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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영어

추웠던 봄날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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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 보이는 번화가의 거리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사람들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그리고 유니폼을 입고 건물 옆에서 혼자 담배를 피고 있는 아저씨. 많은 사람들이 따듯한 봄 날 햇살 아래 거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커피숍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매우 활기차 보였다. 커피숍 내부도 밖과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떠드는 아가씨들 혼자서 이어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고 있는 안경 쓴 청년 음악 소리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에서도 꿋꿋하게 책을 보며 공부하는 대학생 같아 보이는 학생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자신들의 할 일을 하며 복작 거리고 있었다. 따듯한 봄 날 책을 한 권 사들고 커피숍에 온 나는 자리에 앉아 새로운 책은 테이블에 올려두고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과 커피숍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한 한 달 전부터 주말이 되면 번화가로 나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주말에  회사 기숙사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거나 피씨방에서 오락을 하는 시간이 문득 지겹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 새로 생긴 취미라고 할까. 하지만 사실 주말에 번화가에 나온다고 해도 뾰족하게 할 일이 있다 거나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따듯한 봄 날에 기숙사 방안에만 갇혀 있는 느낌도 싫었고 담배 연기 그득한 피씨방에서 하루 종일 오락을 하는 것 보다 사람들을 보고 봄 날의 기운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몇 번을 번화가에 나와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도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낌이 꽤 괜찮았다. 이 수 많은 사람들 중 말 한마디 건 낼 사람 이라고는 커피숍에서 커피 주문 할 때 아르바이트생 밖에 없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기숙사로 돌아가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고 왠지 모르게 비어있는 마음 한 켠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창 밖을 바라보다 문득 시간이 궁금해졌다. 급 할 건 없었지만 회사 기숙사로 들어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기는 싫었다. 일전에 새로 산 책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리를 늦게 뜨는 바람에 막차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천 원이면 갈 수 있는 기숙사를 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택시를 타야 했다. 그 이후로 번화가에서 나와 있으면 계속해서 시간을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회사 기숙사에서 이 곳 번화가 까지 나오려면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이나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나와야 했다. 내가 일 하는 곳은 도시에서 벗어난 한적한 시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이 택시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두 공간이 엄청나게 다른 분위기와 모습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회사 근처에는 집도 별로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곳 번화가에는 논밭 대신 번쩍번쩍한 건물들이 즐비하고 그 건물들 사이로 한 것 꾸민 사람들이 수 없이 지나 다닌다는 것이다. 시계를 보고 난 뒤 테이블에 올려 둔 책을 집어 들었다. 헌 책 방에서 산 철학책 이었다. 철학에 특별히 배워 본 적도 없고 철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꿔 본 적도 없지만 꼭 책을 고를 때면 이런 류의 책이 눈에 들어 온다. 처음에 눈에 들어 왔을 때 들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내려 놓았던 책이었지만 책방을 둘러보고 나올 때 결국 내 손에 들려 있던 책이었다. 책의 첫 장을 넘겨 읽기 시작 했다. 존재와 물질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 했지만 흥미롭게 읽기엔 충분한 주제였다.


그렇게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시간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지금 출발하면 회사 기숙사에 한 10시 즈음 이면 도착 할 수 있다. 책과 다 마신 플라스틱 커피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커피컵은 출구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문을 열고 커피숍을 나왔다. 어느 새 저녁 8시 정도가 되었다. 저녁의 봄 바람은 선선했다. 그 선선한 바람을 몸으로 맞으며 코로 들여 마시자 왠지 하루를 보람차게 보낸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한 것이 라고는 거리를 헤매고 책 방에서 책 한 권 사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신게 전부인데 말이다. 기분이 왠지 모르게 들떴다. 번화가 거리를 올라 지하철 쪽으로 향하면서 거리의 노점상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 손에 들고 먹으며 걸었다. 밤이 되어 해도 없어 어둑어둑 했지만 거리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 거리며 웃는 사람들, 이 세상 일은 혼자 다한 듯한 피곤한 얼굴의 사람들, 무표정의 사람들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각기 다른 목적지를 향해 서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은 언제나 이유를 알 수 없게도 피곤 해 진다. 지하철에 오르면 매번 이유 없이 몸이 나른 해졌다. 가끔 자리에 앉아 집에 갈 때는 책이라도 볼 심정으로 책을 펼 쳐 보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른해진 몸 임에도 지하철에 타면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버릇은 멈추지가 않는다. 피곤하고 무표정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저 사람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해진다. 오지랖도 넓지 남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상관이람 나 보다 잘 보냈을 사람들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을 처다 보는 것을 멈춘다. 그러다 무심결에 쳐다 보게 된 서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둘이 친구인지 실제로 둘이 친구라면 정말 친할까 와 같은 정말 쓸 곳도 이유도 없는 궁금증이 머릿속에 차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을 보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없이 있다 보니 내려야 할 역에 가까워져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하철에서 나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야 했다. 나른 해진 몸으로 버스 정류장에 가서 또 버스를 기다릴 생각을 하니 뭔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졌다. 차라도 사야 되나 라는 생각을 주말에 번화가에 나올 때 마다 한 것 같다. 하지만 내 수중에 모아 논 돈으로는 차를 사는 것은 생각조차 사치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차를 산다는 생각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투정으로 끝난다. 지하철 역을 나와 밖으로 나오니 선선했던 바람은 약간 찬 기운을 띈 바람으로 되어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몇 안되는 사람들이 서서 그리고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올 때 마다 사람들의 수는 줄어 들었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운행을 많이 하지 않아 30-40분에 한 대 씩 다닌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정류장에는 아주머니와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 그리고 나 셋 만이 남았다. 이 분들은 집에 가면 맞아 줄 가족이 있겠지,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누군가의 아들이나 남편이나 아버지 일 수도 있겠다. 피곤함과 지친 기색이 많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아무것도 읽을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버스가 도착했다. 나와 함께 정류장에 남아 있던 두 사람도 나와 같은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한 두명의 사람들만이 앉아 있었다. 창가 쪽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거리의 간판들과 자동차들은 도시의 거리를 낯과 같이 밝히고 있었다. 거리에 있는 불을 밝힌 음식점들과 가게들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고 있었다.


도시의 끝에 다다르자 그렇게 밝은 곳에 있었다는게 믿기 힘들만큼  버스 창문 밖 풍경은 빠르게 어두워져 갔다. 버스 옆으로 다니는 차들과 도로 옆으로 있는 가로등들 그리고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집들에서 흘러나오는 빛들이 세상을 비추는 전부였다. 도시의 끝을 벗어나자 보이는 불빛들은 더 줄어 들었고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빛나는 가로등 불 빛과 가정집들에서 흘러 나오는 빛들만이 남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 까지 멍하니 창 밖으로 보이는 어둠과 그 안에 점처럼 빛나는 불들을 응시했다. 밤에 버스를 타고 다니며 보는 소소한 야경을 정말 좋아했지만 그저 멍하니 땅 위에서 빛나는 별과 같은 저 빛들을 보고 있자면 가끔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가 내리자 마자 버스는 문을 닫고 출발 해버렸다.   

 

회사 기숙사까지 걸어가려면 20분을 더 걸어야 했다.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지만 회사 기숙사 까지 가는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었고 가로등들이 길을 비추고 있어 전혀 어둡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논밭 밖에 없어 가로등이 없었다면 아마 칠흑 같이 어두웠을 것이다. 벌써 이 도로를 걸어 왔다 갔다 하기 시작 한지 벌써 2년이 지나버렸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곳에 혼자 올라 와 산지가 2년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끼는 건 시간이 간다는 거다. 군대를 제대하고 아는 분의 소개를 여차여차 받아 올라 온 곳 이었다. 오기 전까지는 알지도 못 했던 곳이었는데 벌서 2년이라는 시간을 여기서 살았다니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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