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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주식&경제

메디치 가문이 돈을 번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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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의 군주이자 양모 상인집단이자 은행가이자 르네상스의 최대 지지자 메디치 가문.

부유했던 가문으로 양모제조업자 였거나 상인 집안이었음.  당시 북부이탈리아의 상업 붐을 타고 부를 쌓게 됨. 

1397년 은행 설립 

교황의 은행이 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됨

1434년 코시모 데 메디치가 가문의 수장이 됨. 

실질적으로 복식부기, 현재에도 쓰이는 회계방식을 제대로 쓰고 퍼트려 놓음. 

로마, 바로셀로나, 런덩 등에 지부를 두고 플로렌스에서는 지주회사를 건립. 최초의 지주회사로 여겨짐.  

당시 상인들은 금을 이송시키기 어려워 메디치 가문의 신용장, 어음을 사용 함. 이를 통해 환율, 신용장 수수료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음. 

유럽의 귀족과 왕가들의 돈을 관리해주면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쌓아감.

유럽의 최고 부자 가문으로 등극 함. 

플로린화폐를 보장하는 노트는 현금처럼 쓰일 정도로 신뢰가 높았고 대부분의 유럽에서 융통이 됨. 

 

하지만 라이벌 가문과 배후의 카톨릭 교회가 음모를 꾸며 메디치 가문을 위기로 몰아 넣었고, 이에 피렌체를 떠나기도 하나 다시 돌아와 피렌체를 지배함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은행 경영에 관심이 없거나 잘 하지 못함. 1494년 결국 모든 은행이 문을 닫고 파산에 다달음. 1743년 장자가 없던 메디치가문은 역사속으로 사라짐. 메디치가는 300년간 플로렌스의 군주로서 지배함. 1718년 장자가 태어나지 않아 그 지방 유지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권력이 끝남. 교황을 4명, 프랑스에 여왕을 두명 배출함. 한 창 잘 나갈 때는 플로렌스 지방 땅이 거의 메디치 가문에 속함.

정치와 경영에 능했고 특히 르네상스 시절 메디치 가문의 지원을 안 받은 유명 예술가가 없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등 모두 피렌체의 대부 메디치 가문의 지원을 받아 걸작들을 완성 시킴. 예술학교도 건립하여 후학을 키움 

지주 회사, 신용장, 복식부기는 현재에도 사용 될 만큼 현대 금융의 뿌리를 남김.

14세기 후반 몽골의 몰락  

1453년 콘스탄티노플, 동로마 멸망. 오스만 투르크 일대 지배. -> 대항의시대 시작. 

바스코 다 가마의 아프리카 항로,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 

콜럼버스가 등장, 대서양을 넘으면 인도로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주장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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