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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영어

눈 오던 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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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내가 살던 고향은 군에 속한 리였다. 마을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고 30-40분 이라는 거리를 버스에서 보내고는 했었어야 했다. 시내에서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는 2차선에 불과 했지만 차가 많이 다니지 않던 시절인지라 가끔 설이나 추석을 제외하면 막히는 일은 없었다. 눈이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마을에 대한 설명을 풀어 놓고 보니 가끔 씩 아버지께서 노래방 18번 처럼 가사하나 안 틀리고 해주시는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동네 할아버지 버스에서 담배 피던 시절의 내용은 아니라는 것, 그냥 20세기 어느 촌아닌 촌에서 있었 던 일이다. 

당시 중학생이였던 우리들은 겨울이 오면 은근히 기대 하는 것이 있었다. 밤새 눈이 내려 도로가 막히는 상황이 오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밤새 눈이 오는 날이면 어김 없이 2차선 도로가 확고한 주차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 동네에 살 던 아이들 중에 시내로 학교를 다니던 애들이면 눈이 많이 온 날은 학교에 늦게 가도 선생님들이 뭐라 하지 않았었다. 아버지 시절에는 장마철에 다리가 물에 잠겨 학교를 종종 못 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내 대에 들어서는 새로운 다리를 높게 지어 그런 일은 없었지만. 

밤 새 내린 눈과 얼어붙은 도로는 평소 소요시간 30-40분을 2-3시간으로 연장 시켰다. 우리는 만원 버스에서 희희낙낙 하다 지겨워지고 버틸 만큼 버텼다 싶어지면 어김없이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내려 달라 했다. 중간에 내려 걷기 시작하면 학교까지는 약 1시간에서 1시간 반. 눈으로 하얗게 덮힌 논들을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중학생 꼬맹이들 끼리 웃고 떠들며 도로 옆의 갓길도 아닌 조그마한 흑길을 통해 학교로 향하고는 했다. 

논밭이 끝나면 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시장이 나왔다. 시장을 지나면 사람은 보기 힘든 시내가 나왔는데 당시에는 편의점도 없던 시절이라 온 시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다리를 건너면서도 시장을 지나면서도 시내에 들어서면서도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 거리고 웃고 떠들고. 조용한 시내에서 떠들던 건 우리 밖에 없었다. 

시내 한 중간을 지나가던 중에 한 놈이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며 뜬금없이 샷다가 내려가 있는 가게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그놈도 그 놈을 보는 친구 놈들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고 떠들며 자신도 싸겠다며 애꿏은 남의 가게 샷다에 오줌세례를 퍼 부었다. 모든 친구들이 바지를 추켜 올리며 나올 때 갑자기 한 놈이 말 없이 가게 쪽으로 다가가 바지를 내리고는 거하게 샷다에 소변을 퍼붓기 시작하자 그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잘 있던 샷다 안 쪽에서부터 무슨 소리가 들렸고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마자 샷다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샷다가 올라가면서 주인 아저씨가 "너 이새끼 여기다 뭐하는거야?" 라는 소리를 치며 샷다문을 더욱 빨리 올렸다. 바지를 내리고 마지막으로 오줌을 싸고 있던 놈은 차마 볼 일도 끊지 못하고 옆으로 게걸음을 치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 했다. 친구 놈들은 샷다가 올라감과 동시에 아저씨의 손을 보고는 이미 도망을 친 상태였고 한 참을 도망가서 숨은 뒤에야 그 상황을 보며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얼은 샷다를 따듯함으로 녹이려던 마지막 친구놈은 아저씨에게 훈계만을 듣고 친구를 버리고 냅다 튄 우리들의 품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 또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눈 내린 시내를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떠들며 걷다 각자의 학교를 향해 뿔뿔이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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