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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영어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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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생산된 드라마를 보고 있다보니 어느 덧 일요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꽤나 재밌게 보는 드라마였던지라 보고 있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었다. 드라마의 등장인물에 집중하는 눈과 귀찮음에 눌려 있던 몸을 일으켜 미용실에 들려 머리를 잘랐다. 오늘 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일로 미루고 싶은 일도 아니었고, 거기에 일요일 저녁을 드라마를 끝으로 마무리 하고 싶지도 않았다. 2주전에 잘랐어야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머리를 자르지 않고 2주나 흘려 보냈다. 머리를 자르고 보니 염색도 할 때가 됐음을 알 수 있었다. 더하여 일주일에 적어도 한 장 이상의 글을 써야 된다는 생각도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한 몫 했다. 


머리를 자르고 다방에 와 랩탑을 열었다. 반가운 메일에 대한 답장을 하고 블로그로 넘어왔다. 하지만 마땅히 쓸 글이 없었다. 무언가 써야 된다고 생각만 있었지, 마땅한 주제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황량하기 그지 없는 머릿속에 그나마 드는 생각이라고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 어떤 글이 잘 쓰는 글일까? 나는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등이였고, 하등 나 조차도 흥미를 느끼지 못 할만한 주제가 우선이었다. 그 뒤를 이어 심리학은 과연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였다. 믿도 끝도 없이 이런 생각이 왜 들었는지, 심리학을 공부하지도 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심리학에 집착하는 듯한 머리를 가진 이유는 모르겠다. 심리학이 누군가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라는 질문 뒤를 이은 단어는 히틀러였다.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히틀러라는 인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대체 왜 히틀러는 그 수 많은 유대인을 학살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의 히틀러와 나찌를 그리고 상황을 설명하려고 여러 가설들을 내논 것으로 알고 있다. '히틀러가 어린 시절에 만난 유대인 의사 때문이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히틀러가 소질이 없다고 구박한 선생님 때문에 삐뚤어 진 것이다', '본인이 유태인의 피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군자금이 필요했던 나치는 막대한 부를 누리는 유태인의 재산을 빼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등등 여러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심리,역사, 경제, 정치 등 많은 분야과 독자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당시의 일을 설명하려 했고, 히틀러 개인을 분석하는 가설부터 상황을 분석하는 가설까지 매우 다양하게 가설을 펼쳐 왔다. 2차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적 자료와 현대에 와서도 쓰인 논문이나 글들은 많다라는 표현을 넘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넘쳐나는 분석자료와 역사적 자료를 다 찾아 읽는다 해도 명백한 결론을 내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아니, 굳이 결론을 극단적으로 내자면 아무도 히틀러와 나치가 유대인을 그렇게까지 학살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 한다. 나치의 말단 병졸부터 히틀러까지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던 많은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인간의 목숨을 빼았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같은 인류가 설명하고 있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다. 결국 한 개인부터 군중의 마음과 생각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본인의 마음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 한다. 누군가의 마음과 생각을 파악할 수 있는 현실은 아직도 미래의 언젠가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현실은 그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자신이 이해받기를 원하는 존재다. 본인도 본인을 이해 못 할 때가 있음에도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타인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게 사람이 가진 특성 중 하나다. 어찌보면 결과를 낼 수 없는-절대라는 표현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다- 일에 몫을 메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타인을 이해시키려 노력하거나 나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 시키려는 노력은 절대 끝이 나지 않는 감정 노동 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이해를 원하고 이해를 하려는 인간의 특성이 옳다 그르다, 이성적이다 비이성적이다로 가를 수는 없다. 특정 공공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희생하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성적이다 비이성적이다라고 판단 할 수 없듯이 말이다. 





만약, 실제로 이해를 주고 받는 것이 성취하기에 불가능한 하나의 일이라면, -실제로 누군가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는 결국 개인에 의해 이해되고 판단된 주관적인 생각과 견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해를 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한다. 당연히, 마음과 생각 그리고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이 정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이해 시킬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결국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갈등을 피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선 눈 앞에 있는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노력이 필요할 지 모르겠다. 이 쪽도 그리 쉬워 보이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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