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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웹소설

김대리는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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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는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평소보다 5분 빨리 눈이 떠졌다.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는다. 알람이 아직 울리지 않았다. 가끔 이런 일이 있다. 평소라면 단 1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눈을 감고 알람이 울릴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어제 준비해 둔 옷을 입었다.

 

거의 교복에 가까운 옷이다. 취업 축하 선물로 받은, 이제는 허름해진 가죽 가방을 맸다. 원룸을 나섰다. 아직은 여름이 오지 않았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은 바람이 김대리의 얼굴을 스쳤다. 그럼에도 햇살은 따듯했다. 평소 5분 일찍 나온 효과는 매우 컸다. 허둥지둥하며 빠른 걸음을 걸어야 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아도 됐다.

 

지하철역에 가까워 질수록 거리 위의 사람 수가 많아 져 갔다. 3년 째 보고 있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새로 오픈한 돈까스 집이 보였다. 저녁으로 언젠가는 한 번 먹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돈까스 집을 지나 지하철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들은 어깨 부딪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김대리는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으나 결국 두 세번은 부딪혀 온다.

계단을 내려가는 김대리의 눈에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는 흑발에 허리까지 내려오고, 매우 몸에 딱 맞아 떨어지는 정장을 입은 여성이었다. 뒤에서 봐도 범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먼저 계단을 다 내려간 여성이 옆으로 돌 때 살짝 보인 얼굴도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얼굴이었다. 김대리는 뭐에 홀린듯 그 여성을 쫓기 시작했다. 여성이 가는 방향이 김대리와 맞아 떨어졌다. 물론 김대리는 말을 걸 생각은 없었다. 살면서 여성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거의 매일 같이 타던 누나가 있었다. 김대리 보다는 한 정거장 빨리 내리는 누나였다.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가끔 마주치던 누나였지만 서로 인사를 하거나 아는 척을 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좁은 동네인지라 친구들에게 지나가듯 묻고 물어 이름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한 번은 대단히 크게 용기를 내어 누나가 내리는 곳에서 같이 내렸지만 거기까지 였다. 집으로 떠나가는 누나를 정류장에서 한 참을 바라보다 김대리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도 대학생 시절 좋아하게 된 동기나 누나들이 있었지만 절대 먼저 고백하지는 않았다.

 

복학한 후에 친하게 된 동기와 사귈 뻔 한 적도 있었지만 김대리의 창의적인 실수가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여하튼 김대리는 여자한테 말을 걸어 본 적이 없다. 다행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지는 모르겠지만 김대리는 아직 이별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김대리는 그렇게 검은 정장의 여자의 뒤를 쫓았다. 평소라면 환승하는 역을 고려해 가장 빨리 갈아타는 열차에 줄을 섰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여자의 뒤를 쫓았다. 아무 생각이 없이 여자의 뒤를 쫓아갔다. 여자는 가장 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열차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옆에서만 봐도 심장이 터져 버릴 듯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할 외모였다. 왼손으로 한 쪽 머리를 넘길 때는 세상을 3억 루멘의 전구로 밝히는 듯 한 느낌을 주었다.

 

김대리는 넉을 놓고 여자를 바라 보았다. 더 이상 가까이 가지는 못 했다. 옆 줄에 서서 여자를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 열차가 들어왔고 문이 열렸다. 김대리는 열차에 올라탔다.

 

여자도 옆 문을 통해 열차에 올라탔다. 여자는 건너 편 자리에 앉았다. 그 앞에 바로 빈자리가 있었다. 김대리는 그 자리에 앉았다. 정면에서 본 여성의 얼굴은 3억 루멘은 커녕 3000억 루멘의 밝기로 빛나는 듯 했다.

 

차마 얼굴도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힐끔 거릴 용기조차 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무표정한 얼굴로 지루한 지하철을 이겨내던 다른 날과는 엄청나게 다른 날이었다.

 

출근을 매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화수분처럼 솟아 올랐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성공한 것 같았다. 이게 성공한 남자의 인생이란 말인가.

하지만 김대리는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에 빈자리는 말이 안됐다. 원래대로라면 지하철을 한 번에 타기 힘든 날이 부지기수 였다.

밀리고 밀려 마지막 남은 자리에 간신히 몸을 꾸겨 넣으며 출근하던 날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오늘은 빈자리에 앉아서 가고 있고 여자와 자신의 사이에 아무도 없음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오늘 일어나고 있음에도 김대리는 자신이 세상을 다가졌다는 생각에 젖어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 했다. 김대리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게 된 건 지하철의 등이 나가면서부터였다.

지하철에 달린 전등이 깜빡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등이 꺼지며 지하철 안은 어둠으로 가득찼다. 빛이 하나도 없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이 칸만 그런건가?’

김대리는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시 전등이 들어왔다 하지만 다시 깜빡거렸다.

크르르르르르.’

인생의 성공을 느끼게 해준 여성을 본 것 보다 더 신기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거의 전철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한 근육질의 남성이 한 팔로 사람을 잡고 머리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 팔에도 사람이 들려 있었다. 깜빡거리는 전등 아래 거대한 괴물 같은 남자가 사람의 머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머리에서 피가 쭉쭉 올라오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바닥만 피로 흥건한게 아니었다. 천장, , 창문 여기저기 피로 얼룩덜룩 했다. 그리고 네팔 달린 남자 기준으로 김대리 쪽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네팔 달린 남자의 넘어에는 몇 명의 사람이 겁에 질린채 아무것도 김대리와 같은 광경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치칙..치칙

안녕하십니까. 차원지하철에 타신 승객 여러분 차장이 알려드립니다. 씬바드 다리를 지날 때까지 영혼을 보존하시면 두자크역까지 살아서 가실 수 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김대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정자세로 자리에 앉아 고개만 돌린 채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성인으로서의 정신은 있었는지 자신의 가랑이 사이 쪽에 손을 대보았다. 오줌은 싸지 않았다. 그나마 김대리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대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아까 그 아름다운 여성이 그대로 앉아있었다. 책을 읽고 있었다.

전등이 깜빡 거리는 대 글이 눈에 들어오나?’

김대리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팔이 달린 거구의 남자는 사람을 뜯어 먹고 있고, 자신이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전등이 깜빡 거리는 전철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이 나빠지지 않을까원래 렌즈를 끼나?’

이 열차 칸에서 유일하게 공포에 질리지 않고 침착한 사람은 이 여자 뿐이었다.

김대리가 말을 걸었다.

…”

역시 전등이 깜빡 거리는 순간에도 여자의 미모는 김대리가 쳐다보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자동으로 살짝 밑으로 깔렸다. 여자의 미동이 느껴지지 않자 김대리는 목소리를 키웠다.

저기요!”

그때서야 여자가 고개를 들어 김대리를 쳐다 보았다.

김대리는 쭈볏거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난 3년간의 직장생활에서도 여자와 대화를 나눠 본 경험이 10회 미만인 김대리였다.

…”

말을 빨리 해라.”

?” 김대리는 갑작스러운 반말에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의 눈과 마주치자 마치 빨려 들어 갈 듯한 기분이 들며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말을 하라고.”

!...그 다름이 아니라.”

빨리 라는 말을 모르나? 지금 너네 나라 말로 내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빨리 말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책을 읽고 계신 것 같은데. 당황하시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내가 왜 당황해야 하지?”

? . 그렇죠. 이유가 없을 수도 있죠. 근데 혹시 이런 상황을 전에도 겪어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 없는데.”

..그러시군요.”

김대리가 고개를 돌려 왼쪽을 봤다. 네팔 달린 괴물이 이 번에는 오른손에 든 사람의 머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머리부터 목 주변에 다양한 색깔이 담긴 연기 같은 오로라가 맴돌고 있었다.

연기의 일부가 괴물의 숨을 쉴 때마다 코로 빨려 들어가는게 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목에서는 피가 분수터지듯 솟아 오르고 있었다. 바닥은 피바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피가 넘쳐나고 있었다.

여자도 고개를 괴물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김대리가 그 때 혼자서 읊조렸다.

도와줘야 되는데…”

작은 목소리였지만 여자는 김대리의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왜지?”

여자가 김대리에게 말을 걸었다.

? 뭐 말씀이신가요?”

네가 방금 한 말.”

제가 한 말이요?”

도와줘야 한다면서.”

..그렇죠..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데..”

왜 도와주고 싶지?”

왜냐고 물어보시면 딱히 할 말은 없는데. 그냥 당연한거잖아요. 지금 이게 꿈같긴 한데. 아무리 꿈이라도 사람이 저렇게 죽어나가면 안되는거니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데 지금 이렇게 나서봐야 저도 별다르지 않게 먹힐 것 같아서 선듯 나서지를 못하겠어요.”

그냥 도와주고 싶다고?”

. 저 무고한 사람을 없애는 괴물을 멈추고 사람들을 살리고 싶습니다만…”

네가 죽을 수도 있잖아?”

그렇긴하죠. 근데 가만 있어도 제 차례가 오면 죽을 것 같네요.”

. 그렇단 말이지.”

사람을 아그작 씹어 먹는 괴물을 보며 여성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원래 이러면 안되지만.”

?”

여성이 품 안에서 15cm 정도되는 칼을 꺼내 김대리 앞에 던졌다.

이게 뭐죠?”

김대리가 물었다.

그 칼로 저 괴물을 물리치고 사람을 구해봐.”

김대리가 머뭇거렸다.

? 갑자기 구하기 싫어졌어? 네 차례가 올 때까지 더 살고 싶어진건가?”

아뇨. 그게 아니라 칼이 너무 작은 게 아닌가 싶어서…”

김대리가 칼을 집어 칼자루를 잡았다. 그러자 칼이 삼단봉 펼쳐지듯 늘어났다.

오오오오.” 김대리는 감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펼쳐진 칼의 날은 지하철 백열등에 불이 들어 올 때마 영롱한 빛을 뿜어 냈다.

칼을 든 김대리의 가슴 속에는 알 수 없는 용기가 가슴을 뚫고 나올 듯 용오름처럼 솟구쳤다.

칼을 들고 괴물을 마주하며 자세를 잡았다.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사람을 먹는데 집중한 괴물은 김대리의 공격준비를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다.

소리를 치며 달려 나가야 하나. 소리를 치면 기습이 안되지 않을까. 하지만 보통은 소리를 치던데 그만한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김대리는 그 순간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 했다.

안구할꺼야? 다음 사람 먹힐 것 같은데?”

왼쪽 두 번 째 손에 목이 잡인 사람은 소리도 내지 못 하고 피칠갑을 한 체 벌벌 떨고 있었다.

결정장애 따위로 망설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김대리는 칼자루를 양손에 꽉 쥐고는 괴물에게 달려 들었다. 소리는 내지 않는 걸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타박타박 김대리의 뛰는 소리가 지하철 내에 울렸다. 김대리는 칼을 머리 위로 올려 괴물의 가슴을 내리칠 자세로 바꾸었다. 괴물이 어느 사정권에 들어오자 김대리는 괴물의 오른쪽 어깨를 노렸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괴물의 어깨에 칼이 닿을 것 같았다.

김대리의 칼이 내려오며 괴물의 가슴을 노렸다.

크윽.”

김대리는 자신의 목을 강하게 감싼 괴물의 손을 느낄 수 있었다. 의외로 굳은 살이 없었다.

커윽.” 김대리의 두 다리는 떠서 대롱대롱 거렸다.

괴물이 김대리를 보며 낮게 그르렁 거렸다.

크르르르.”

매우 화가 난 얼굴이었다. 괴물의 손에 묻은 피가 흘러 김대리의 하얀 와이셔츠에 묻어 났다. 다행히 정장은 남색이라 그렇게 크게 티가 나진 않았다.

크르르르.” 괴물의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힘이 들어가면 김대리의 목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힘이었다. 김대리의 정신줄을 의식과 점점 멀어지며 작별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괴물이 고통에 찬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악.”

김대리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칼로 자신을 잡고 있는 괴물의 팔을 잘라냈다. 매우 천천히 칼날을 팔에 가져다 대기만 했는데도 칼이 자연스레 괴물의 팔을 파고 들었다. 그 느낌을 놓치지 않은 김대리가 살짝 더 힘을 주자 괴물의 팔이 무 썰리 듯 댕강하고 날아가 버렸다.

괴물의 잘려 나간 왼팔을 오른팔로 잡았다. 양 쪽에 들려 있던 모든 사람들도 놓쳤다. 잘린 팔에서는 시뻘건 피가 폭포수 처럼 솟구치며 쏟아져 나왔다. 그 엉거주춤 하게 서 있던 김대리는 그 뜨거운 피를 온 몸으로 받아냈다. 피로 양복과 와이셔츠가 흠뻑 적셔졌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은근슬쩍 김대리는 뒤로 물러섰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김대리는 숨을 쉬며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핥고는 침을 삼켰다. 피 맛이 그대로 혀 전체와 목구멍을 통해 느껴졌다.

으으으으으으 뭐야 이거.’

그 때서야 김대리는 마지막 한 방을 날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드레날린이 엄청난 양으로 쏟아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김대리는 소리치며 칼자루를 양손으로 잡고는 팔을 뒤로 뺐다. 괴물의 가슴으로 김대리의 칼이 정확히 날아가 꽂히려 했다.

괴물은 여전히 자신의 잘려나간 팔을 잡고는 괴로워 하고 있었다.

성공이다!” 김대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크윽..”

김대리의 목을 괴물의 두 번째 왼손이 잡아챘다.

커헉.”

김대리는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 쪽을 지나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휑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괴물은 김대리의 가슴에서 오른쪽 두번째 손을 빼내었다. 정확히 괴물의 손 보다 살짝 큰 동그란 모양이 김대리의 가슴을 지나고 있었다. 괴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슴을 통해 반대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컸다.

괴물이 김대리를 놓자 김대리는 낙엽 떨어지듯 바닥에 떨어졌다.

으흑.” 피가 목구멍을 통해 역류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괴물이 발을 김대리 위로 올렸다. 밟아서 으깨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김대리의 의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지하철 의자 밑 철판이 보였다.

그래도 오늘은 출근길에 앉을 수 있었네. 마지막 순간이나 되야 이런 좋은 일도 나에게 일어나는 구나. 막상 죽으려니 해보지 못 한 것들이 너무 아쉽구나…’

몽롱한 머리로 김대리가 생각해낸 유언에 가까운 마지막 대사였다.

그 때 김대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상체를 들어올려 무릎에 올리는 듯 한 감촉을 느꼈다.

아 저승사자인가. 뭔가 굉장히 부드럽구나.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인줄 몰랐네아니 사람은 아닌가. 귀신이라고 해야 하나.’

가슴에서 따듯한 느낌이 몽글몽글 피어 올랐다. 휑하던 가슴이 따듯해지고 있었다. 뭔가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선명했다.

한 손을 뚫려있는 김대리의 가슴에 살짝 올려두고 있었다. 손에서는 하얀색에 가깝지만 금색을 띈 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비구름 사이로 넘어오는 햇살 같은 색깔이었다.

괴물의 손이 관통했던 가슴팍에서 피가 멈추고 새살이 올라왔다. 마치 갈라졌던 홍해가 닫히 듯 김대리의 닫혔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약간 가슴 근육도 올라와 가슴 사이에 골까지 생긴 느낌이었다.

입으로 역류하던 피도 멈추었다. 흐려져 가던 시야도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밝아지자 자신을 일으켜 무릎에 머리를 대게 한 사람이 보였다. 침 닦듯이 피를 입에서 피를 걷어내며 김대리가 입을 열었다.

사랑합니다.”

자신에게 칼을 던져준 여성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것이야 말로 인연! 운명이구나!’

진심입니다.”

김대리는 이어 말했다.

닥쳐.”

여자가 매우 차갑게 말하며 김대리의 머리를 무릎에서 던지듯 몰아내며 일어났다.

김대리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혔다.

.” 김대리는 머리가 아팠다.

아래서 올려 보아도 여성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굴욕 같은 단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

일어나.”

멋쩍어하며 김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근데 괴물은 어떻게 된거죠?”

여인은 아무 말 없이 문짝이 날아간 지하철의 문을 가리켰다.

질문은 이제 그만, 이제 곧 내려야 한다. 내리게 되면 얼음여왕을 찾아.”

? 얼음여왕이요?”

꿈이 참 스펙타클하구나.’

그래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면 얼음여왕을 찾아내. 그래야 돌아갈 수 있어. 그리고 죽지마.”

?”

넌 뭐 자꾸 네? ? 밖에 할지 모르냐?”

아뇨. 그건 아닌데.”

여하튼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 이 칼을 너에게 줄 테니 어설프게 쭈뼛거리다가 죽지 말고. 상대가 누구든 너의 목숨을 노리면 가차 없이 쓰도록 해.”

?”

, 한 번 말하면 제대로 알아 들어. 정신 안 차려?”

.” 김대리는 기합이 바짝 든 채 대답했다.

간단히 다시 말해줄게. 죽지 말고 얼음여왕을 찾아서 지구로 돌아가. 그리고 아나히타가 보냈다고 말을 하면 된다.”

.”

이해했지?”

!” 김대리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원래는 인간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되지만 너가 보여준 선한 마음을 모른 채 할 수가 없었다. 꼭 살아서 돌아가.”

저 바쁘신 건 알지만 질문을 조금 해도 될까요?” 김대리는 45도로 눈을 깔고 질문했다.

쿠콰콰카카아아. 끼이이이이이이이익

땅에 부딪히고 끌리는 소리가 진동을 했다. 땅과 부딪히며 생긴 충격이 그대로 열차로 전달됐다. 김대리는 중심을 잃고 몇 몇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구르고 뒹굴며 넘어졌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지하철이 멈춰섰다. 넘어진 사람들이 일어났다. 김대리도 벌떡 일어났다. 김대리는 여성이 서 있던 자리를 보았다. 하지만 여성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흠흠. 괜찮으세요?” 게면쩍은 표정으로 김대리가 말했다.

김대리가 주변을 돌아보며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가에는 되려 김대리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욱 가득했다.

그 중 한 여성이 김대리에게 말을 걸었다.

살아 계신거죠?”

?” 김대리가 대답했다.

. 그렇죠 살아있죠.”

어째선지 사람들이 슬금슬금 김대리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듯 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이거 내가 다 고소할꺼야. 대한민국 지하철이 이따구로 밖에 운영이 안 돼?”

사람들은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욕설을 섞어가며 자신이 겪은 부당하고 부적절한 상황에 대해 성토했다.

그때 창문 넘어로 밖을 보고 있던 다른 남자가 말했다.

여기가 어디죠?”

창문에서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남자가 물어왔다. 고래고래 소리를 치던 남자도 그 질문에 고성을 멈추었다.

그 때 김대리의 눈에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나뒹굴고 있는 자신의 낡은 가방이 들어왔다. 김대리는 몇 걸음 걸어가 허리를 숙인 후 가방 끈을 잡았다.

승객 여러분!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엄마야!”

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김대리가 깜짝 놀라며 풀썩 주저 앉았다.

기관사가 뚫려 있는 문 쪽에서 나타나 고개만 밀어 넣은 채 있었다. 눈이 매우 동그랗고 사슴처럼 맑고 큰 눈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관사에게 쏠렸다.

저기요. 도망가야 돼요! 빨리요! 여기 있다가 인간이라는 걸 들키면 바로 잡아 먹혀요.”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기관사는 매우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약간 미소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제 말을 이해 하지 못 하시는 것 같네요. 저는 경고 했으니 이제 각자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기관사의 머리가 사라지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지?”

뭐야 저 사람 이상해.”

무서워.”

어쩌면 좋아.”

누군가는 울먹거렸고 누군가는 상황을 이해해 보려 노력했다. 중요한 건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가시죠!” 김대리가 가방을 둘러메며 외쳤다.

가야 될 것 같아요.” 김대리가 사람들을 보며 말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머뭇머뭇 거렸다.

그런 사람들을 잠시 쳐다 본 김대리는 고개를 돌려 뚫려 있는 문으로 몸을 날렸다.

노을이 세상을 뒤 덮은 것 같이 붉으스럼했다. 김대리가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거대한 문어가 눈에 들어왔다. 문어의 다리가 허공을 허우적 거리 듯 움직이고 있었다.

우와.” 입이 자동으로 떡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보다 바로 고개를 양쪽으로 돌리며 기관사를 찾았다.

왼쪽으로 이미 한 참을 달리고 있는 기관사가 보였다. 기관사가 뛰는 쪽에는 약 20m도 넘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었다.

열차 안에 남은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매우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기관사가 한 말의 신뢰성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기관사가 달려 가는 곳이 더 안전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 아쉬운 마음에 김대리는 뒤를 돌아 보았다.

네 명의 사람들이 김대리 뒤에서 함께 뛰어 오고 있었다.

빨리 오세요!” 김대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고 기관사에게도 소리 쳤다.

같이가요. 기관사님!”

붉은 빛을 내리 쬐며 세상을 감싸고 있는 태양이 거대한 숲 위에 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거대한 숲을 김대리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좌우로 끝 없이 펼쳐진 숲은 장관을 넘어 사람의 기운을 짓누르는 듯 압도 하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

김대리는 기관사의 뒤에서 무릎을 잡고 상체를 숙이고는 거친 숨을 들이 마셨다.

저기요. 아저..씨 헉....잠깐만..으욱.”

하도 오랜만에 운동을 하다보니 숨이 거칠게 올라왔다.

?”

기관사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그 긴 거리를 뛰어 왔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어디까지 들어가실 꺼에요?”

김대리의 네명의 사람은 숨이 반즘은 넘어 갈 듯 거칠게 쉬었다.

빛이 거의 통과되지 않는 숲 안은 매우 음습하고 어두웠다. 당장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분위기였다.

글쎄요. 저는 여기 오면 숨을 곳이 있을 것 같아서. 여기로 온건데. 딱히 어디로 간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기관사는 사슴 같이 동그란 눈을 껌뻑거리며 말했다. 위아래 좌우를 훑어보며 뭔가 찾는 듯한 눈치였다.

여기 잘 모르세요?” 네 명 중 한 명인 여자가 물어왔다. 아까 지하철에서 김대리에게 살아 있는 거냐고 물어 본 여자였다.

. 잘 모르죠. 저도 이 곳은 말만 들어봤지 처음 와봤어요.”

여기가 어디죠?” 나이가 지긋해 보이고 머리가 반백인 남자가 물었다.

여기는 두자크에요.”

두자크?”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관사를 쳐다봤다.

저도 우연찮게 영혼에게 들은게 전부라서. 그때는 그냥 입만 열면 거짓말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네요. 진짜야.”

그럼 우리는 뭐로부터 도망가고 있는거죠?” 다시 여자가 물었다. 김대리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이곳 주민들인 아데브들에게 도망치고 있는거죠! 우리들의 영혼을 먹어치우려 할거에요. 분명 그 영혼이 그렇게 말했어요. 이 놈들은 영혼이라면 환장하고 달려 들어서 빨아 먹는다고요.”

기관사의 큰 눈에 공포가 가득해 보였다.

아데브를 본 적이 있어요?” 김대리가 이번에 물었다.

아니요. 여기 처음 와봐서. 차원에는 아데브들이 없어요. 대신 티탄들과 그들의 자식과 창조물들이 있죠. 그리고 저 같이 우연히 차원으로 빠져 들어간 영혼들이 있어요.”

잠깐!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티탄이니 영혼 빨아 먹는 다는 헛소리나 하고. 여기가 지금 지구가 아니라는 거야?” 듣고만 있던 젊은 남자가 말했다.

그 그렇죠. 우선은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 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기관사가 몸을 돌려 숲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 방금 큰소리를 낸 남자가 말했다. 김대리는 다른 네명의 얼굴을 쓱 들러보고는 기관사를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바로 여자가 뒤 쫓았다.

 

남은 남자 세명은 어떻게 할 지 몰라 서로를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한 명의 남자가 먼저 떠난 무리의 뒤를 쫓았고 두 남자도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새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아요.”

? 그러네. 어떻게 숲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지?” 여자가 품은 의문에 김대리가 동의했다.

기관사는 두 사람의 대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풀을 제치고 거대한 나무들의 뿌리를 넘어 걸어갔다.

마치 숲 자체가 죽은 것 같아요.”

정말 불길한 숲이야.”

거 참 재수가 없으려니. 대체 여기는 어딘거야.” 뒤를 쫓는 남자들은 투덜거렸다.

김대리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기관사의 뒤를 일렬로 쫓았다.

으아아아아악.”

갑자기 맨 뒤의 있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모두 깜짝 놀라 가장 뒤에 있던 남자를 쳐다보았다. 나뭇가지가 덩굴처럼 내려와 남자를 감싸고는 들어 올리고 있었다.

으으으아아아아아악. 내려놔! 뭐야 이거 내려놔!”

꺄아아아악여자도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야.” 김대리가 탄식했다.

흐이이이이익.” 머리가 반백인 남자는 괴상한 탄성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기관사는 아무말 도 하지 않고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남자는 상체가 잡힌체 점점 나무의 몸통으로 끌려갔다.

놔 이 새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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