭔가 굉장히 급해 보이는 손동작이었다. 텐트를 치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혹시 식사하셨나요? 제가 육포가 조금 있는데. 물도 조금 있고.”

여성에게 먹을 걸 권하는 김판섭씨였다. 처음으로 여성에게 자신이 잡은 고기와 귀중한 물을 권했다.

어머.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굶어도 괜찮은데. 괜히 제가 음식을 축내는게 아닌가 싶네요.”

혜지는 거절하고 있었지만 혜지의 눈은 육포와 물에 꽂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허허. 거절 하시면 안되죠. 여기까지 걸어 오시느라 엄청 허기 지실텐데. 같이 드시죠.”

둘은 저 멀리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고라니 육포와 물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보니 이제 밤이 꽤나 어둑해져 있었다.

저 혜지씨가 텐트 안에서 주무세요. 저는 밖에서 자겠습니다.”

? 아니에요. 염치가 있지 어떻게 제가 텐트에서 자요.”

똘망똘망한 혜지의 눈을 김판섭씨는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었다. 결국 혜지는 못 이기는 척 하며 텐트로 들어갔다.

밤 하늘의 별이 엄청나게 밝았다. 김판섭씨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을 청하려고 해봤지만 모든 신경이 텐트 쪽으로 쏠려 있었다.

부스럭

텐트 안에서 인기척이라도 한 번 날 때면.

온 몸이 신경이 바짝 달아오르며 김판섭씨의 몸을 경직 시켰다. 절대 김판섭씨가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부스럭 부스럭

혜지가 텐트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고 김판섭씨에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 김판섭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물좀 마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김판섭씨의 여행 첫 날밤은 평화롭게 지나가고 아침이 되었다. 모포를 접는 동안 혜지가 나왔다. 둘은 그렇게 걷고 걸어 혜지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혜지의 얼굴이 굳고 낯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목청 것 부르며 마을 안으로 달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마을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 같았다.

김판섭씨는 그런 혜지와 마을 안을 주의 깊게 번갈아 보며 빠른 걸음으로 혜지 뒤를 재촉하며 쫓아갔다. 앞으로 맨 K-2M의 방아쇠에는 손가락을 걸어 두었다.

혜지가 한참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혜지씨!”

김판섭씨가 혜지를 부르며 뛰기 시작했다.

그 때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혜지가 갑자기 뛰어들어갔다. 김판섭씨도 혜지의 뒤를 급하게 쫓아 뛰었다.

건물을 돌아 혜지가 사라진 골목에 들어섰지만 혜지는 보이지 않았다. 김판섭씨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혜지씨.”

K-2M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부드럽게 힘을 넣었다.

건물 사이 사이의 골목들을 하나씩 살피며 앞으로 나아갔다. 골목이 끝나자 넓은 들판이 나왔다.

남자 두 놈이 혜지를 희롱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모여 있었고 그 주변을 남자들이 둘러 싸고 있었다.

두목인 듯 한 놈은 의자에 앉아 사람들에게 소리 치고 있었다.

장군님께 바칠 공물을 빼돌리다니! 너희들의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백발에 머리가 반쯤은 빈 노인의 머리를 부하들 중 한 명이 치켜 올리며 사람들에게 보라는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노인의 것으로 보이는 몸은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흥건하게 쏟아진 피는 이미 말라 바닥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꺄아아아 놓으세요!!”

놓긴 뭘 놔. 이리 와라. 도망간 공물이 제 발로 다시 찾아 왔구나.”

남자 둘이 거의 혜지의 옷을 찢을 것처럼 잡고 있었다.

김판섭씨는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건물 사이에 있는 드럼통 뒤로 몸을 숨겼다

혜지를 붙잡고 있던 남자들의 수를 세 보았다. 대략 12명 정도 되어 보였다. 두목처럼 보이는 사내까지 치면 13명 정도였다.

혜지를 잡은 두 남자가 혜지를 두목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끌고 갔다. 혜지는 남자 앞에 무릎 꿀려졌다.

머리가 벗겨진 남자는 의자에 앉아 혜지를 내려다 보았다.

공물로 정해진 네가 도망을 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한 참 나왔구나.”

잘린 남자의 머리를 든 남자가 두목의 옆에 와 섰다.

혜지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김판섭씨는 상황을 예의주시 했다. 남자 한 명 한 명 주시하며 총의 여부를 확인했다.

안전간을 풀고 손가락을 방아쇠 위에 올렸다.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는 남자들은 칼과 몽둥이 등 무기를 들고 사람들 사이와 주변을 서성 거렸다.

그 때 보스가 일어나 혜지의 목을 잡았다.

네가 네 복을 차는구나. 장군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데, 네가 아닌 네 동생년을 대신 바쳐야겠구나.”

혜지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이며 두목의 몸을 손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타격도 주지 못 했다.

어떻게 요리해주면 좋을까.”

김판섭씨의 4배율 속에 대머리 두목의 머리가 잡혔다.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소음기 소리가 울리며 대머리 두목의 머리가 뚫렸다.

꺄아아아악

혜지의 얼굴과 몸에 두목의 피가 튀었다.

?”

이장의 머리를 들고 흔들고 있던 부하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 했다. 자신의 대장이 쓰러지는 이유를 2초가 지난 뒤 이해했다.

머리를 든 부하가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던 부하들은 혜지의 비명소리와 동시에 혜지가 있는 쪽을 쳐다 보았다.

두목과 자신의 동료가 쓰러지는 이유를 알지 못 했다.

김판섭씨는 빠르게 판단했다. 어물쩡 거리는 놈들을 향해 총탄을 날렸다.

바로 4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 중에 가장 눈치 빠른 한 놈은 오토바이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김판섭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총을 겨눈 상태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저 새끼 뭐야!”

한 놈이 소리쳤다. 바로 총알을 먹고 다른 동료들 곁으로 떠났다.

오토바이 쪽으로 일찌감치 뛴 놈은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 버렸다.

사람들 사이로 남아 있는 무리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 했다.

무기 버려.”

김판섭씨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서로 눈치를 보며 무기를 놓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그 중 한 명의 다리에 총알이 관통했다.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자리에 들어 누웠다.

그 때서야 눈치를 보던 패거리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내려 놓았다.

이 쪽으로.”

김판섭씨는 총구를 왼쪽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패거리들은 김판섭씨가 말 한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혜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여동생이 있는 자리로 뛰어갔다.

김판섭씨는 그 때서야 사람들 쪽을 쳐다 보았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김판섭을 쳐다 보았다. 심지어는 몸을 떨며 김판섭을 쪽으로는 얼굴도 못 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차 싶은 김판섭씨였다. 

 

 

땀을 뻘뻘 흘리고 군장을 몇 번을 고치며 걷고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쉬는 시간이 되어 길가 한 편에 군장을 내려 놓고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수통을 꺼내 한 모금의 물을 목으로 넘기고 수통 뚜껑을 닫았다.

군장을 다시 매려 자리에서 일어 났을 때 김판섭씨의 귀에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소리와 동시에 가슴에 있던 글록-19을 바로 꺼내 파지하고 소리가 난 곳을 겨냥했다.

..쏘지 마....!”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방독면을 쓴 사람이 길가 밑에서 풀을 가르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김판섭씨는 방독면을 둘러 쓴 사람을 주시하며 권총을 이마에 겨누었다.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남자는 간신히 비탈길을 올라와 평지에 주저 앉았다.

제발물 한 모금만 물 한 모금만 주세요.”

방독면을 벗어.”

김판섭씨가 말했다.

안돼요! 방독면만은 안돼요!”

왜지?”

방사능 때문에 그래요.”

방사능? 그게 뭐야.”

방사능을 모르세요?”

남자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놀라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제발 부탁인데 물..물 한 모금만 주실 수 있나요? 목이 너무 말라 죽을 것 같아요. 제발요

김판섭씨는 한 손으로는 남자를 겨냥을 풀지 않고 한 손으로 군장에 있는 수통을 꺼내 남자에게 건냈다.

남자는 수통을 받자 마자 허겁지겁 수통 뚜겅을 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방독면을 살짝 올리고는 수통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에 물었다.

꿀꺽

바로 마시지 않았지만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저 염치가 정말 없지만 딱 한 모금만 더 마셔도 될까요?”

그래.”

남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방독면을 올리고는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수통의 뚜껑을 닫고는 김판섭에게 수통을 돌려주었다.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고 방독면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굉장히 아쉬워 한다는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판섭씨는 수통을 다시 군장 한 켠에 잘 넣으며 말했다.

일어 서서 뒤로 돌아.”     

. . .”

남자가 대답하며 몸을 뒤로 돌렸다. 김판섭씨는 시선을 남자에게서 떼지 않고 군장을 다시 맸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남자의 몸을 만져가며 수색했다. 총이 있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총이나 다른 무기는 없었다.

“100까지 세고 갈 길 가.”

김판섭씨가 저음으로 딱 잘라 말하고는 몇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돌아 길을 따라 걸었다. 대신 약간 사선 방향으로 걸으며 방독면 남자가 행동하는지 쳐다 보았다.

저기요! 선생님!”

김판섭씨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 외람되지만 제가 혹시 한 말씀 올려도 괜찮을까요?”

외람? 그게 무슨 말이지?”

제가 실례가 안된다면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정말 듣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물을 나눠 주신 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해봐.”

저 그럼 돌아서도 될까요.” 방독면 남자가 고개만 돌린 채 말했다.

그래.”

김판섭씨는 다시 글로-19을 올려 남자를 겨냥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그 쪽에서 오는 길인데 그 쪽으로 가시면 핵탄두 부대를 만나 실 수 있습니다.”

핵탄두? 부대? 그게 뭐지?”

혹시 방금 지나쳐 온 마을에서 흉악하고 아주 나쁘게 생겨 쳐 먹은 남자들을 보셨나요?”

봤지.

그 놈들이 바로 핵탄두부대원들 입니다. 아주 아주 악독하고 나쁜 놈들입니다. 힘 없는 마을에 들이 닥쳐 사람 물건을 약탈하고 빼앗고 심지어는 아녀자들에게 몹쓸 짓을 합니다. 아주 잔인하고 잔혹하고 천하에 둘도 없을 쓰레기 나쁜 놈들입니다.”

김판섭씨는 남자의 눈을 지긋이 쳐다 보았다. 하지만 방독면 유리에 물때가 너무 많이 껴서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판섭씨는 할아버지가 언제나 강조해서 하시던 말씀을 떠 올렸다.

서로 돕고 사는 것만이 헌터마스터의 의무가 아니다. 약자 앞에 강하지 말 것이며 강자 앞에 강할 것이다. 약자가 괴롭힘 당한다면 약자를 짓밟는 자들에게 세상 자비 없는 가르침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 도리를 하지 못 하는 것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보여주는게 바로 헌터 마스터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요. 이 핵탄두부대는 마을 습격과 약탈에 성공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삼아 강제노역을 시키고 있습니다요. 제가 슥 지켜보니 칼과 창은 물론이요. 총까지 가지고 있는 놈들도 있었습니다.”

김판섭씨는 말없이 K-2M의 안전간을 풀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 때 김판섭씨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저 멀리서 혜지가 뛰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판섭씨!” 옷도 갈아 입지 않았는지 아까 튀긴 피가 민소매와 반바지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혜지를 보며 판섭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판섭씨..” 혜지는 가파른 숨을 내쉬며 김판섭 앞에 멈춰섰다.

아까는 정말 죄송해요. 저도 마을 사람들도 너무 겁먹어서 정신도 경황도 없었어요.”

..아닙니다.” 김판섭씨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여기요.” 혜지는 물병을 하나 쑥 하고 들이 밀었다.

?”

저희 마을을 구해주셨는데 보답도 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되잖아요. 물을 조금 가지고 왔어요. 저한테 물도 나눠주고 하셨잖아요.”

아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그러지 마시고 꼭 받아주세요.” 혜지가 판섭의 팔을 잡아 끌며 억지로 물통을 손에 쥐어줬다.

혹시 다음 번에 우리 마을을 또 지나가시게 되면 저를 찾아주세요. 그 때는 저희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꼭 대접해 드릴게요.”

....”

꼭 이에요?!”

혜지가 새끼 손가락을 내밀며 판섭에게 약속을 권했다. 김판섭씨도 새끼 손가락을 내밀어 혜지의 새끼 손가락에 걸었다. 혜지가 힘 주어 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 약속해~ 히히.”

혜지가 엄청나게 해맑게 웃으며 김판섭의 눈을 쳐다 보았다.

김판섭씨는 어쩔 줄 몰라했다. 할아버지가 여자에 관해 해 준 말이 라고는 여자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친절해라.’가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혜지씨. 물은 잘 먹겠습니다.”

물끄러미 판섭을 보고 있던 혜지가 판섭의 품에 파고들며 포옹을 해왔다.

정말 감사해요. 오늘 판섭씨를 만나지 못 했다면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더 끔찍한 일이 일어 났을거에요.”

김판섭씨의 몸이 얼음같이 굳어 버렸다.

포옹을 푼 혜지가 말했다.

저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 볼게요. 판섭씨. 다음 번에 우리 꼭 다시 만나서 함께 저녁 먹어요.”

!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김판섭씨는 매우 수줍게 하지만 엄청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다음에 뵈요! 방독면 아저씨,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히 가세요.”

옆에 서 있던 방독면 남자에게도 인사를 건낸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은 혜지는 뒤를 돌아 뛰어 돌아갔다.

김판섭씨는 눈을 떼지 못 하고 혜지가 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응시하고 또 응시했다.

제가 말을 다시 이어가도 될까요?”

..그렇지. 다음 마을. 근데 당신은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아는거지?”

긴 말 짧게 설명드리면 저는 남쪽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그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운 좋게 마을 사람을 만나 소식을 듣고 마을을 지나쳐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가는 중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잽싸게 요 아래로 숨어 있었죠. 한 참을 기다리다 잠들었습니다. 그러고 이제 동태를 살피다 보니저 이제 와서 여쭤봅니다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는 세르게이 입니다.”

김판섭.”

..네 김판섭님께서 잠시 쉬실 때 다시 목숨을 걸고, 제가 이제 말을 건게 되는 거죠.”

용기가 있군.”

네네. 여하튼 이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가시면 방금 이 전 마을을 습격한 패거리들을 만나게 되실 겁니다.”

이미 늦은 것 같은데.”

?”

만났어. 그 놈들.”

김판섭씨는 말과 동시에 몸을 돌려 다음 마을 쪽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 김판섭씨? 아니 김판섭님!”

세르게이가 김판섭의 뒤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어디 가시게요? 다음 마을로 가시면 죽을 수도 있다니까요?”

알아.”

근데 어디 가세요?”

핵탄두부대인가 뭔가를 쓸어 버리러 간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들었잖아. 그 놈들 죽이러 간다.”

아니 혼자서 어떻게 상대하시려고 그래요? 그 놈들도 총이 있고 칼이 있고 판섭님은 혼자 잖아요.”

상관없어. 약자를 괴롭히는 자는 가만두지 않는다. 그게 진정한 헌터마스터야.”

헌터 뭐요? 헌터는 사냥꾼인데 왜 동물을 안 잡고 나쁜 놈들을 잡으러 가요.”

무슨 말이야. 헌터마스터는 악의를 보면 참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부탁을 거절 하지 않는게 진정한 헌터마스터다.”

김판섭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그건 판섭님이 생각해 내신 말인가요?”

아니지.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누구신데요?”

1대 헌터마스터.”

세르게이는 지나가는 사람이 봐도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방독면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김판섭씨는 확고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소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게 전부야.”

그러다 판섭님이 죽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구요?”

그럼. 죽는거지. 헌터마스터로서의 의무를 무시하고 사는 것도 죽은 삶과 다를 바 없다.”

그것도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에요?”

그렇지.”

할아버지가 엄청 대단한 분이셨나 보네요.”

1대 헌터마스터셨지.”

그래도 안 가시는게 어떨까요? 조금 동태를 살펴 본다거나 상황을 지켜 본다거나. 그러다 기회가 오면 콱! 하고 잡으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마음 먹은 건 그 때 그 때 행동하는게 헌터마스터, 사냥의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잡아 내는게 헌터마스터의 본질이다.”

방독면 세르게이는 김판섭의 옆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넌 돌아가. 가던 길로 가라. 굳이 너까지 쫓아 올 필요는 없어.”

세르게이는 말이 없었다. 판섭의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에 힘이 있음을 느낀 세르게이의 얼굴도 판섭이 짓는 표정과 비슷해졌다. 뭔가 결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저도 판섭님을 쫓아 가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확고하고 자신감 넘치게 말씀하시는데 저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위험할텐데.”

어차피 위험한 세상 아닙니까. 이렇게 죽어도 저렇게 죽어도 이상 할 게 없습니다요.”

그래. 원한다면 함께 가자. 하지만 전투에 들어가면 자기 몸은 자신이 지켜야 돼.”

당연하신 말씀! 방해나 민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알았다.”

 

둘은 다음 마을을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갔다.

-

장군님. 귀중한 시간을 보내시는데 갑자기 죄송합니다. 이성칠이 돌아 왔습니다.”

친위대장은 심각한 얼굴로 강성철의 방에 들어오며 이성칠이 부하를 잃고 혼자 복귀 했음을 보고 했다.

혼자 돌아 왔다고?”

거구의 몸을 한 강성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

. 혼자라.”

강성철과 친위대장 사이의 여자들은 알몸으로 떨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백발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는 다시 하얀 수염을 쓰다듬었다.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한 명의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들은 고개를 들지도 못 하고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호리호리 한 몸의 남자가 선택받은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헐벗은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자리에 무릎을 꿇어 앉았다.

나머지는 특급 병사들에게.”

.”

비서는 대답 후에 남은 여자들을 이끌고 방에서 나갔다.

전투라도 벌어진 건가? 상대는 몇 명이지? 마을 전체인가?”

아닙니다. 혼자였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K-2를 들고 있었는데 총을 다루는 실력이 단 번에 소대를 끝장 낼 정도 였다고 합니다.”

. 혼자라. 부하로 삼으면 좋겠는데.”

수색팀을 보내 생포할까요?”

그 정도 실력이면 생포가 될까. 너 이리 오도록.”

강성철은 홀로 남겨진 여자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여자는 앉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강성철의 앞으로 나아갔다.

이리와 앉아.”

강성철은 자신의 다리를 벌리며 허벅지 안쪽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여자가 다리에 앉아마자 강성철은 여자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긴장을 넘어 경직에 가까운 몸을 한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공포가 어린 신음을 내었다.

우선 각 식민지에 파견된 부대원들에게는 경계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보내놨습니다.”

그래. 그런 놈은 또 나타날 확률이 크지, 운이 좋으면 생포할테고 아니면 우리가 노력을 조금 해야겠지. 생포하는 놈에게는 중대장으로 진급을, 머리를 가져 오는 놈에게는 노예 셋과 땅 그리고 여자 둘을 하사 하겠다.”

알겠습니다. 수색대장에게 전달 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성철은 친위대장에게서 여자 쪽으로 눈을 도리며 여자의 몸을 쓰다듬었다.

겁먹지 말거라. 금방 괜찮아 질테니.”

이성칠에게는 어떤 처벌을 내리는게.”

노동교화소.”

강성철은 짧게 대답했다.

.”

고개를 숙여 대답하는 친위대장이었다.

 --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

마을을 제대로 보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돼요.”

그렇지. 맞는 말이야.”

김판섭씨는 세르게이의 말에 적극 동의 하며 길가 옆 비탈길을 타고 내려갔다. 세르게이도 김판섭을 따라 비탈길 밑으로 내려갔다.

잿빛 하늘도 점점 어두워지며 주변에 어둠을 내리 깔고 있었다.

저 쪽 높은 산으로 올라가면 될 것 같아요.”

세르게이가 김판섭의 뒤에서 속삭였다.하지만 김판섭씨는 아무 말 없이 마을 쪽으로 더 빠르게 걸어갔다.

? 어디가세요.”

마을이 가까워 지자 김판섭씨는 허리를 굽히고 비탈길과 길이 만나는 지점까지 올라가 마을 쪽을 살펴 보았다. 어둠이 진하게 내린 세상은 김판섭씨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뭐하시는거에요?” 김판섭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세르게이는 연신 질문 했지만 김판섭은 묵묵 부답이었다.

김판섭씨는 K-2M의 끈을 잡아 끌어 자기의 몸에 단단하게 고정 시켰다. 그리고 비탈길 아래 군장을 벗어 놓고 그 위를 나뭇가지와 풀로 덮었다.

설마 지금 바로 들어가시게요?”

그렇지. 지금이 딱 들어가기 좋아.”

무슨 말씀이에요. 누가 적인지 어떻게 알고 게다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잖아요.”   

지금 이 시간에 둘 이상 짝지어 다니면 적이야.”

마을 사람들일 수도 있잖아요. 협박 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건. 운이야.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만 있을 뿐.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돼.”

?”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셨지. 전쟁은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야. 그냥 내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지. 그리고 강제로 했건 아니건 전쟁 중에 부역자에게 자비란 없는 법. 칼 쓸 줄 아나?”

아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거 받아.” 김판섭씨는 세르게이에게 대검을 넘겨줬다.

그래도 왠만하면 나서지마.”

김판섭씨는 글록에 소음기를 달고 다시 홀스터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팔뚝만한 마체테를 꺼내 들었다.

마을에 접근해 건물에 붙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때 어딘가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이 야밤에 갑자기 경계를 서라니. 윗대가리 놈들은 지들 몸 편하니까 아무거나 막 시킨다니까.”

그러게나 말이야. 1개 소대가 한 명한테 당한게 말이 되나? 그렇다고 그 한 놈 잡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이나 하고 말이야. 밤에 자지도 못 하고 이게 뭐하는거야 대체.”

김판섭씨가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여기 있어.”

김판섭씨는 건물을 타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두운 골목 거리를 비추는 건 어르스름한 달빛만이 전부였다.

야간 경비에 대해 투덜거리던 두 남자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며 터벅터벅 걷기만 했다. 그리고 그 뒤에 김판섭씨가 나타났다. 한 명의 이마를 잡고 팔뚝만한 마체테로 목을 그었다.

목의 절반 정도까지 박힌 잘 갈린 마체테는 정확하게 남자의 목을 절반가량 잘라 놓았다.

으윽.” 목이 갈린 남자는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 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옆의 동료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동료의 목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피를 보며 그대로 멈춰 버렸다. 경악스러운 광경에 이미 커질만큼 커진 동공이 한 번 더 커졌다.

동료가 쓰러지는 걸 보던 시선이 자신의 배쪽으로 옮겨갔다. 굉장히 뜨거운 기분이 명치에서 느껴졌고 동시에 거칠지만 따듯한 손이 자신의 턱을 잡으며 입까지 가리는게 느껴졌다. 명치를 뚫고 들어온 마체테가 한 번 더 깊숙이 찔러 왔다.

우웁.”

마체테가 남자의 배에서 사선으로 쑥 하고 빠져 나왔다.

.

남자가 숨을 깊이 마시려 했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비명을 질러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이도 여의치 않았다.

김판섭씨는 작은 통을 꺼내 남자의 몸에 적은 양의 기름을 뿌렸다. 그리고 성냥을 키고는 남자 몸 위에 던졌다.

화륵

한 번 쓱 훑어 보고 다시 자신이 왔던 골목길로 사라졌다.

세르게이. 이제 소리를 칠꺼야. 이 권총을 받아. 그리고 내 뒤를 지켜. 총은 쏠 줄 알지?”

세르게이의 방독면이 위아래로 비장하게 움직였다. 총을 넘겨 받은 세르게이는 김판섭의 뒤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침입자다! 침입자다!”

한 두 집의 창문에 불빛이 들어왔다.

여기 침입자다! 여기 침입자가 나타났다!”

가자. 세르게이.”

세르게이의 어깨를 툭 치고는 건물을 돌아 두 사내가 쓰러진 곳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몸을 숨긴 두 남자는 상황을 주시 했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총을 가져와라!”

소대원들을 모아!”

마을은 난리가 난 듯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몇 몇의 사내들이 바지만 입고 집에서 뛰쳐나와 달려 다녔다.

그 때 마을을 달리던 남자들이 불이 난 곳으로 달려 왔다.

여기다! 여기!”

사내들이 소리를 치며 동료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약 여덟 명의 남자들이 달려왔다.

소대장님을 모셔와.” 목이 잘리고 불타는 남자와 복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동료 주변에 모여 들었다.

누가 당했어?”

불침번들입니다. 소대장님.”

유일하게 총을 든 사내가 뛰어와 사내들 옆에 섰다.

이런....마을 전부를 수색해! 쥐새끼 새끼를 잡..”

소대장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관자놀이 바로 윗부분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졌다.

털썩

그 뒤를 이어 네 명의 사내가 쓰러졌다.

뭐야!” 쓰러지지 않은 소대원들은 두 명은 자세를 바로 낮추었고 세 명은 뛰기 시작했다. 뛰는 사내들 중 한 명은 다리에 그리고 두 명은 몸 통에 맞으며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

.” 

제 자리에서 자세를 낮춘 두 명은 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한 명은 소대장이 들고 있던 총을 가져 오려 했다. 하지만 몸에 걸린 끈 때문에 총을 가져 올 수 없었다.

움직이는 총 쪽으로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

총을 잡으려던 남자가 소리를 쳤다. 

씨발 어떤 새끼야? 당장 나오지 못 해!”

너희들이 지금 그렇게 큰소리 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김판섭씨가 소리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김판섭씨와 세르게이는 남자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총을 잡으려 던 남자의 머리에 총알을 박았다. 시체가 쌓인 곳을 지나쳐 도망가려 했던 남자들 쪽으로 갔다.

세르게이, 이 놈 허튼 짓 못하게 해줘.”

세르게이는 들고 있는 글록으로 엎드려 있는 남자를 겨냥했다.

다리에 총을 맞은 사내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쓰러져 있었다.

으으윽.”

몸통에 총알을 맞은 남자들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한 명은 심장에 한 명은 폐에 총알이 지나가 있었다.

제발..살려주세요.”

김판섭씨는 가차없이 남자의 머리에 총알을 박았다.

그리고 다시 시체가 있는 쪽으로 돌아 와 살아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앉아봐.”

남자는 김판섭과 세르게이를 번갈아 보며 엎드려 있었다.

일어나.”

남자가 일어났다.

걸어.”

김판섭씨와 세르게이는 남자를 이끌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을을 벗어나 나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다.

무릎을 꿇어야지.”

남자는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어허.”

세르게이가 남자의 머리에 총을 가까이 가져갔다.

남자는 바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바닥에 잔돌들이 무릎을 찔러왔다.

으윽.”

너희 대장은 어디있지?”

대장?”

그래. 대장.”

네가 방금 죽였잖아 이 새끼야.”

아니. 얘 말고. 진짜 너네 대장.”

우리 장군을 말하는건가?”

. 말이 참 많네. 장군이건 대장이건 너네 무리의 진짜 대장.”

본대는 여기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야 돼.”

얼마나 멀지?”

“100km 정도.”

가는 길에 너네 무리들이 많나?”

마을이 두 개 더 있지.”

근데 너 말이 짧다.”

?”

말이 짧다고.”

.”

그래. 존대를 해야지?”

.”

총 몇 명이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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